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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Apr 23. 2024

위기는 반복된다

과연 몇 개의 고개가 남아있는 걸까?

모든 문제에는 원인이라는 게 있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이며 대체불가한 원인이 있다. 그게 무엇인지 모르면 평생 답답해하겠지만 그걸 알아도 해결할 수 없다면 모르는 것과 같은 결과가 초래된다. 그래도 한가닥 희망은 있다. 이유를 알았으니 말이다. 뭐라도 해 볼 엄두가 난다.


내 아이의 우울증과 불안장애는 어릴 적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의 트라우마가 촉발제였다. 그 강렬한 PTSD는 아이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어쨌든 우리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고 조금씩 아이가 그 끔찍한 상처에서 헤어 나오도록 돕고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는 아주 조금씩 밝아졌다.


그랬던 아이가 나의 복직을 기점으로 다시 흔들리고 있다. 3월부터 학교에 나갔고 오전수업도 채우지 못하고 조퇴를 하고는 있지만 한해 전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학교에 적응해 갔다. 혼자 교실에 들어갔고 3교시까지 교실에서 수업을 받기도 했다. 혼자서는 교실 문턱도 넘지 못했던 아이다. 때로 공황발작으로 보건실이나 위클래스를 찾았지만 아이는 분명히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빠의 복직으로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진 아이는 다시 가라앉기 시작했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어 급기야 우울증이 찾아온 아이는 처음에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폭발했다. 그게 어느 정도 소진되어 갈 무렵 아빠와 동행하는 삶에 조금씩 익숙해졌고 약물과 상담치료도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복직을 했다. 조금 걱정이 됐지만 이겨낼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채우기 위해 PT강습을 시작했고 입시도 안 하면서 조소실기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살아 온 집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특히 아이의 방을 꾸미는데 최선을 다했다. 원하는 색상으로 도배를 하고 원하는 가구들을 배치해 주었다. 아이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상담센터의 상담실처럼 꾸며 주었다. 그리고 방심했다. 아이는 그 방에서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잠시 창문을 열고 난간에 올라서 본 것이다.


그 사실을 알게 된 건 일주일 가량 지나서 아이가 상담선생님께 털어놓은 4월 12일이었다. 나는 상담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반차를 내고 아이를 챙겼다. 주말 내내 고심하던 끝에 아이는 다시 학업중단숙려제를 신청하고 학교를 쉰다. 작년에 거의 절반 가까이 신세를 진 학교밖 위탁교육기관에 가기를 희망했지만 내 아이와 재입소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는 불안이 높아 오래 있을 수 없고 집에서는 생각이 많아져 혼자 있을 수 없다. 나는 7주의 시간 동안 내 아이를 지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았다.


학교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만들기 위해 복교했던 아이는 자신이 1년이라는 시간을 허송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 복구할 수 없는 시간의 짐을 온전히 느끼며 학교를 다녔던 것이다. 고3이라는 중압감에 치인 아이들에게 내 아들을 돌아보아줄 여유는 없었다. 그랬다. 아이는 또래집단에서 외면받은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고, 그 상처는 같은 곳에서만 치유되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에게 어릴 적 상처를 치유받을 기회는 이제 6개월 남짓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중 두 달을 또 반납하고 말았다. 같은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과는 그나마 공감의 영역이 넓다. 그런데 내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사귀는 법을 알고 싶어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한 번도 제대로 폭넓게 친구를 사귀어 본 일이 없는 아이는 소위 말하는 핵인싸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아비가 천만금을 주고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문제의 해답을 나는 모른다. 물론 내 아이도 모른다. 다만 이 아이가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은 안다. 가혹하고 혹독하더라도 아이는 사회에서 조직에서 인간관계에서 때로 즐겁고 때로 상처받으며 그들과 어울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아이는 오랫동안 고립감에 힘겨워했는데, 고립감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더구나 청소년기에는 전혀 없다. 모든 인간관계를 단절하고 싶어하는 나조차 20대까지는 친구밖에 몰랐다. 친구 만나려고 연예를 포기했을 만큼...


아이는 밝아졌고 깊숙이 나락으로 떨어지듯 가라앉는 우울감을 스스로 이겨내려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높지만 상담에서는 그조차 삶에 대한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내 아이는 분명 우울증 진단을 받은 2년 전 가을보다 좋아졌다. 그렇지만 이 아이에게 완치의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 병에 완치란 없는지도 모른다. 5년 내 재발하지 않으면 완치판정을 받는다는 암선고와는 분명 다르다. 그래서 나는 내 아이에게 남아있는 위기의 고개가 도대체 얼마인지 모른다.


그래서 늘 노심초사, 안절부절, 전전긍긍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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