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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Aug 08. 2022

단기속성 인생의 보람

아기 고양이 조셉은 무럭무럭 자라 이제 다 큰 고양이의 태가 완연하다. 순화를 우려했던 것이 무색하게 항상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조잘댄다. 나와 눈만 마주치면 죽이겠다,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전달했던 첫 1-2주가 언제인가 싶다. 게다가 귀가를 할 때마다 골골대며 한참동안 머리와 몸을 내게 부벼댄다. 강아지 못지 않은 이벤트를 지치지도 않고 매번 해주는 상냥한 고양이가 된 것이다.


특별히 노력한 것은 전혀 없다. 고양이를 처음 키워보는데 노력한들 뭔가 내 뜻대로 될리도 없을테고. 물론 최대한 집을 비우지 않는다거나 하는 당연한 것들을 지키려고는 했지만 그건 사실 집 밖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 성향 탓이 크다. 나는 먹을 것과 담배와 인터넷만 있으면 집에서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유형의 사람이기 때문이다.(어쩌면 년 단위일 수도 있다)고로, 조셉은 알아서 잘 자랐다.


그래도 뭔가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성장기에 여러 낯선 사람을 만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셉은 누가 집에 오든 긴장하거나 힘들어하지 않는다. 물론 아무나 잘 따랐던 어릴적과는 달리 친해지는 데 1,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해지긴 했지만 그 시간만 지나면 손님의 무릎은 조셉의 차지가 된다. 또 친해지기 위해 필요한 1, 2시간 동안에도 어딘가 숨지 않고 사람이 있는 곳에 앉아 나와 손님을 빤히 바라보고는 한다.


조셉이 좋아하는 캣타워 3층자리


여느 여름이 그렇지만 이번엔 유난히 천둥을 동반한 호우가 자주 내린 것 같다. 아마 이번 여름의 천둥이 기억에 남는 것은 조셉이 천둥이나 번개를 무서워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일거다. 그러나 조셉은 천둥이 울려대도 귀 하나 쫑긋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바로 집근처에 벼락이 떨어져 차단기가 떨어졌을 때도 조셉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건 정도가 지나치게 태평한 게 아닌가 싶지만 그래도 조셉의 세상이란 꽤 평화로운 곳인 것 같아 참 안심이 된다.



조셉은 잘 때 배를 보이고 사람처럼 눕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고양이가 정말로 편안할 때 보이는 자세라고 한다. 한 건 별로 없지만 1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하나의 생명이 별 걱정 안 해도 되는 태평한 나날을 보낼 수 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 참 다행이다. 단기속성으로 취득한 인생의 보람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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