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Oct 26. 2023

아파트 주민과 관리실

주체를 불문하고 모든 갑질은 부당하다.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온 나라를 장악한, 세계적으로 유일한 공화국에 산다. 이 나라는 주거 형태로서 아파트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압도적 대세가 된 지 오래되었으나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연일 언론매체에 관련 사건사고가 보도된다. 대표적으로는 층간소음, 주차난으로 인한 주민갈등이다. 닭장 같은 공간에 성냥갑처럼 쌓아 올린 벽식 구조… 다툼이 일어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한 반에 70여 명이 들어찬 70년대의 교실에서 사내아이들은 하루에 두 번 이상은 싸움질을 했다.


주민 갈등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사건은 아파트 경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주민의 갑질(?) 논란이다. 흔히 집값 비싼 동네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거니 했는데 꼭 그런 것 만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일도 꽤 일어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나의 불쾌한 수차례의 경험에 의하면 그랬다. 내가 사는 곳은 아홉 개 동에 377세대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소박한 서울 강북의 아파트 단지다. 고지대이고 단지규모가 작아서인지 유난히 조용해서 마음에 드는 동네다. 그전에 살던 대단지 아파트와 비교해서 유독 그랬다.


이곳에 10년 가까이 살면서 딱 한 가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니 바로 관리사무소의 고압적인 태도다. 유난히 자주 등장하는 안내방송에서는 초등학교 시절 애국조회를 연상시키는 계도성 내용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이른 아침, 퇴근 후 저녁, 혹은 평일 주말 시간대를 가리지 않았다. 특히 방송 멘트를 전담하는 나이 지긋하신 방재실 기사님의 목소리는 언제나 잔소리하는 동네어른의 말투였다. 양촌리 이장님 댁의 방송도 이렇지는 않겠다 싶을 만큼 거슬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주 1회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날은 항상 나를 긴장시켰다. 휴직을 한 뒤로는 매주 화요일 오후 5시부터 실시되는 분리수거를 전담해서 하고 있다. 배달음식이나 택배구매가 많은 우리 집은 한주가 되면 분리수거할 쓰레기가 그득해진다. 아내는 절대 한 번에 이 모든 짐을 나르지 못하기 때문에 요령 좋은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문제는 분리수거장에 계신 경비아저씨들의 온갖 짜증과 욕지거리를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나는 제법 분리수거 기준을 숙지(심지어 분리수거 기준을 확인할 수 있는 앱을 휴대폰에 깔아놓았다.)하고 미리미리 정리를 해서 버리는데도 꼭 한 번씩은 싫은 소리를 듣는다.


이를테면 종이박스에 붙은 스티커를 깨끗하게 제거하지 않았거나 파지 놓는 곳에 조금 얇은 종이박스가 섞여 들어갔거나 순백이 아닌 스티로폼을 버린다거나 할 때는 여지없다. 제일 억울한 것은 단지 내 분리수거장이 두 곳인데 양쪽의 경비아저씨들의 분리수거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분리수거할 때면 언제나 살짝 긴장을 하게 된다. 공연히 불쾌한 소리를 듣고 나면 저녁 내내 기분이 언짢기 때문이다. 5시 분리수거가 개시되자마자 달려가서 사람들이 적을 때 순식간에 쓰레기를 버리고 총총히 자리를 뜬다. 그리고 꼭 루틴처럼 담배 한 대를 피운다.(나는 한 달에 담배 한갑도 안 피우는 간헐적 흡연자임에도 이날은 여지없다. 욕먹은 날은 더더욱 그랬다.)


그동안 겪은 것들 중에 가장 불쾌했던 일은 이랬다. 새벽 2시경 한참 깊은 잠에 빠져있을 시간에 경비실에서 인터폰으로 우리 집 벨을 수도 없이 눌러댔다. 벨소리가 너무나 우렁차서 온 가족이 모두 깨었는데 인터폰을 받은 나에게 경비아저씨가 한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주차장을 순찰하던 중 우리 차에 실내등이 켜져 있는 걸 발견했으니 당장 내려가 끄라는 거였다. 처음엔 잠이 덜 깨 무슨 소리인지도 못 알아들었는데 듣고 나니 의아했다. 실내등을 켜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절로 켜지지 않은 이상 말이다. 화가 났지만 잠결이라 그냥 전화를 끊고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주차장에 내려갔다. 내 차에 실내등은커녕 미등조차 켜져 있지 않았다.


