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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Aug 28. 2024

[시] 기도

-나의 부적

<기도 - 나의 부적>


아이가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호들갑스럽게 묻는다, 엄마 이거 뭐야 응 이건 엄마 부적이야, 아주 오래 전 체코의 한 성당에서 사왔던 것이다 엄지 손가락보다도 작은 성인의 조각상이었다 나는 이것을 또 오래 전, 그녀의 유골함에다 두고 왔다 함께 갔던 친구가 그게 뭐냐고 물었을 때, 그냥 빙그레 웃어주고 말았는데,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던 거라는 말밖에는 해줄 수가 없어서였다 성당에 울려퍼지던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영혼을 담은 기도를 올렸던 날이었다 간절한 마음을 담은 조각상을 그녀에게 두고온 건, 그녀의 죽음이 내게 가르쳐준 시간의 개념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월대보름에 깡통에 불을 붙이고 놀이터에서 놀다가 불을 낼뻔한 기억을 공유했다 우리는 욕조에서 물을 한가득 받고 놀다가 막 퇴근하고 온 그녀의 아버지를 놀라게도 했다 같은 초, 중, 고를 졸업했지만 서로의 단짝은 달랐던, 나는 일방적으로 그녀를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따뜻한 봄날, 하얀색과 노란색이 섞인 카디건을 입고 길게 머리를 풀어헤치고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 그녀는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털모자 밖으로 나온 머리카락이 없었다 자꾸만 매운게 먹고 싶다고 했다 매운 걸 먹으러 갔지만 많이 먹질 못했다 우리는 모두 그녀가 아프다는 걸 눈치챘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그녀를 배려하는 방법은 그것을 모르는 채 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최선의 배려였을까 충북 제천까지 먼 길을 가는데, 왜 살아서는 이곳에 못 와보고 유골함을 보러 가려는 건가, 눈물이 나지 않았다 대신 나는 오랜 시간이 흘러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자꾸만 어린 시절 그녀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어 놀리던 일을 떠올리게 되었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만, 눈이 크고 맑은 아이였다 똑부러지는 똑똑한 아이였다 일찍 떠나기엔 너무나 아까운 아이였다 그녀가 남기고 간 어린 아들이 자꾸만 눈에 밟혔다 나는 그녀와 같은 해에 태어나 그녀보다 십 삼 년을 더 살았는데, 더 충만하고 간절하게 살았냐고 물으면 자신있게 답할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성당에서 기도한 것도, 그녀의 마지막을 본 것도 모두 간절하고 진실되게 살아 있으라는 전언이었는데, 가 쓰는 이 글 한 줄이 어떤 의미로 남을 지도 모르겠다 확신과 확답은 옅어지고, 한때는 꽉 쥐고 있었던 것도 이제는 펼쳐서 놓아주려 한다 


뜻 대로 하소서, 저는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고자 합니다. 다만, 잘 왔다가 잘 가노라, 후회없는 일생을 살았노라, 라고 말할 수 있게 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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