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일 동안...
한 직장을 3년 이상 다녀본 적이 없고 1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섯 곳의 직장을 그야말로 전전(?)하였던 내가 이곳에서 만 11년의 시간을 채우리라는 걸 예상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심코 출근해 보니 오늘이 만 11년을 꽉 채우는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이 특별한(?) 날을 나 자신만큼은 기념해야 할 것 같아 잠시 짬을 내었다. 보고서 마감 일정이 조금 미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그런 것이기도 하다.
10년도 20년도 아닌 11년을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이유는 없다. 1이라는 숫자가 반복되었다는 게 특별히 대단한 일도 아니다.(1이라는 숫자(1등, 제일...)에 과하게 집착하는 내 어머니라면 모르지만) 그런데 굳이 그 시간을 되짚어보려 하는 이유는 내가 이 일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의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 듯 우울증 투병 중인 아들이 가죽공예를 배운 지 석 달 만에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고급 가죽가방을 선물했다. 이 소중한 가방을 나는 앞으로 11년이 아니라 평생 들고 다녀야 할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쫓겨나는 그날까지 내 자유의지로 은퇴할 수 없다. 이 가방은 직장인의 서류가방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태생적으로 직장이라는 조직사회와 어울리지 않았다. 어떤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그동안의 잦은 이직은 은퇴에 대한 욕망과 현실 사이의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무려 11년간 그 욕망을 억누르고 살았던 것이다. 혹자는 드디어 철이 든 것이라 할 것이고 목구멍이 포도청, 더 나은 직장을 찾지 못한 탓이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이곳보다 더 나은 직장을 찾지 못했고 그렇다고 무턱대고 일을 그만두기엔 경제적 압박이 너무 컸다.
모든 월급쟁이들이 같은 이유로 회사를 다닌다. 나의 푸념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다. 50대 중반에 들어서는 나이에 직장에서 버티려면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는 24년을 넘게 실무자로 살고 있다. 그 전문성이 나의 당당함을 보장해 주지만 그만큼 나는 실적에 비례한 삶을 살고 있다. 관리자가 되면 자신의 실적을 채워줄 부하직원을 닦달하게 되지만(이 스타일의 차이가 리더십을 가르기도 한다) 나는 자가발전하지 않는 한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일하며 존재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믿지만 25년 차 직장인은 대부분 그 동력을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한해 한 해가 다르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나의 직장생활에도 해당하는 거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이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지도 모른다. 나이에 맞는 직위, 나이에 맞는 보수, 나이에 맞는 업무... 결국 남들 올라갈 때 올라가라는 뜻이다. 직급체계가 단순한 연구직인 나에게 장인어른은 세배를 할 때마다 승진여부를 물으셨다. 같은 말을 10여 년 반복했더니 이제 묻지 않으시는데 그 이유는 사실 내 나이에는 직장에 붙어있는 것만으로 감사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이 나의 승진을 포기하신 게 반갑기보다 서글픈 건 브라운아웃이 엄습한 내 체력 탓이 크다. 교수들이 테뉴어를 받으면 논문을 쓰지 않는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그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아들이 만들어 준 가방을 매일매일 들고 다니며 마음을 다잡을 것이다. 그 아이가 그리고 그 아이의 누나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며 자리를 잡는 그날까지 나는 매일매일 가방을 보며 버텨낼 것이다. 이런 가방 하나쯤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게 직장 아닌가? 대한민국의 50대 직장인 중에 이런 값비싼 가죽가방을 가진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나는 자식을 잘 두어 성공한 사람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