다른 차를 오인했는지 나에게 골탕을 먹이고 싶었던 건지는 알 수 없다. 정신이 든 후에 가장 황당했던 이유는 이거다. 설령 우리 집 차에 실내등이 켜져 있었고 그로 인해 다음날 아침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불상사가 생기더라도, 모두가 잠이 든 꼭두새벽에 남의 집 인터폰을 누르지 않는 게 상식이라는 것이다. 너무 화가 나서 경비실에 다시 따지고 싶었지만 그 답 없는 분과 실랑이하는 것조차 기가 막혀 참았다. 다음날 관리사무소에 정식으로 항의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날따라 회사에서 바쁘고 정신이 없었는지 나는 지나치고 말았다.


이런 일이 10년 동안 잊을만하면 한 번씩 벌어졌다. 얼마 전에는 아래층 아저씨 차에 관리사무소 명의의 경고 딱지가 수십 장 붙여 있는 걸 발견하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우리 아파트 단지는 지반이 화강암이라 지하 주차장을 2개 층밖에 파지 못했다. 그것도 단지 반쪽만이고 나머지 반쪽은 지하 주차장이 한 층뿐이다. 가구당 주차대수가 1.09 대니 주차난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다. 우리 집만 해도 차가 두 대였으니 말이다. 거기에 전기차 충전을 위해 전용 주차공간이 설치되면서 문제는 갈수록 심해졌다.


밤늦은 시간에 귀가하는 날이면 주차할 곳이 없어 주차장을 몇 바퀴씩 헤매 다니기 일쑤였다. 입시수험생을 챙기던 재작년에는 우리 차에도 경고장이 여러 번 붙었다. 자리가 없으면 대부분 주치공간이 아닌 곳에 세울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밤 11시에 주차장을 수없이 돌아도 빈자리가 없어서 다른 차 통행이 가능한 통로공간에 주차를 한 적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여지없이 경고장이 붙어있었는데 거기에는 매직으로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자정 12시 기준 빈 주차공간이 한 곳 있었는데 부정주차를 하였음. 주의 요망”


경비직원은 밤 12시 순찰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차를 세운 11시에는 몇 바퀴를 돌아도 빈자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30분 내지 한 시간 간격으로 주차장에 내려와 빈자리를 찾아야 했다는 논리인 건지 도무지 글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앞서 얘기한 아래층 아저씨의 차에는 그동안 받은 경고장이 모두 앞유리에 붙어있었고 차주인이 직접 경비직원에게 쓴 호소글이 함께 적혀 있었다. 내용은 대략 이런 것이다. 업무상 귀가가 늦어 항상 주차공간이 없다. 그런 사정을 여러 차례 호소하였는데 매일 경고장이 붙는다는 하소연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글귀는 이랬다.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ㅠㅠ”


나는 이 글귀가 경비실에서 적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매일 경고장이 붙는 주민의 하소연이었던 것이다.


서울 하늘 아래 무수히 많은 아파트단지에는 참 별일이 많다. 7개월 전에 이사를 계획하고 집을 내놨지만 경기가 안 좋아 집 보러 오는 이도 뜸하다. 언젠가 이사하게 될 곳도 아파트가 될 터라 나는 또 두려움을 안고 새 집에 가게 될 것이다. 매주 놓치지 않고 애청하는 EBS “건축탐구 집”에 나오는 호젓한 나만의 주택은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 사회적 현상을 분석할 때는 언제나 객관적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나타나는 갈등상황은 특히 더 예민하다. 아파트 주민과 경비직원의 관계는 통상 경비직원이 약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은 사례가 일어난 건 단순하게 해석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심스럽다. 나는 사실에 기초하여 이 글을 썼지만 특정집단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사회 구조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인간관계에서 어떤 이유로든 일방적인 권력행사가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며, 그 부당한 일례를 소개했을 뿐이다. 설령 그들이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약자이더라도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베스트 컨디션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