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 Jun 18. 2021

승무원의 비행용 안경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비행용 안경을 맞추며 생긴 오해와 그에 관한 단상


항공사마다 다르지만 카타르 승무원은 비행 중 안경 착용이 가능하다. 물론 착용할 수 있는 안경의 디자인은 사규로 정해져 있다. 그 모습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뿔테나 서양의 reading glasses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안경뿐만 아니라 실외에서 선글라스 또한 착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선글라스를 눈을 보호하는 기능성 안경으로 바라보기에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유니폼을 입고 실외에 장시간 체류할 일이 거의 없기에 실제로 착용하는 일은 드물다.


이러한 테두리 속에서 안경을 쓰는 승무원들은 대체로 일상용과 비행용을 따로 맞추어 다닌다. 비행용 안경은 회사 규정에 따라 맞춰진 디자인이므로, 개인의 취향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안경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는 카타르에서는 이러한 분위기가 더욱 일상적이다.






# 비행용 안경을 찾아서
4일 휴가를 이용하여 한국에 나간 때였다. 당시 한국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안경 맞추기였다. 정확히는 ‘비행용 안경 맞추기’.


하지만 규정에 맞는 테를 찾기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정확히는 회사 규정에 맞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테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테가 맞으면 색이 안 맞는다거나, 색이 맞으면 테가 맞지 않는 등 미묘하게 조건들이 어긋났다.

이런 생각으로 한참을 고르자니 안경사가 다가와 원하는 테가 있냐고 묻는다. 나는 규정에 맞는듯한 안경테 하나를 집어 들며 이런 스타일을 찾는다고 했다.


안경사는 매장 한 바퀴를 돌며 이것저것 들고 오더니, 15개 남짓한 테가 전부라며 난색을 표했다. 안경점의 모든 뿔테를 끌어 모아 놓고도 고민하는 기색이 답답해 보였는지 이내 한 마디를 꺼냈다.



“요즘 이런 안경은 잘 안 쓰는데
취향이 참 독특하시네요.”




유행을 따르지 않는 고집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취향과, 시기마저 한참 지났음을 함축한 독특까지. 안경사가 에둘러 말한 취향과 독특에 담긴 이면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서둘러 취향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으나 어쩐지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패션피플도 테러리스트도 아닌 삶을 살아왔건만, 시대에 뒤쳐진 취향의 소유자가 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사실 안경사의 반응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런 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유를 나로부터 충분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꼭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외국 회사에 다니고 있어서 그렇다며 앞뒤를 한참 자르고 둘러대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나라에 살길래 그렇냐는 반문이 이어졌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안경사를 이해하던 자리엔 존중에 관한 그늘이 슬며시 드리우기 시작했다.



# 누구를 위한 취향을 판매하고 소비하는 것인가

필요에 따른 소비였기에 감정의 관여가 일어나지 않을 법도 했다. 취향이 아니라며 이야기하던 때만 해도, 오해에 대해 단순히 당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대화가 길어질수록 취향에 대한 존중을 찾아보긴 어려웠다. 이를 깨닫고는 나의 취향을 소비하며 겪은 일 마냥 마음이 불편해지게 되었다.


대답을 위해 안경사에게로 시선을 옮기던 차, 우연히 안경사의 안경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등잔 밑이 어두웠음을 깨달았다. 안경사야말로 본인이 요즘은 잘 안 쓴다고 말하던 안경을 쓰고 있었다.






만약 안경사가 나와 같은 이유로 그 안경테를 쓰고 있었더라면, 소비의 취향에 대해 조금 더 열린 자세를 보여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경사의 태도와 말투는 그렇지 못했다.


결국 자신의 취향을 배제한 선택지들로 이 공간을 채웠을 거라 생각하니, 정작 타인의 취향을 파는 것에 서투른 사람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어쩌면 안경사는 자신의 취향을 감추는 것으로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고 있던 중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결국 규정을 소비하는 자와 유행을 파는 자 사이에도 교집합이 존재했던 것일까. 취향의 부재로 가득한 안경점에서 발견한 동질적 연민은 비로소 이곳에서의 시간들을 관용하게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우연히 안경다리에 새겨진 제조사의 이름을 발견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이름까지도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는 없었단 생각에 한참 동안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승무원이 빌려준 펜을 돌려받는 최고의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