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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Sep 08. 2024

성묘객

추석을 앞두고 만난 남자

아버지의 산소를 서울근교로 이장하고 처음 맞는 추석, 한주 전부터 성묘객이 붐빈다는 소문에 주말을 하루 앞둔 금요일에 산소에 들렀다. 화장을 하더라도 땅에 묻히는 걸 최고로 치는 장묘문화 덕분에 봉안묘는 분양이 이미 끝나버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내 아버지의 유골함은 담벼락에 모시게 되었다. 그래도 실내 유리장 안에 모셔진 납골당과는 달라 햇빛도 받고 시원한 산공기도 맞을 수 있는 봉안담이 나쁘지 않았다.


이날은 오전에 비까지 내려 산속은 상쾌하고 고요했다. 그 분위기가 좋아 한참을 머물고 싶었는데 봉안담은 8개 층으로 나누어 유골이 모셔져 있어 간혹 성묘객이 겹치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평일에 오면 괜찮겠거니 했는데 추석연휴를 앞둔 탓인지 길가에 오래된 고급승용차가 한 대 세워져 있었고 안에는 백발의 남성분이 점잖게 그러나 처연하게 앉아 계셨다. 뒤편에 앉아계신 그분을 의식하며 잠시 아버지의 묘소 앞에서 묵념을 했는데 그분이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화병과 삶은 옥수수가 가지런히 담긴 그릇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화병이 놓인 자리 위에는 5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인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분은 상처한 아내의 성묘를 온 것 같았다. 나는 잠시 길가에 나와 산공기를 마시며 머물렀는데 언제 왔는지 모르는 그분은 가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틀 전에 형님이 꽃을 가져다 놓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따로 준비하지 않았는데 그사이 두 송이는 시들었고 한송이는 온데간데없었다. 아래 묘원 사무실에 내려가 다시 꽃을 사들고 와 각각의 자리에 물을 담아 꽂아드렸다. 그때까지도 백발의 성묘객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분의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는지 돌아오는 길 내내 나도 모르게 그분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길어야 10년 이내에 아내를 떠나보낸 것으로 보이는 그분은 은퇴한 지 얼마 안 되었을 것이다. 고위직 공무원이었거나 대기업 임원은 했을 것 같아 보였다. 자녀들이 있을 테지만 평일 어머니의 성묘를 함께 올만큼 한가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니 그 아이들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거나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회상하고 싶어 홀로 나선 길이었을 것이다.


고인은 평소에 삶은 옥수수를 좋아할 만큼 소탈하면서 야무진 여인이었을 것이다. 젊은 나이에 몹쓸 병에 걸려 몇 년 아프다가 먼저 세상을 등진 것이다. 아내를 잊지 못하는 성묘객의 마음은 작은 화병과 가지런히 담아 온 옥수수와 봉안담 옆에 붙여있던 생전의 사진이 모두 설명해 주고 있었다. 길가에 세워 둔 차는 10년은 족히 넘었을 테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아내의 묘소에 앉아 그분은 어떤 상념에 잠겨 있었을까?


남편을 일찍 보낸 여인들은 홀로 장수하는 경우가 많지만 아내를 먼저 보낸 남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능력 있는 홀아비들은 재혼을 한다. 이날 만난 분은 재혼을 하고도 남을 형편(?)으로 보였지만 여전히 아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분의 기구한 팔자가 안타깝지는 않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느끼며 여생을 사는 그의 삶이 어떠할지 조금 궁금했다. 아내가 있어도 아내의 공백(?)이 느껴지는 나의 삶과는 분명 다를 것이다.


무딘 성품의 아내를 두어 삶이 고달픈 내가 감히 짐작하기엔 어려운 일이지만 알뜰하고 살뜰하게 가족을 살피던 아내의 빈자리는 남은 가족들에게 한결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고인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짙게 남아 오래도록 그리움으로 소환될 것이다. 떠난 자리에 향기가 남았다면 수명의 길고 짧음을 떠나 성공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고인의 사진 속 얼굴이 유난히 평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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