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불교교리를 이해할 수준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모든 종교와 철학 혹은 명리학과 샤머니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축적해 온 우주와 인간에 대한 통찰은 일정 부분 닮아있다고 믿는다. 각자 다른 언어를 쓰고 있을 뿐 인간의 세계관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이 번뇌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를 탐욕(탐)과 분노(진)와 어리석음(치)에서 찾는 불교의 삼독을 새삼 떠오르게 하는 일들이 최근 부쩍 자주 일어났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그리고 어리석음에 빠지는 일이 늘 반복되는 인간의 삶에서 그것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게 어찌 쉬울 리 있겠는가?
그래서 불가의 수행자는 그 모든 것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열반에 들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해 본다. 나에게 번뇌는 탐욕도 어리석음도 아니고 분노였다. 감당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당최 배겨낼 재간이 없다고 생각되었지만 나는 꾸역꾸역 살아내고 있다.
그 인내의 결과인지 내 주변에 일어나는 충격적인 일들이 그럭저럭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수습되고 있다고 믿었다. 문제는 내가 탈진을 넘어 심각한 번아웃에 빠져있다는 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나는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독박의 끝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이라는 건 어떤 환경에 처해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일이었다. 격랑 치는 삶에서는 미세한 요동조차 격랑에 휩쓸린다. 그리고 거대한 파도를 만들어냈다. 평정심을 유지하는 일이 어려웠다. 나의 삶은 산사에서 홀로 수행하는 구도자의 그것과 달랐다. 세속과의 연을 끊어낸 그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나의 분노는 충분히 납득할만한 인과관계의 결과물이었지만 그 분노가 분출되면서 나의 삶은 더욱 격하게 요동치고 나를 소진시켰다. 이 악순환의 사슬을 끊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난 그에게 내 영혼을 내어줄 마음도 있다. 번뇌가 지속되어 업을 쌓으면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하는데 나는 억겁의 세월 동안 환생할지도 모르겠다.
어찌 되었든 나의 삼재는 끝이 보인다. 그런데 과거의 삼재를 돌이켜 보니 과연 삼재가 지나고 나면 평온한 삶이 유지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폭풍전야와 같은 불안과 긴장이 항상 내재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특정한 사건에 꽂혀서 내 삶 전체를 관통하는 맥락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의 생애는 통으로 삼재가 아니었던가? 고통과 번뇌가 없이 삶이 이어졌다면 그는 심각한 인지능력장애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