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진 Aug 22. 2022

한산

배우의 목소리가 영화 속 인물을 완성할 때

박해일, 김윤석, 최민식으로 이어지는 김한민 표 이순신 장군 계보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그들에게 매력적인 목소리가 있다는 것.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특히 내가 소리에 받는 영향은 큰 편이다. 사람을 만날 때도 첫인상에서 외형이 주는 임팩트보다 목소리에 있는 묵직함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달리 기억나지 않는 어느 시점부터 사람이 내는 소리에 대해 귀 기울이기 시작했는데, 대체로 좋은 목소리를 지닌 사람은 매력적이었다. 여타 다른 소리들 중에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단번에 귀를 사로잡는 경향이 있다. 그 소리에 한번 빠지면 얼굴은 기억나지 않아도 그 소리를 더듬기 위해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적도 있었다.


다시 한산으로 돌아와서, <한산>의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역할이 박해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기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명량>의 최민식 배우가 보여주었던 그 무게를 누가 어떻게 감당해낼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박해일. 그는 비교할 수 없는 목소리와 차분함이 얼굴에까지 드러나는 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산>에서 그는 천천한 목소리 톤과 미묘한 끝 발음 처리로 사람 마음을 흔들어댄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유의하시길.



사실, <한산> 작품  자체로만 보면 새로운 임팩트를 주기에 힘든 소재이기도 하다. 이미 너무나 유명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산>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소리로 잠재웠다.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박해일은 물론, 안성기, 변요한에 이르기까지 목소리 좋다는 배우들이 스크린에 연이어 등장했다. 게다가 후반부에 나오는 거북선 특유의   없는 소리가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 거북선이 등장할 때는 소리 없는 박수를  수밖에 없었다. 앞자리 관객분들은 후반부에 가선 상체를 앞으로 빼고 영화를 보시던데 충분히 이해할  있었다. , 대한민국 만세.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애국심을 고취할 수 있는 영화는 호불호는 물론, 회의적인 이들에겐 어쩐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한산>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니 적나라한 승리에 한 번쯤 흠뻑 취해도 될 일이다. 영화 내용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거북선'의 서사를 조금 더 보고 싶은 아쉬움은 있었으나, 한산도대첩에 담을 역사기록이 너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분배였을 터다.



전쟁 영화를 볼 때, 특히나 소리는 중요하다. 배경음악은 물론 특수 음향까지도. 생사가 오가는 상황일수록 인물의 성격은 액션보다 목소리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작품 초반에 일본 군 대사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두려움은 전염병이다.' 이 대사는 반대로 한 번도 목소리에 떨림이 없는 채로 전쟁에 임한 이순신 장군을 대변한다. 김한민 감독이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이미지가 더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악몽을 꾸었을 때도, 일본군에 의해 출정 전 배가 불탔을 때도 박해일이 연기하는 장군은 평온 그 자체였다. 내면 속 어지러움을 절대 소리로 드러내지 않았다. 일관된 차분함. 그것이 <명량> 때와는 또 다른 이순신 장군을 만날 수 있는 지점이 아닐런지.


솔직하게 <한산>을 본 것은 오직 박해일 때문이기도 하다. 아직 나는 <헤어질 결심>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가 가진 목소리를 놓아주지 못했다.




한산을 보고 난 후, 앞으로 더 기대되는 세 가지 지점이 있다. 김윤석이 연기하는 <노량>의 이순신은 어떤 목소리를 지녔을까, 가 첫 번째. 두 번째는 거북선 단독 영화를 누군가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기대 혹은 바람. 세 번째는 박해일이 추후 어떤 영화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설렘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베니(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책 낭독 영상을 재생하면서 잠들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박해일도 책이든 사연이든 낭독하나 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하튼, 김현민 감독의 연이은 이순신 장군 캐스팅은 목소리가 주는 신뢰감과 묵직함을 염두에 두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며, 박해일의 다음 작품도 작품 속 목소리도 기대해본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 라스트 홀리데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