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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y 17. 2024

하고 싶은 게 없을 때...

무력감과 의욕부진을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

이 아이는 무력감과 싸우고 있다. 싸우는 애처럼 보이지 않겠지만 처절하게 싸우는 게 맞다. 무력감의 결론은 언제나 모든 걸 포기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 아이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건 처절한 싸움의 결과다. 그 충동이 날마다 아이에게서 일어난다면 나는 하루도 아이 곁을 떠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아이를 지키는 게 아이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여기에 생각이 이르면 나 역시 무력감에 치를 떨게 된다.


하고 싶은 게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에는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쉬다 보면 무료해지는 순간이 오고 다시 무언가를 해보고 싶게 될 거라고 믿었다.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런 상태에 있어 본 적이 없었기에 아이의 기분을 나는 알지 못했다. 아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자신에게 실망하고 좌절했으며 그런 자신의 미래에 절망했다.


아무리 유튜브를 보고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해도 아이는 편안해지지 않았다. 그것을 과도한 각성상태라고 정의 내릴 수는 있었지만 그런 아이를 아무도 일으켜 주진 못했다. 아무도... 아이는 우울증 진단을 받은 2년 전부터 서서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지 못했고 씻지 못했으며 종국엔 움직이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런 아이가 정상적인 삶(?)으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 나는 별 짓을 다했다. 그 덕분에 아이는 밝아졌고 조금씩 몸이 말을 듣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힘겹다.


오늘 점심을 먹으러 나에게 온 아이는 근 한 달여 만에 다시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그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알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다시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것 같다. 내가 복직을 한지 한 달 하고도 보름이 지났다. 아이는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힘겹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보면서 아이와 카톡으로 대화를 한다. 아이의 대답이 늦거나 메시지를 읽지 않을 때마다 위치추적기를 켜보곤 한다. 이 불안은 나의 영혼도 잠식하고 있다.


아이는 이렇게 무기력해진 원인을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찾는 것 같다. 물론 어릴 적 학교폭력의 트라우마가 아이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맞다. 그런데 그 과거에 갇히면 아이는 헤어 나올 수 없을 것이다. 겨우 폭발하는 분노가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감정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다. 지쳐서 조금 불씨가 작아졌을 뿐이었다. PTSD환자들을 위한 신체감각치료를 10개월째 받고 있지만 아이의 불안은 여전히 존재했다.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10년 가까이 쌓여 온 것이니 말이다.


아이의 무력감을 그저 지켜보는 게 맞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무력감을 이겨내려고 아이가 스스로 발버둥 치지 않는 한 내가 아이의 손과 발을 일으켜 세울 수 없다는 걸 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무언가에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으면 나는 어떻게든 그 불씨를 살려보려고 하지만 내 마음같이 될 턱이 없다. 그 무한반복의 루프에 빠져 살고 있다. 하지만 절대 무한루프는 아닐 것이다.


내 아이에게도 어느 순간에는 모든 걸 리부팅 할 수 있는 치트키가 찾아올 것이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Ctrl-Alt-Del를 눌러줘야 한다. 그래서 나는 잠들 수 없고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아이는 학업중단숙려제 일곱 주 중에 이제 겨우 두번째 주를 마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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