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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Nov 13. 2023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싫어하는 일 열개를 하라고?

‘일’의 사전적 의미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생계나 벌이를 위한 수단으로써의 일(work), 두 번째는 계획과 의도를 갖고 벌이는 용무(business), 마지막은 어떤 내용을 가진 상황이나 장면(matter)… 우리말의 ‘일’은 용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러나 대개 일은 대가를 받고 수행하는 돈벌이의 의미가 강하고 직업과 거의 같이 쓰인다. 그래서 직업이 무엇이냐고 묻기보다는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곤 한다.


오래전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방송프로그램이 있었다. 병원, 경찰서 등 특정한 공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3일 동안 다큐로 기록하는 방송이었는데 애청하는 프로였다. 한 번은 서울 대학로의 3일을 방송했는데 유독 기억에 남는 건 편의점, PC방 등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 친구들의 모습이었다. 그때 밝고 건강한 인상의 한 청년과 인터뷰를 했는데 연극배우로 살기 위해 온갖 알바를 섭렵해 온 그 친구의 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그에게 제작진이 힘들지 않냐고 물었을 때 젊은 연극 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좋아하는 일 하나를 하려면 싫은 일 열 가지 정도는 해야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그깟 고생이야 얼마든지 감수한다는 그 청년의 대답은 고정관념에 갇힌 기성세대에게 묵직한 한방을 날리는 것 같았다. 철학자 최진석 교수가 남겼던 말과도 연결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오래 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 오래 해야 잘할 수 있고 그 일을 잘 해내야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일이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처음부터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낼 수는 없으며 어떤 일은 아무리 오랫동안 열심히 하여도 돈이 따르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을 접고 돈이 되는 일을 한다. 당연히 즐거울 수 없고 행복할 수 없다.


나의 직업은 내가 좋아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지금껏 나의 생계수단이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돈벌이 이상으로 내 직업을 평가해 본 적이 없다. 다만 그 직업이 갖는 태생적인 소명의식을 무시하지 않았을 뿐, 그리고 생업에 대한 소중한 가치를 인정했을 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지 못했고 끊임없이 갈등했다.


그리고 휴직 8개월에 접어들자 기존 직장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본심과 거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나는 심각하게 방황하고 있다. 이 와중에 문득 과거 한 젊은 연극배우의 인터뷰가 떠오른 것이다. 돈이 되지 않는 연극배우가 그의 직업이다. 그의 생계수단이 투잡, 쓰리잡을 넘나드는 일용직 혹은 알바이더라도 그의 본업은 배우다. 그 확고한 정체성이 그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좋아하지 않는 생업 때문이 아니다. 돈이 되건 안되건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체성은 직장인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안정적인 직업에 안주하다가 좋아하는 일을 슬쩍 놓아버렸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연극 한 편을 공연하기 위해 밤잠을 못 자고 돈을 버는 젊은이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는다. 그가 지금도 연극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그랬기를 바란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안다. 그 일을 내 생업과 병행하기를 꺼렸을 뿐이다. 결혼, 육아, 아이들 입시, 간병… 이런 일들을 핑계로 나는 시간을 허비했다. 급기야 생업마저 내려놓고 가족을 챙기고 있다. 내가 진정 부끄러운 것은 가족을 건사하는 일이 내게 싫어하는 일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건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중에 하나다. 내가 싫어하는 일은 직장생활뿐이었다.


고작 한 가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이렇게 끔찍하게 갈등하는 이유는 그 한 가지의 싫어하는 일 따위에 내 정신세계 전체를 저당 잡혔기 때문이다. 그깟 직장 따위에 내 행복을 반납하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이란 말인가? 직장은 직업은 사회적 지위는 나의 정체성이 아니다. 나의 아이덴티티는 아빠, 남편 그리고 끊임없이 세상을 관찰하는 탐구생활러다. 그 좋아하는 일을 지속하기 위해 내 직장은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었다. 싫다는 이유로 어찌 마다할 수 있겠는가? 열 가지도 아닌 고작 한 가지만으로 말이다.


그 일이 싫다는 게 그 일을 버려야 할 이유가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덕에 좋아하는 일을 원 없이 할 수 있었다. 핑계없는 무덤이 없 듯 나는 싫은 일을 뿌리치기 위해 투정만 하고 있었다. 젊은 연극배우보다 나는 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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