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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은율 Sep 03. 2024

[시] 탈피

<탈피>



외롭다는 말을 하지 않은 지 오래 됐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내뱉으면 정말 외로운 것으로 규정될까봐, 무언가 하나에 고정되는 걸 경계하느라, 그 말은 꼭꼭 담아두고자 했다 대신 그 자리에 빽빽한 일과를 채웠다 하지만 고요한 시간이면, 해가 막 뜨기 직전이나 해가 막 지려할 즈음이면, 어슴프레 찾아오는 이것은 무엇일까. 그럴 때는 당신에게 꼭꼭 눌러쓴다. 오늘도 바빠? 오늘은 어땠어? 저녁이 오려할 즈음인데, 당신은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점심을 먹는 일이 일의 연속이라고 한다 먹는 것마저 일이 되어버리면 무슨 낙이야? 일하는 게 즐겁다고 말하는 당신, 그것은 나를 위한 위안임을 알면서도 나는 곧잘 속곤 한다. 참을성이 많은 당신은 아파 죽어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지나고 나서야 너무 아팠다고 한다 눈물을 훔치는 나를 아이들이 물끄러미 바라봤다 아이들은 헤어짐 앞에서 의연했는데 나는 계속 울었다 눈물샘은 막히거나 뚫리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 나은지 모르겠다 아무리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은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딘가 고장이 났다 피아노 선생님이 자꾸만 애정이 담긴 말씀을 해준신다 그럴 때도 나는 눈물을 흘린다 기계가 고장이 나면 사람을 불러 수리를 한다지만, 사람이 고장이 나면 어떻게 고쳐야 할까? 나는 탈피하려는 번데기인 걸까? 훨훨 날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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