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 무탈 Jan 07. 2020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3. 누가 제일 불쌍한가

 

2019년 4월, 엄마 생일.

가끔 내가 너무나 불쌍한 것 같다.


왜 하필 우리 엄마가 이렇게 되었고, 난 이 상황을 견뎌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고민이 생겨도 엄마와는 의논할 수가 없다. 엄마와 함께 쇼핑을 하거나 극장을 가는 일도 버겁다. 솔직히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아끼는 지인은 "결혼을 안해서 탈출할 기회를 놓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결혼을 빨리 하라고 재촉한다. 이 말이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수긍이 가기도 한다. 직장에 가도, 여행을 가도 늘 마음 한구석은 편하지 않다. 언제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든다.

 

치매가 아무리 흔해졌다고 하지만 그건 위로가 되질않는다. 엄마의 가장 가까운 형제인 이모들만해도 80세가 다 넘으셨는데 건강하고 기력이 넘친다.  왜 우리 엄마만, 이란 생각을 수만 번쯤 했다.


우리 아빠도 불쌍하다. 아빠의 삶은 엄마 중심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엄마 돌보기의 짐은 대부분 아빠 몫이다. 늘 아침을 차리고 토스트나 생선이 조금 많이 익어 갈색으로 변한 부분까지 골라내는 엄마의 까탈을 참는다.  매운 것을 안 먹으려는 엄마의 입맛에 맞춰 두 종류의 반찬을 만들기도 한다. 운동 단 2시간을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다. 엄마가 분 단위로 찾기 때문이다.


씻지 않으려는 엄마를 매일 달래야 하는 것도 아빠의 스트레스다. 엄마는 내가 샤워를 시켜드리면 얌전한데 아빠는 세수를 하라고만 해도 화를 낸다. 잔소리로 느껴지는 것 같다. "아저씨 왜 남의 집에 와서 이렇게 버티세요"라며 욕을 퍼붓는 엄마를 견뎌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우리 오빠와 남동생도 어느 정도 불쌍하다. 점점 사라지는 엄마를 가끔 보게 되면 충격에 빠지기도 한다. 자신의 가정 꾸리기가 분주해서 평소에 생각을 하지 못하다가 있다가 가끔 오면, 내심 충격을 받고 돌아가는 것 같다.  이모들도 변해가는 막내 동생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원래 욕을 입에 담지 않던 엄마는 꽤 공격적으로 변했다. 반찬을 해주러 온 셋째 이모의 등을 떠밀며 가라고 재촉한다. 모두 조금씩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얘기했더니 아빠가 딱 한 마디 했다. "무슨 말이니, 니 엄마가 제일 불쌍하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맞다. 우리 엄마가 제일 불쌍하다.

자신의 상태를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결국 이 몹쓸 병과 싸워야 하는 것은 엄마다.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니?"라고 불안해하거나, "나 요즘 이상한 것 같다"라고 하는 엄마를 보면서도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다. 병으로 인해 자신을 조금씩 잃고 있는 걸 모를 리 없다.  


결국 이것은 엄마의 전쟁이다. 우리는 도울뿐, 손을 놓지 않을 뿐.    


 




  

작가의 이전글 엄마를 키우고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