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mi Jun 30. 2021

부다페스트1 : 글루미 프라이데이

부다페스트에서 마주한 삶의 민낯

리스트의 음악이 흐르며 세체니 다리의 낭만이 공존하는 곳. 바로 중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자랑하는 부다페스트. 그런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먼저 마주한 광경은 어떤 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던 모습이었다.
  
느지막이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위해 중심가인 바찌 거리로 향했다. 한두 사람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텅 빈 거리는 중심가라는 사실을 갸우뚱하게 했다. 길가에 나란히 이어진 상점들에서는 불빛이 보이지 않았고, 희미하게 불을 밝힌 곳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문이 열린 곳이 있을까 싶어 계속 걸어보기로 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거리의 한가운데에 둥글게 모여있는 사람들과 높은 사다리차가 눈에 띄었다. 거리가 제법 가까워지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보이지 않던 엄청난 크기의 소방용 에어 매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에서 매트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위를 보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 가장 높은 곳에는 건물 외벽에 위태롭게 서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외벽에 기댄 채 무언가 소리치는 듯했다. 하지만 주변 인파와 소방차가 만들어 내는 소음으로 내가 있는 곳까진 닿지 않았다. 그가 소리치던 곳 아래에는 외벽에 선 남자를 향해 확성기를 들고 외치는 것처럼 보이는 소방관이 있었다.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에 옆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자기를 부르는 줄도 모르고 위쪽에 시선을 잔뜩 빼앗긴 옆사람은 세 번쯤 부르자 비로소 내게 시선을 돌렸다.

미안하다는 눈빛과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누군가를 찾는 듯하던 그 사람의 너머로 갑자기 어떤 얼굴이 나타났다. 옆사람은 그 얼굴을 내 옆으로 끌어내고는 웃는 얼굴로 나를 보며 그 사람을 세네 번 가리켰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끌려 나온 이는 유창한 영어로 소방대가 출동한 지 10분이 지났으며 자세한 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나의 반대편 옆으로 제복을 갖춰 입은 사람이 찰싹 붙었다. 호텔 유니폼으로 보이는 옷을 입은 그녀는 근처 켐핀스키 호텔에서 나온 인파 중 한 명처럼 보였다. 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헝가리어로 중얼대던 그녀는 갑자기 휙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며 내게 영어로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나는 옆 사람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리고 방금 전의 옆 사람과 같이 내게 이야기를 전해준 이를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어디선가 내 눈빛을 읽은 건지 옆으로 다가온 그는 또다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에는 헝가리어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제복의 그녀는 더 알아보겠다는 말을 남기곤 인파를 돌아 앞쪽으로 사라졌다.

사라져 가는 그녀를 바라보며 인파들 사이에서 이를 지켜봐도 될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길을 가다 마주한 우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사람들의 시선이 외벽에 선 남자에게 삶을 지속할 힘이 될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보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누구보다 그가 무사히 내려오기를 바랐지만 나에겐 준비해야 할 내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이 마지막 일 뻔한 사람의 앞에서 속으로 내일을 떠올리다니. 내일을 떠올려버린 이상 이곳에서 그를 응원할 자격이 더는 없어진 것만 같았다. 그제서야 이곳에서 돌아서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그가 무사히 땅에 발을 딛고, 삶을 다시 살아갈 마음이 생기기를 기도하며 등을 돌렸다. 자리를 뜨는 순간에도 켐핀스키 호텔에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계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