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성급 호텔 총지배인도 사람이다.

언제나 즐거운 피터(Peter)와의 식사

by 딸기맨

2023년 9월 11일 월요일 피터와의 아침식사가 잡혔다.


방콕의 공기에서는 특유의 향기가 느껴진다. 이것을 향수로 인식할지 아니면 악취로 인식할지는 전적으로 개인의 해석에 달려있다. 나는 이것을 방콕의 체취로 인식한다. 즉 나의 기분과 상황에 따라서 다른 감정으로 해석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나는 방콕의 체취를 느끼면서 지상철역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외국인인 나를 알아보는 택시호객꾼 들은 "Taxi!"를 연발하면서 나의 청각을 자극했다. 살짝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고개를 젓는 나는, 이미 너무나 현지화된 외국인이다.


지상철을 탔다. 그리고 Siam역에서 환승했다. 방콕의 지상철을 이용하면서 느낀 점은 참 편하다는 것이다. 덥디 더운 이 나라에서 가장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이다. 어찌나 에어컨을 춥게 설정해 놨는지, 타는 순간 마치 더운 날 등목을 하는 오싹한 기분이 든다. 그렇게 에어컨에 취할 때 나는 통러역에 도착했다.


통러역에는 스카이브리지가 설치되어 있다. 피터가 일하는 호텔(방콕 매리어트 수쿰빗 호텔 57) 바로 앞에까지 연결되어 있다. 호텔에 들어가니 일부 직원들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태국인 특유의 높은 톤의 비음으로 "싸와디카~"를 연발한다. 사실 나는 언더커버로 조용히 방문하고 싶었지만, 이미 얼굴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터라, 이내 반가운 태국식 인사로 응대했다.



20230327_164159.jpg



VIP전담직원의 위력

나는 외국에 가면 그 나라 스타일의 음식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태국에서 눈을 뜨면 찾는 것이 바로 태국스타일의 아이스커피이다. 연유가 듬뿍 들어있다. 한 모금 마시자마자 미간의 주름사이로 포도당이 용출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연유를 거의 먹지 않는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커피도 즐기지 않는다. 하지만 태국에만 오면 달달한 커피를 즐기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VIP전담직원이 나를 알아봤다. 반가운 인사를 하고 나에게 원하는 커피를 물어봤다. "혹시 태국 스타일의 연유가 들어간 아이스커피가 될까?"하고 나는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녀는 "물론이지!"라고 시원하게 대답했다. 와우! 호텔에서 태국식 커피를 마시게 될 줄이야. 나는 그녀에게 대부분의 호텔들이 태국식 연유커피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원래 메뉴에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직원들도 제공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재료는 있지만 메뉴에는 없으니까. Extra work를 싫어하는 태국인들의 습성이라고나 할까?




피터야 너 운동하냐?

커피를 주문하고 바로 자리로 안내받았다. 뒤에서 피터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Hey Boram!" 굴곡지고 속사포 같은 호주(Australia) 악센트를 갖고 있는, 시드니에서 온 이 호텔의 총지배인이다. 우리는 2017년도 10월에 처음 인사를 했다. 그리고 2019년도 말경에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니 도드라진 피터의 근육이 느껴졌다. 요즘 운동하냐고 물어보니 그렇단다. 몸관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단다. 뷔페에서 담아 온 음식을 보니 죄다 단백질 위주였다. 삶은 달걀을 3개 가져와서 노른자는 빼고 흰자만 먹는다. '아! 피터가 지금 진심으로 몸을 만들고 있구나!'라고 느꼈다. 우리는 날씨부터 시작해서 점점 대화의 수위를 높여갔다. 친한 남자들이 오랜만에 만났을 때 하는 바로 그 이야기들을...


호텔 총지배인 피터(Peter)와 함께하는 아침식사


우리는 미국의 정치부터 시작해서 국제정세 이야기로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각자의 국적이 다르기에 이해하는 관점에도 당연히 차이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서로 간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나는 피터의 부모님과도 친분이 있다. 두 분은 대화를 정말 많이 하신다. 함께하는 저녁식사 자리에서도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피터의 이런 대화능력이 그의 부모님을 보고 학습한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릴 적부터 체득한 대화의 기술인데 그것이 어디 가겠는가?


피터와 이야기를 하면 대화의 내용을 넘어서는, 대화의 "자리"가 주는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우리 둘 다 대화 능력자이기도 하지만, 친구라는 솔직한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입견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대화의 열기가 무르익는 것을 느꼈다.




반은 이탈리아, 반은 프랑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아까 그 VIP전담직원이 멋진 팬케익을 가져다주었다. "총주방장이 너만을 위해서 특별히 준비했어!" 이 멘트는 언제 들어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내가 이 호텔에 투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친구의 초대로 왔을 뿐인데 이렇게 신경을 써주다니. 사실 분위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은근했던 기대가 현실로 충족되면 기분이 좋다.

