외도와 불륜도 사랑일 수 있을까?
우리는 외도와 불륜을 옳지 못하고 부도덕한 행동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나기에, 이번에는 외도와 불륜, 사랑과 결혼의 본질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를 위해 책과 영화로 만들어진 유명한 작품,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주제로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
영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1995)』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로버트 제임스 월러가 1992년에 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이 책은 출간하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불륜을 미화한다는 숱한 비판도 받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불륜이라는 소재를 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와 감성을 건드리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다.
미국 아이오와주 매디슨 카운티.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뚜껑이 덮인 다리 촬영을 위해 이곳을 찾다 길을 잃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며칠 집을 비워 혼자 시간을 보내던 프란체스카. 그녀는 우연히 로버트에게 길을 안내해 주며 둘은 가까워지고, 결국 나흘간 뜨거운 사랑에 빠진다. 프란체스카를 향한 자신의 감정을 확신한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외면할 수 없었던 프란체스카는 결국 매디슨 카운티에 남기로 결정한다. 이후 두 사람은 각자 죽을 때까지 약 20년간 다시 만나지 않으며, 연락도, 편지조차 주고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프란체스카가 세상을 떠난 뒤, 이들의 추억이 담긴 유품을 자식들이 발견하면서 비로소 그들의 관계와 사랑이 알려지게 된다.
바로 그때, 20년 동안 이곳에서 시골 문화가 요구하는 대로, 행동과 감정을 제한된 울타리 안에 감추고 산 프란체스카 존슨은 이렇게 말하는 자신에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원하신다면 제가 직접 가르쳐 드려도 좋겠는데요.” (p.51)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p.168)
로버트가 프란체스카에게 함께 떠나자고 제안했지만 거절당한 뒤 남긴 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 중 하나다. 나는 한동안 로버트가 단순히 일시적인 열정에 사로잡힌 것인지, 아니면 프란체스카를 진정한 운명의 상대라 여긴 것인지 고민했다. 내 결론은 이렇다. 법적·도덕적으로 본다면 이들의 관계는 불륜이 맞지만, 그럼에도 이 관계는 진정한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외도, 불륜, 사랑을 구분 짓는 가장 큰 기준은 이후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경우 외도와 불륜은 가정에서 채울 수 없는 결핍을 메우려는 일종의 일탈이기 때문에, 정작 가정이 깨지는 순간 그 관계도 함께 무너진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이라면 가정이 깨지더라도 그 관계는 지속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관계는 이후의 행보에서 그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와 헤어진 뒤 그녀가 곤란해질까 봐 전혀 연락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그럼에도 로버트는 프란체스카의 이름이 새겨진 목걸이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 책에서도 로버트는 이후 다른 여성을 만나도 전혀 관심이 가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마음이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내 가슴속에는 재만 남았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말은 그 정도요.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몇몇 여자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그 이후로 내겐 아무도 없었소.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아무 관심이 없어져 버렸소.” (p.197, 로버트가 죽기 전 프란체스카에게 남긴 편지 중)
로버트는 인생과 사람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극 중에서도 50대 중반으로 등장하며, 한때 결혼도 했고 가끔 데이트하는 상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바람둥이나 카사노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진중한 사람이었기에,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을 프란체스카에게 느꼈고, 그래서 함께 떠나자고 제안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남편 몰래 떠나자고 한 것이 아니라, 어렵더라도 남편에게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한다. 이런 모습에서 로버트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점이 느껴진다.
“저,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여기 머물겠소. 시내라도 괜찮고, 어디라도 상관없소. 당신 가족이 집에 오면, 내가 당신 남편에게 어떻게 된 사정인지 이야기하리다. 쉽지는 않을 테지만,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거요.” (p.163)
“제발, 그를 시골 여자들을 희롱하고 다니는 카사노바쯤으로 생각하지 말렴.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단다. 사실 그는 약간 수줍어했어.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 사람 탓이 아니야. 나에게도 절반은 책임이 있어. 사실은, 내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도 몰라.” (p.211, 프란체스카가 자식들에게 남긴 편지 중)
또한 로버트는 죽은 뒤 자신의 유골이 로즈먼 다리에 뿌려지길 원했다. 이는 프란체스카와의 사랑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겼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나흘 동안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었어. 나는 한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단다. 그가 내 의식 속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 (p.213~214)
프란체스카 또한 이 나흘의 시간이 있었기에 아내와 엄마로서 역할밖에 남지 않은 답답한 가정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세상을 떠난 뒤 남편 리처드의 곁에 묻히는 대신, 화장을 해 로즈먼 다리에 자신의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당시 이 마을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화장 문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또한 소설에서는 로버트와의 추억이 담긴 낡은 식탁을 끝까지 고집하거나, 로버트에게 잘 보이려고 새로 샀던 드레스를 딸이 달라해도 끝내 주지 않는 모습이 등장한다. 이런 점들을 볼 때 프란체스카의 마음 역시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나흘간의 추억으로 남았기에 오히려 아름답게 간직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생각에 동의한다. 그러나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따라갔다면 과연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에는 반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도 잘 드러나듯 로버트와 프란체스카는 잘 통하고 잘 맞는다. 두 사람은 감성적이고 섬세하며 예민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도 풍부하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예이츠의 시를 인용할 정도로, 이 두 사람은 지적인 것을 추구하고 예술적인 감각도 지니고 있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를 따라 전 세계를 함께 다녔다면, 분명 개인적으로는 자아를 실현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한다.
