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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W Aug 06. 2022

문 앞의 함정

지난 주는 장마가 끝이라는 예보가 무색하게 잦은 비가 내렸다. 이어진 더위에 전기세 걱정을 하던 내게는 꽤 반가운 비였다. 그렇게 비가 이어지던 지난 화요일 밤, 내일 아침 먹을 시리얼에 곁들일 우유가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앞마당(이라기보다 공터에 가까운)에 주차된 차를 빼기 위해 익숙하게 후진 기어를 넣고 후진을 하려는데 가속 페달을 아무리 밟아도 차가 뒤로 가지 않았다. 더 세게 밟아도 요란한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서 미끄러지며 틀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차가 빠진 것이다. 우습게도 앞마당에.


고작 편의점을 가기 위해서인 것도 그렇고 빠진 정도가 얕아 당장 보험사에 전화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 진흙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전지전능한 유튜브에 검색해보았더니 나무 판자와 끈을 활용하는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판자는 쉽게 구했는데 끈이 없었다.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동안 여전히 내리는 비는 옷을 적시고 올해는 덜 극성맞다고 생각했던 모기들은 얼굴까지 뜯어가며 나를 괴롭혔다.


일단 다시 집으로 돌아와 숨을 골랐다. 다행히 이내 비가 잦아들었고, 삽으로 바퀴가 닿을 곳을 평평하게 만드니 바퀴에 잔뜩 묻은 진흙 때문에 조금 미끄러지긴 했지만 차는 앞마당을 벗어났다.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우유 사러 가는 길이었다.


간밤의 나름 치열했던 흔적. 바퀴자국이 보인다.


시골 살이도 어느덧 4년차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낯선 일들이 나를 찾아오고는 한다. 햇수만큼 장마도 겪었지만 운이 없으면 가끔은 몹시 익숙했던 공간이 너무나 생소한 얼굴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두 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 번째는 경험의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 그리고 두 번째는 비가 자주 올 때 흙밭에서 포장된 곳으로 차를 옮겨두지 않으면 다음날 시리얼을 우유 없이 씹어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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