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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 무탈 Dec 31. 2019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1. 엄마의 가출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다. 엄마는 아직도 모자를 좋아한다. 대학시절 엄마.

2019년 7월 어느 토요일 오전 8시.


세상이 무너졌다. 엄마가 사라졌다.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엄마가 어디에도 없었다. 아빠가 새벽 5시에 잠깐 깨었을 때만 해도 엄마는 잠들어 있었다고 하는데, 어느새 나간 것이다. 가출 추정 시간 6~7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아빠는 우선 경찰 신고부터했다. 엄마 최근 사진을 문자 메시지로 보내고 난 뒤, 난 잠옷 위에 후드티 하나 걸치고 슬리퍼 차림으로 동네를 뒤지기 시작했다. 지하철 역 근처와 역사, 편의점, 요양사와 산책하는 공원. 경찰이 확인 가능한 폐쇄회로 TV(CCTV)를 보며 동선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도 없었다. 아빠와 나의 초조함은 시간이 갈수록 증폭됐다. 집 앞에 있을 것 같은데,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나이 든 여성은 모두 우리 엄마처럼 보였다.   


달려가 보면, 아니었다. 무슨 옷을 입고 나갔는지, 연락처를 적어 둔 인식표는 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목걸이,팔찌, 스마트워치. 모든 형태의 인식표는 해 주면 화를 내면서 떼어버리는 엄마. "난 이런 게 필요 없다"는 말을 들어준 게 후회됐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이거구나. 혹시 어제 내가 저녁 실랑이가 힘들어 혼자 몰래 "엄마가 이렇게라도 사는 것을 기뻐할까"라고 생각한 벌일까. 눈물이 쏟아지는 걸 참고 동네를 뒤지고 또 뒤졌다. 아빠는 이미 패닉 상태에 빠졌다. 슬프지만, 더는 뛸 힘은 없다


경찰에 연락이 온 것은 오후 12시쯤. 올림픽대로를  걷는 여성 노인을 발견했는데, 신고된 가출 노인과 일치하는 것 같다는 소식. 순찰차를 타고 파출소로 오는 중이라고 했다. 보내 준 사진을 보니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욕실에서 신는 슬리퍼에 집에 있는지도 몰랐던 낡은 반팔 셔츠, 추리닝 바지. 혈압계를 넣어두는 가방.


엄마는 경찰과 함께 파출소로 들어왔다. 상냥한 순경은 "고속도로 진입 구간에서 발견해 너무 깜짝 놀랐다"라고 말했다. 논현동에서 올림픽대로 진입로까지 도대체 어떻게 걸어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발이 아팠을텐데.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경찰을 보니 정말 모든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나왔다. 신속한 대응 아니었으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린 얼마나 많은 도움을 받으며 삶을 이어가고 있는지를 대체로 잊고 살아가고 있다.


엄마가 들고나간 가방엔 쓸만한 것이라고 하나도 없었다. 수건 한 장과 기념품 열쇠고리, 작은 빗. 도대체 왜 이런 걸 택해 보따리를 싼 것일까. 돈이 될만한 것은 하나도 없네.


엄마는 "학교를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토요일이라 학교를 안 가도 된다고 달래고 생각해보니, 엄마는 토요일 학교를 다닌 세대다. 엄마의 마음속에 자신은 아직 여고생이다.


학교를 가야 하는데 길을 모르겠으니 얼마나 마음이 답답할까.


2시 다 돼 세 가족 잠옷 차림으로 쌀 국숫집으로 가 점심을 먹었다. 새벽부터 걷느라 배가 엄청 고플 텐데도 학교에 가겠다는 모범생 엄마다. 4인 세트를 시켜 싹싹 맛있게 다 먹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이상한 생각하지 않을 게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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