“흰 나방들이 날갯짓할 때” 다시 저녁 식사를 하고 싶으시면, 오늘 밤 일이 끝난 후 들르세요. 언제라도 좋아요. (p.112)
그러나 한편으로 프란체스카는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죄책감을 끝내 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가 말했듯, 로버트를 따라갔다면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지도 모른다. 이 죄책감은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면 당시 동네가 워낙 보수적이었기에 생긴 문제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카가 떠났다면 동네 사람들은 남은 가족들에게 낙인을 찍고 안 좋은 인식을 퍼뜨리며 소문을 내고 다녔을 것이다. 결국 프란체스카는 자신이 떠나는 것만으로도 남은 가족들이 외부의 시선과 상처로 고통받을 것을 알았기에 떠나지 못했으리라 생각한다. 프란체스카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했지만, 동시에 매우 현실적이고 현실을 수용하는 면모도 지닌 사람이었다.
그보다도 더 나쁜 것은, 그가 여생을 이곳 사람들의 속닥거림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는 점이에요. '저 사람은 리처드 존슨이야. 부인은 화끈한 이탈리아 여자였는데, 글쎄 몇 년 전에 장발의 사진사랑 줄행랑을 놓았지.' 리처드는 그 고통을 견뎌야 하고, 아이들은 이 고장에서 살아가는 한 윈터셋 사람들의 조소를 들어야 할 거예요. (p.167)
예전에 한 친구와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나만 모르면 상관없다”는 입장이었고, 친구는 “그럼에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내 입장은 성립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부부라는 관계는 미묘한 정서적 연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거나 고민이 있으면, 그 기류는 결국 감지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가 하고 헷갈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눈치채지 않을 수 없다. 극 중 리처드라는 남편은 무딘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병으로 임종을 앞두었을 때 프란체스카에게 “나는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했고, 다른 꿈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라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이로 보아 리처드도 결국 눈치를 채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에게 꿈이 있었다는 거 알아. 이뤄주지 못해서 미안해. 당신을 정말 사랑해.” (영화 속 리처드 대사 중에서)
다만 프란체스카가 끝까지 가정에 충실했고, 로버트와의 만남 이후에도 일탈이 없었기에, 리처드 입장에서는 여전히 프란체스카라는 존재가 필요했고, 결국 외면하며 넘어갔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기서 전하고 싶은 점은, 만일 누군가 불륜이나 외도를 하며 배우자를 잘 속이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배우자는 100%는 아닐지라도 상당히 높은 확률로 이미 눈치를 채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다만 여러 상황 때문에 말을 하지 않거나, 일시적인 일탈이라 보고 언젠가 돌아오리라 믿으며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 몰라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이 작품을 통해 다시금 하게 된다.
이 작품은 불륜 미화라는 숱한 비난을 받았음에도 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그 이유는 프란체스카의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간략히 묘사되지만, 프란체스카는 원래 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 리처드가 일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는 태도를 보였고, 결국 그녀는 전업주부로 살게 된다. 프란체스카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이며, 자기실현 욕구가 큰 사람이다. 따라서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했지만, 늘 공허하고 만족감이 낮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리처드가 프란체스카가 일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고 지원했다면, 그녀가 로버트라는 낯선 남자에게 그렇게 빠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교사 자격증을 따고 몇 년 동안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죠. 하지만 리처드는 내가 일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자기가 우리를 부양할 수 있으니 내가 일할 필요가 없다는 거였죠. 그래서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농부 아내로 전업했지요.” (p.66~67)
영화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소설에서는 부부관계의 문제점이 보다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프란체스카는 남편 리처드와의 부부관계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리처드는 부부관계(섹스)에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겨우 관심을 보였으며, 그마저도 감흥 없이 형식적으로 끝내곤 했다. 프란체스카는 리처드가 에로티시즘을 심지어 혐오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까지 묘사한다. 우리는 겉으로 잘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지만, 부부간 섹스가 얼마나 원만한지는 부부 사이의 친밀감과 관계의 지속성, 전반적인 만족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리처드는 어쩌다 한 번씩만 부부 생활에 관심이 있었다. 두어 달에 한 차례 정도였지만 그것도 빨리 끝났다. 초보적이었고, 감동도 없었다. 그는 향수니 면도니 그런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적당히 얼버무리면 되니 쉬운 일이었다.” (p.102)
물론 리처드는 성실하고 충실하며, 정직하고 부드러운 성품의 남편이다. 1960년대 가부장적 가치관이 팽배한 미국 사회를 고려할 때, 그는 가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는 손색없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사랑은 함께 성장하고 시너지를 내는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리처드는 관계에 만족했을지 몰라도 프란체스카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다하며 가정을 지키고 있었지만, 내면의 답답함과 불만을 견디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프란체스카가 낯선 남자와 사랑에 빠진 행위를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처드가 그녀에게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고 성장할 기회를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는 사랑이 운명처럼 찾아오는 것이라 생각하곤 하지만, 결국 ‘사랑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 것도, 그를 따라가지 않기로 한 것도 그녀의 선택이었다. 그에 따른 후회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것이, 너희 둘이나 너희 아버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무엇을 빼앗아 가지는 않았단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자신할 수가 없어.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 보면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단다. (p.213~214)
한편으로 사람들은 바람을 피우거나 불륜, 외도를 저지르는 사람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이런 문제들을 도덕적 기준으로만 보면 답은 명확하다. 그러나 인생의 많은 일들은 그렇게 단편적으로 답이 내려지지 않는다. 나 역시 상황이나 환경이 다르게 마련되었더라면, 언제든지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우리는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 하기를 바라지만 앞일은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충실하고 마음을 다하는 태도가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이 내용은 영상 설명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