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는 것을 그만두고 추억하겠다는 마음
고흐 이야기를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고갱의 존재다.
고갱을 향한 고흐의 지독한 외사랑은 그의 여러 그림에도 잘 드러나 있다.
예술 영화를 볼 때는 서사보다 장면 구성이나 화면 속 미적 감각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흐, 영원의 문에서>는 고흐의 내면 상태를 색감과 구도로 잘 보여주고 있는데, 달리 대사가 없어도 이 아름다운 인물이 얼마나 많은 감정을 몸 안에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슬펐다가, 기뻤다가 초라해지는 삶. 그리고 그에 반해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삶. 고흐는 사후에야 비로소 작품 세계를 재조명받게 된다. 살아생전 단 한 점밖에 팔지 못했던 본인의 그림이, 미술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고가에 팔리고 있음은 당사자에게 기함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사로 보았을 때는 삶이 얼마나 비참하고도 재미있는 것인지를 시사하고.
고흐는 사실 프로 외사랑쟁이로, 짝사랑만 하다가 끝난 전적이 많은데 이토록 외로움에 약한 면을 보여주면서도 외로워야만 하는 작업에 몰두하고, 돈이 없어 비참하다가도 결국 돈이 되지 않는 일을 택한다. 스스로 험준한 길을 오르며 새로운 빛을 찾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돈 되지 않는 외로운 싸움에 자신의 몸과 영혼을 모두 갈아 넣고 있는 남자를 동정하다가 동경하게 된다. 모든 존재의 이유를 탐색하던 삶은 돈으로 결부되는 다수의 삶과는 분명 다른 종류의 것이었을 테다. 그래서 나는 그가 미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더듬더듬 짐작한다. 나무의 뿌리와 시들어가는 꽃을 보는 눈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고갱은 남긴 그림이나 개인적인 업적과는 별개로, 내게는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인물이다. 사실 고흐와 고갱은 지독히 얽혔지만 생각하는 관계는 서로 달랐는데, 고흐는 고갱을 평생을 함께할 예술의 동반자로 인식했던 반면, 고갱은 고흐의 동생 태오에게서 받는 지원과 안정을 더 우선으로 원했다.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과 그런 사람을 붙잡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애초에 동일 선상에 있을 리가 없다. 고갱의 행보는 끝으로 갈수록 작품의 명성과는 달리 충격적이라 고흐의 외사랑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붙어 있으면서 예술적으로 서로를 견제했는데, 어떤 나쁜 사랑도 한 사람을 강제 성장시키는 것처럼 고흐는 고갱을 보며 꿈을 꾸었다. 특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고갱과 헤어지고 난 뒤에 그린 의자 그림이다. 고갱의 의자에 촛불을 그려 넣으며 고갱이 자신에게 얼마나 등불 같은 존재였는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충분히 미워하기보다 죽을 때까지 그를 그리워하기로 작정한 그 마음의 크기는 얼마나 크고 괴로웠을까.
간질도 있고 알콜 중독에 신경이 예민한 고흐였지만 세상을 바라볼 때, 모든 존재의 유무를 생각할 때, 빛을 볼 때, 사랑하는 이를 빛으로 생각할 때. 주변인들에게 무시당하면서도 사람을 위해야 한다는 마음을 굽히지 않았던 그때. 그는 아를에서, 오베르 쉬르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었을 테다.
사람이 죽고 나면 얼마 동안 기억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불안정 속에서 살았던 그지만, 이렇게나 많은 세월을 거치며 추억되는 것은 그의 마음을 가련하게 봐준, 신의 은총은 아닐까.
"내가 보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의 바람은 어디까지 닿았을까. 나무의 뿌리와 시들어가는 꽃을 보는 눈, 미워하기보다 추억하기로 마음먹는 용기를 가진 사람은 지금 이 세상에도 많지 않아 보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