새로운 총주방장은 6월부터 근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반은 이탈리아, 반은 프랑스라 맛에 대한 경험과 철학이 확고하다고 한다. 직전에 하얏트 리젠시 방콕호텔에서 총주방장을 맡았었다.

팬케익 위에는 블루베리, 라즈베리 그리고 딸기가 멋지게 데코 되어있었다. 딸기 뒤에는 바나나가 잠이 덜 깬 듯이 누워있었다. 옅게 뿌려진 슈가파우더와 약간의 시럽이 당도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아몬드는 식감을 생각하는 셰프의 아이디어였으리라!

크게 한 입 먹어보니 팬케익의 온기와 과일의 시원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온도의 편차가 느껴질 때 달콤한 시럽과 슈가파우더의 단맛이 감각을 자극해 온다. 마지막으로 부드럽고 살짝 쫄깃한 팬케익의 질감이 입안을 채운다. 구름처럼 몽글몽글.


20230911_103905.jpg




5성급 호텔 총지배인도 사람이다.

피터가 일하고 있는 호텔은 인도인이 소유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오너가 인도인이다. 그렇다면 인도사람이 어떻게 일하는지, 그들의 문화를 알아야 피터의 '상황'을 공감할 수 있다. 피터가 이 호텔에 오기 전, 꽤 오랜 시간 동안 이 호텔에는 GM(General Manager: 총지배인)이 없었다. 우리말로 '공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호텔을 소유하고 있는 인도인 가문의 5명이 수시로 GM에게 전화를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4명의 부서대표들도 GM에게 자주 전화를 한다. 생각해 보라! 상사 9명이 하루에 4~5통씩 전화를 해댄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그 직책을 능히 감당할 수 있겠는지를. 인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영화 '화이트 타이거'를 추천한다.


피터는 친구인 내가 볼 때도 에너지 레벨이 엄청나게 높은 사람이다. 그 에너지를 분출하는 것을 피터는 즐긴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스파르타의 이야기를 담아낸 영화[300]의 주인공 캐릭터와 일치한다. 그래서 피터가 가는 호텔마다 생기가 돋는다고 나는 느낀다. 한국식 표현을 빌리자면, "죽은 호텔도 살린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내가 글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직접 피터를 만나서 그의 에너지를 느껴봐야 한다. 엄청나다!


인도인 오너들의 에너지레벨도 엄청난데 피터가 그것을 감당해내고 있다는 것이, 그의 능력을 말해주고 있다. 실제로 나도 이 호텔의 오너를 두 번 만나보았다. 터번을 쓰고 있는 다섯 명의 인도인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정말 영화 속에서나 봤을 법한 인도인과 악수를 했다. 간단한 인사만 했지만, 악수를 했을 때 그의 인생역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도인 이민자로 태국에 와서 느꼈을 그 고단한 삶. 그리고 5성급 호텔의 오너가 되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이 단 한 번의 악수에서 느껴졌다.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까지...

그런 오너가 소유한 호텔이라면 그 누구도 설렁설렁 눈가림으로 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호텔의 총지배인 자리가 정말 쉽지 않은 자리이다. 이미 방콕의 호텔 업계에서는 그렇게 소문이 퍼졌다.



멈추면 죽는다!

그래서 피터는 이 거대한 열차와 같은 호텔을 더 빨리 달리게 하는 전략을 택했다. 더 많은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렇게 모인 사람들에게 오감을 충족하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이 호텔이 49층짜리 고층건물이라는 점이다. 옥상에 있는 루프탑바는 분위기가 좋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매일 DJ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게다가 매주 새로운 이벤트가 열린다. 이벤트는 차치하더라도, 고층에서 바라보는 방콕의 풍광만으로도 이곳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호텔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맛있는 음식들이다. 피터가 오기 전까지는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호텔이었다. 하지만 피터가 오고 나서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고, 지금의 총주방장은 고객들과 소통하면서 눈높이를 맞춰가고 있다. 당연히 음식에 대한 평가도 좋아졌다.



20220613_192141.jpg



화려한 나비

얼마 전에 호텔 오너가 피터에게 1년 더 근무를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단다. 예전에도 나는 피터에게 계약연장 제의가 오면 수락하라고 말을 해놨다. 피터는 1년을 더 근무하겠다고 했단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3년을 채우면 뒤돌아보지 말고 다른 호텔로 가라'라고 말했다.

왜냐고? 영화의 제목처럼 '박수칠 때 떠나'야 하니까! 특히나 태국의 호텔 업계에서 총지배인의 평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3년이면 한 곳에서의 성공적인 근무가 자신의 화려한 경력이 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게다가 지금은 개인의 캐릭터가 중요한 시대이다. GM은 스스로가 의미 있는 캐릭터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결국 그 호텔의 이미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6개월 만에 만난 피터와 재미있는 수다를 떨면서 아침식사를 마치니 정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나는 영어가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마음"이 맞는 친구와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스틸컷이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