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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mi May 07. 2021

승무원의 레이오버 소비 단상



레이오버에서 소비를 할 때면 특별히 만날 사람도, 약속도 없는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를 그렇게 챙긴다. 언제부터 그렇게 주변에 살가운 사람이었길래.



​정해지지도 않은 다음 4일 오프를 기대하며, 나보다는 나의 캐리어에 관심을 보일 가족들을 떠올리며, 예정에도 없는 친구와의 갑작스러운 만남을 대뜸 상상하며 소비한다.



​몸에 좋다는 각종 영양제, 쓰지도 않던 종류의 화장품, 맛있다고 소문난 과자, 언제 다 쓸지도 모르는 핸드크림 등을 종류별로 여러 개씩 담고는 고민에 빠진다. 너무 적게 산건 아닐까 하고.



​심지어 한국에서는 구매 전 꼬박 찾아보던 성분도 레이오버에서는 따지지 않는다. 그 유명세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미지의 호기심과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일단 넣고 보는 것이다.



​한 두 개씩 넣다 쌓여버린 장바구니를 보며 적당히 사야지 하다가도, 매대를 털어가다시피 하는 주변의 중국인 관광객을 보면 소비의 위안을 얻곤 한다.



​그러다 물건들이 빼곡히 늘어진 영수증을 받고서야 이 소비가 그리 적당하진 않았음을 깨닫는다. 하지만 상품의 한국 판매가를 확인해보곤 소비로 절약을 한 것과 다름없다며 또다시 만족을 느끼는 것도 금방이다.



나는 레이오버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혹은 조금 비싼 것들에 기꺼이 지갑을 꺼내 들지만, 일상에서는 우버의 most demand 요금이 2 리얄이라도 내려갈 때까지 새로고침을 한다.



​한국에서는 수수료가 들지 않는 ATM을 골라 현금을 인출하면서도, 레이오버에서는 수수료를 생각하기도 전에 회사 체크카드를 먼저 긁는다.



​무엇을 위해 일상에선 해피아워에 맞춰 친구들과 한 잔 하고, 조금이라도 더 걸어가 수수료가 1원이라도 낮은 곳에서 환전을 하려고 하는가?



​레이오버에서 담은 만큼 길어진 영수증과 함께 가게를 나서며, 일상의 절약은 궁극적으로 일상을 벗어난 모든 소비들을 위한 것이 아닐까라는 갑작스러운 사색과 함께, 절약과 소비의 상대성에 대하여 뜬금없이 고민하는 것이다.






​* 레이오버: 비행으로 간 목적지에서 체류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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