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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Jan 18. 2024

잘생긴 형이 참아

가끔은 어이없는 말이 위로가 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비위가 좋아야 한다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말들이 부지기수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로 얽힌 사회에서는 꼭 직장에만 해당하는 일도 아닐 거다. 우리는 늘 타인의 불쾌한 공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탁월한 멘탈과 더불어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노하우를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 맹렬한 공격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 테니까.


20여 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이런 테크닉을 터득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수없이 많은 사건들(그것도 제각기 다른 성격과 양상으로)을 경험했지만 그때의 비릿한 감정에서 차차 건조한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은 아주 고약한 상황에 직면하여 어찌할 수 없을 만큼 흥분하거나 당황해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평온한 감정을 되찾고 객관적으로 그때를 기억해 내곤 했다. 그렇게 성숙한 시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차분해졌다는 뜻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시간이 흘러도 불쾌감이나 모욕감을 해소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유독 그 독한 감정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졌고 그걸 알아내려고 기억하기 싫은 일들을 다시 끄집어내었다. 그리고 하나씩 각각의 사건들과 내 감정의 변화를 복기해 보았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쉽게 결론을 찾을 수 있었다.


먼저 각 사건들은 기억이 선명한 것과 흐릿한 것으로 분류되었다. 선명도는 시간에 비례하지 않았다. 오래된 것과 최근의 일이 똑같이 선명하게 기억되는 경우는 대부분 불쾌감의 정도가 유사했다. 기분이 나쁠수록 또렷하게 기억이 소환되었고, 그 불쾌감이 지금까지 동일하게 느껴진다면 아직 그 감정을 추스르기 어렵다는 뜻이다. 감정을 추수를 수 없는 이유는 내게 그 고약한 감정을 선사한 이를 무시해 버릴 수 없는 현실적인 한계 탓이었다.


쉽게 설명해 보자. 직장에서 내게 감정이 상할 말을 던질 수 있는 대표적인 상대는 상사다. 그의 인격과 성품이 뛰어나다 해도 업무로 얽힌 관계에서는 언제나 나는 약자가 되며 표적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 받는 상처는 의외로 치유가 쉽다. 불가항력이라고 치부할 수 있고 대부분의 조직은 다양한 수단으로 불쾌감을 상쇄시킬 분출구가 마련되어 있다. 술자리 뒷담화를 비롯해 동병상련의 경험을 공유한 동료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일반적인 경우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발생했다. 직장 상사가 나에게 충동적으로 혹은 즉흥적으로 던지는 말들은 크게 상처로 남지 않는다. 이미 나는 그런 말들을 다루거나 응대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상대보다 훨씬 성숙하게 말이다. 진짜 큰 상처는 상대가 의도적으로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할 때였다.


그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드물게는 분명히 발생했다. 그때의 내 감정은 역겨움이다. 그리고 직장생활에 대한 환멸이었다. 그들의 천연덕스러움 앞에서 나는 더더욱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그들은 나의 흥분과 분노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이를 악물고 그 순간을 버텨냈다.


그런 몇몇 기억들에서 지금의 내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상황이 이내 해소되어 나의 저항이 필요 없게 되었거나 내가 한결 나은 직장으로 옮기게 되면서 그들을 물색없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누가 뭐래도 그들과의 관계에서 여유로운 승자였다. 놀랍게도 나는 그런 통쾌한 복수(?)를 꽤 많이 이루어냈다.


그런데 불과 2~3년 전에 일어났던 한 사건은 지금도 도무지 감정을 추스를 수 없다. 내가 그때의 모욕감을 해소할만한 계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를 용렬하게 공격한 상사는 여러 가지 나쁜 평판에 직면해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 나는 내 신분과 권리를 이용해 그녀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것으로 개운치 않은 항변을 하기는 하였다. 그런데 영 뒤끝이 깔끔하지 못했다.


나는 직장 내에서 그녀를 압도하지 못했다. 타인의 시선에서는 어떻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내 자신에게는 무력해 보였다. 그 기억은 그렇게 상처가 되어 아물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 사건 자체를 어디에서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내 안에 응어리로 남았다. 그런데 아주 뜻밖의 자리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건 놀라운 일이었다.


1년반쯤 전에 오래 알고 지낸 학교 후배이자 직장 동료이기도 했던 두 친구를 만난 자리였다. 한 친구가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도전적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인사차 만난 술자리였다. 밤늦은 시간까지 차수를 바꾸어가며 기분 좋은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직장이 서로 달라지면서 뜸해지긴 했지만 눈빛만으로도 통할만큼 손발과 머리가 잘 맞았던 동료였기에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상처를 꺼내게 되었다.


그때 사람 좋고 순둥순둥하기로 유명한 친구가 뚱딴지같은 말을 던졌다.


“형, 그 여자 형보다 나이 많지? 혹시 못생긴 아줌마 아녜요?”


본질에서 벗어난 그 친구의 말에 난 뭐라 대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아니 당황했다. 그런데 후배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맞지? 못생겼지? 딱 봐도 답이 나오네… 형 괜찮아… 형이 너무 잘생겨서 그런 거야… 형이 이긴 거야… 잘생긴 형이 참아 “


이 녀석의 능글능글한 이야기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는데 은근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도 가끔 그 얘기가 떠오르곤 하는데 웃음이 났다. 그 녀석은 어떤 말로도 내 상처에 위로가 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것이다. 내 성격 상 그들이 어떻게든 그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여 내 입장을 두둔해 준다고 해도 나의 개운치 않은 뒤끝이 달라질 리 없었다. 그 걸 아는 친구들이었기에 그렇게 터무니없지만 유쾌하게 나를 위로해 준 것이다.


나는 그들로 인해 분명히 위로를 받았다. 그들의 위로가 타당해서가 아니다. 내게 위로가 된 것은 그들의 깊은 속마음이 고마워서였다. 내가 이런 위로를 받을 만큼은 잘 살았다는 생각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 역시 그때의 일이 그저 못생긴 아줌마의 히스테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녀석도 그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후배의 말은 그 어떤 진중한 말보다 진정성이 있었다. 어이없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때를 아는 자가 현명한 거다.


* Image from NETFL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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