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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May 28. 2024

멈추면 보이는가?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던데…

아이가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일(특별한 연관성은 없다)에 시작했던 P.T(Personal Tranining)를 그로부터 49일이 되는 오늘 전체 20회기 중 11회를 겨우 채우고서 멈췄다. 그 사이 멈춰야 할 것 같은 신호가 무수히 느껴졌지만 나는 오전 11시에 아이를 P.T 짐에 들여보낼 때까지만 해도 오늘 당장 이것을 멈추게 되리라는 걸 몰랐다. 그저 첫 20회 차 등록의 마감일인 6월 18일까지 모자란 회차를 가능한, 최대한 채워 볼 궁리만 했다.


운동에 대한 아이의 뜨거웠던 열정은 첫 3~4회 차를 지나며 조금씩 식어 내리기 시작했다. 10회분만 등록하려다가 강습료를 10% 할인해 준다는 얘기에 낚여 20회를 등록하면서도 이 횟수를 모두 챙기진 못하겠지만 운동에 습관을 들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 기대해 마지않았다. 기대가 크면 절망도 깊다. 나는 언제나 이 사실을 돌아보면서도 매번 기대를 접지 못했다.


운동을 해서 몸을 만들려던 아이가 왜 P.T를 힘겨워했을까? 딸아이는 모든 규칙적인 운동습관이 그렇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그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조심조심 아이와 이야기를 나눠본 결론은 우울감이었다. 나의 복직 이후 불안이 높아진 아이는 삶에 대한 끈을 자꾸만 놓게 되었다. 그러니 몸만들기 따위에 관심을 둘 리 없었다. 아이는 혼자만 낙오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P.T 강사의 문제도 아니었고 아이의 변덕스러운 마음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아이에게는 운동을 할 어떠한 동기도 남아있지 않았고, 나로서는 그보다 더 큰 걱정이 없었다. 아이는 삶의 의욕을 자꾸만 내려놓고 싶어 했다. 아이 입장에서는 세상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지나온 상처도 자신을 이 지경으로 몰고 왔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이를 혼자 두는 일만큼 나를 불안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과거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지만 너는 그걸 딛고 일어서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내가 백날 떠들어봐야 아들의 귀에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당연했다. 가끔씩 다니던 성당에도 나가지 않았다. 전부터 세례를 받고 싶어 하던 아이에게 기다리던 입교일정이 잡혔다고 알렸을 때 아이가 무심히 말했다.


"요즘은 신이 있을 거라고 믿어지지도 않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다행히 3주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가죽공방에 재미를 붙여 끔찍한 P.T 수업을 마치고도 아이는 공방에 가겠다고 했다. 그곳이 아이에게 위안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지만 이곳 또한 언제 멈출지 모른다는 불안이 나를 엄습해 왔다. 아이가 2년 전 우울증 진단을 받은 뒤 무엇을 했고 언제 멈추었는지를 헤아려 보았다.


테니스 강습은 두 달을 채우지 못했다. 독일어 과외는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가장 오랜 기간 지속되어 5개월째에 멈췄다. 오보에는 등록을 하고 첫 강습을 가기 전에 멈추었고, 일시보호프로그램의 오후수업은 단 2회를 못 가고 멈추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아이는 무언가를 꾸준히 열심히 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삶을 멈추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어떤 것이 동기부여가 되겠는가?


아이가 삶을 멈추고 싶어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행복하지 않았고, 행복하지 않으며,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아이를 지배했다. 그 생각을 바꿔 줄 마법이 내겐 없다. 아이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내 능력 밖이었다. 아이가 유일하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즐거워 보이는 때는 아빠와 함께 할 때뿐이다. 여행을 다니고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를 순례하고 좋아하는 올드카 이야기를 나눌 때에만 아이는 불안에서 벗어나 있었다.


나는 지난 1년간 365일 24시간을 아이와 함께 했지만 슬프게도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나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야 이 가정을 지켜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 아이는 혼자만의 시간을 힘겨워했다. 복직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았다. 집을 뜯어 고치고 아이의 방을 아늑하게 만들고 엄마와 요리를 하도록 주방을 꾸며 주었지만 그것들이 아이의 빈 시간을 채워주진 못했다.


오랜만에 걸려온 형의 안부전화가 나의 우울감을 보태줬다. 아이의 근황을 묻더니 대뜸 한마디를 던졌다.


"이겨내야지"


이 뻔한 말이 오늘따라 나의 심기를 건드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영혼이 없었다. 그에게 의지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게 무심한 말을 들을 만큼 내가 잘못 살지도 않았는데 왜 그는 세상의 모든 고난을 이겨낸 사람처럼 말하는 걸까?


"The Darkest hour is jus before the Dawn."


동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은 곧 동이 틀 것이니 조금만 더 버티라는 말일 것이다. "존버"라는 아이들의 말이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것일까? 기다리는 자에게 항상 동이 트기는 하는 걸까? 아직 동트기 전이 아닌 걸까? 그렇다면 설마 지금보다 더 어두워질 수도 있는 걸까? 생각이 많아지니 우울감은 더 깊어졌다.


두시에 공방에 간 아들이 아주 조금은 밝아져 있기를 바랄 뿐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나의 공간은 어두운데 나는 홀로 빛을 내야 한다. 홀로… 나는 광원의 조력없이도 스스로 빛을 내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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