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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16. 2023

베스트 컨디션은 없다

최적의 몸 상태라는 환상

어릴 때부터 나는 건강한 몸이 아니었다. 지금으로 치면 늦둥이도 아니지만 어머니께서 삼십 대 중반에 보신 넷째여서인지 항상 골골했고, 그 덕에 생기다 말았다는 어마어마한 말을 무시로 듣고 자랐다. 서너 살 적에 신장염에 걸려 1년 정도를 누워 지낸 탓에 성장도 늦었고 비쩍 마르기도 했었다.


초등학교 3학년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체중은 20kg도 나가지 않았다. 더 심각했던 건 1년 동안 고작 1kg이 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 개운하고 상쾌한 몸 상태를 겪어보지 못한 게 말이다. 20대 초반 군복무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다. 군생활이 버거울 만큼 힘겹지는 않았지만 언제나 몸은 무거웠고 걸음걸이는 보기에도 터덜터덜 힘이 없었다. 부대 안에서 헌병 장교에게 걸려 군기교육대에 갈 뻔한 적도 있었다. 걷는 자세가 군인답지 않다는 이유였다.


게다가 알레르기가 심해 환절기만 되면 비염에 결막염에 피부염이 동시에 왔고 반창고 크기만 한 발바닥 티눈은 두 번이나 수술을 했지만 한 달이 안돼 다시 생겨나 여전히 나의 보행과 수면을 방해하는 주범이 되었다. 스무 살 적에는 왼쪽 어깨가 탈골되어 무리하게 힘을 주면 수시로 빠진다. 이런 나에게 베스트 컨디션이란 단어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이기에 언제나 낯설고 생소하다. 그 실체가 과연 존재하는가 의문이 들 때도 많았다.


내 부정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은 꽤 어린 나이에 생겨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몸이 그럴 만했으니 말이다. 한참 알레르기가 심했을 때는 아침에 일어나 개운하다는 기분을 한 번은 느껴보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니 죽음의 순간엔 혹은 그 이후엔 그렇지 않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사는 이들도 많은데 나의 이런 불만이 배부른 소리라는 걸 잘 안다. 나는 그저 최상의 몸상태를 가져본 일이 없을 뿐 사지 멀쩡하고 활동에 아무 지장이 없다.


그리고 나이가 들면서 노화로 인한 신체증상이 부쩍 늘었다. 60대, 70대를 넘으면 더 심해질 테지만 벌써부터 꽤 다양한 노화현상이 나의 몸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마음이 더 편하다. 한창나이에 골골했던 몸은 나를 불쾌하게 했지만 이제 내 몸의 증상은 유별날 것도 없었다.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들을 기준으로 하면 난 평균 이상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이는 내게 많은 것을 선물해 주었다. 더는 나약한 몸뚱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 내게 죽음이 찾아왔을 때, 그것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다소 일찍 찾아오더라도 그때 나는 유난스럽게 굴지 않을 것 같다. 반백년을 살아보고야 깨닫게 된 것은 더 오래 산다고 썩 나아질 일도 없다는 사실이고, 과거의 한 시점이 깊게 후회스럽지도 않다는 거다. 내가 잘 살아왔다는 뜻은 아니다. 볼품없이 살았지만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서 이보다 썩 나은 삶을 살 것 같지 않다.


이만큼 산 것도 내 초라한 능력을 고려할 때 선방한 것이다. 그래서 미련이 없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미래를 꿈꾸지 않으니 언제 죽음이 닥쳐도 아쉬울 게 무언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정신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자립할 형편이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심각하게 우려가 되진 않을 것 같다. 내가 살아있다한들 그리 큰 힘이 되지 못할 것이고 그들도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시련을 겪게 돼 있으니 말이다. 설령 내가 살아있다 해도 조금의 의지가 될지언정 결국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몫이다.


몸은 생명을 유지할 때에만 쓸모가 있다. 이제 소멸을 준비해야 할 나이에 무슨 몸걱정 따위를 하겠는가? 이제 내게 몸의 컨디션은 중요하지 않다. 어딘가 멈추고 다치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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