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싶어서 써본 즉흥 글
UI와 스타트업과는 무관한 글입니다. 이번에는 그냥 쓰고 싶어서 쓴 즉흥 글입니다.
- UI관련글은 UI 텍스트에 대해 쓰고 있는 글이 있는데 곧 업로드하겠습니다.
- 스타트업과 관련하여 다른팀과 함께 콜라보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곧 소개하며 만나뵐 예정입니다 :)
초등학교 4학년때인가... 어머니 손에 이끌려 강제로 기원에 등록한적이 있었다. 지하철 대림역 근처에 있던 그 한적했던 기원은 처음엔 집에서 꽤 먼거리라 참 가기 싫어했었는데 친구도 사귀고 하다보니 나중에는 재밌게 다니곤 했었다. 다음해엔 학교 CA 시간이었던가 이름은 기억안나지만 그런 특별활동 시간에도 바둑반에 등록할 정도로 즐기게 되었는데, 초등학생중 바둑을 배우고 두는 친구들이 많지 않았으니 바둑반에서 당연 나는 탑클래스였었다. 몇몇 아이들이 동형반복금지 같은 바둑 룰을 몰라 싸우고 있을때면 내가 가서 룰을 알려주어 해결하기도 하는등 나는 우리 초등학교 바둑반의 절대자이자 해결사,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원에서 바둑을 알려주시는 사범님께서 어느 꼬마애와 바둑을 둬보라고 하는것이다. 그 꼬마를 쓱보니 나보다 네댓살쯤은 더 어려보이는 초등학교 1~2학년쯤 되는 꼬마였었는데 기원 한쪽벽을 장식해둔 신문 스크랩속의 주인공이었다. 신문의 내용은 기억안나지만 아마 바둑 영재로 여러 신문에 소개되었기에 스크랩 해둔게 아닌가 싶다. 이처럼 그 꼬마는 바로 내가 다니던 기원에서 배출해낸 최고의 아웃풋이자 자랑인 꼬마였었다.
나는 다소 긴장했지만 그래봤자 어린애고 어린애들 끼리는 다 비슷비슷한 수준이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착수를 시작하였었다. 그리곤 패배.
아주 크게 패하였기에 실력차를 느끼고 다시 한번 화점마다 돌을 깔고 두었지만 또 패배...
그 날 이후로 몇번 더 도전했지만 계속 연이어 패하기만 하였었고 나중에는 사범님께서 25점을 깔라하셔서 무려 25점을 깔고 두었는데도 능욕당하며 패배하였던 그 날이 아직도 뚜렷히 기억난다. 기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볕, 싱글생글 웃고 있던 꼬마의 갈색옷 그리고 자존심이 짓밟힌채 바둑판만 멍하니 바라보던 내 모습...
나름 바둑좀 둘줄 안다는 초등학생으로 으스대고 다녔던 내가, 나보다 한참 어린 상대에게 연이어 굴욕적인 패배를 당하며 결코 단 한번도 상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충격을 더이상 버텨낼 멘탈이 없어졌고 나는 그날 이후 바둑을 두지 않았다.
어제 인간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3번째 바둑 대결이 있었고, 인간은 5번의 경기중 3번을 졌다. 4번째 대국이 시작된 지금 2번의 경기가 남았지만 인간은 AI를 상대로 이길 수 없고 5:0 으로 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는 날이었다. AI는 실수가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AI가 인류를 넘어선 날이라고까지 평하기도 할정도로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충격적인 날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AI 는 이러한 인류의 멘탈은 아랑곳 하지 않고, 앞으로도 바둑뿐 아니라 점차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앞설 것이며, 각 분야가 정복될때 마다 인간은 결코 AI를 이길수 없다 라는 충격을 겪게 될 것이다. 이는 당연한 수순이고 역행 할 수 없는 분명한 미래이다.
하지만 어렸던 내가 단 한번도 이기지 못한 상대에게 딱 한번만이라도 이기길 간절히 원했던 것처럼, AI를 상대로 단 한번이라도 이기기를 바라며 이세돌을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