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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산우공 Oct 17. 2024

복직도 습관

200일을 채우며 든 생각

첫 번째 복직을 한 지 400일이 안되어 두 번째 휴직을 했고 그 뒤로 1년 만에 다시 복직을 했는데 어느새 200일이 지났다. 세월이 무상하다고 하는 말은 사실이다. 흐르고 나면 그럴듯하지만 지나는 순간들은 그렇게 무심하게 흘러간다. 중간중간 긴장과 불안, 흥분과 좌절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심하게 흐른다. 시간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그 시간 사이에 놓인 인간이 온갖 감정에 사로잡힐 뿐이다. 시간이 절대적이고 규칙적인 건(물론 우리가 느끼기에만 그런 거지만) 적어도 나에게 많은 각성을 주곤 했다.


휴직이 반복되니 복직도 반복되었다. 그러나 이번 복직이 나의 마지막 복직이 될 것이다. 아마도. 나의 세 번째 휴직이 안타깝게 결행되더라도 복직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아마도. 인간의 일을 어리석은 인간이 어찌 짐작하겠는가. 그래서 아마도라는 단서를 달고 있긴 하지만 내 추측이 더 상식에 부합한다. 나는 오십 줄에 접어들어 두 번의 휴직을 했다. 흔치 않은 일을 나는 해냈다. 그리고 무사히 복직하여 200일을 보냈다. 이제 휴직했던 기억보다는 현재의 삶이 더 익숙하다.


무난하게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맡은 바 업무를 그럭저럭 무리 없이 처리하고 있다. 업무에 익숙해지면 보통은 안정감을 느낀다. 그 안정감은 지속성에 대한 기대를 가져오고 한동안 다른 생각을 품는 일이 없어질 것이다. 그런데 안정감은 쉽게 타성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 내 경험상 안정감은 오래가지 못한다. 매너리즘에 빠져버리면 언제나 위기가 닥치기 때문이다. 나의 첫 번째 복직은 그런 위기의 신호를 보냈다. 그때도 나는 당연히 긴장을 했지만 결과는 내 의지와 다르게 안 좋게 흘러갔다. 그걸 수습하는 데 다시 6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


두 번째 복직은 그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더 신중하게 업무에 접근했다. 그래서 첫 번째보다는 무난하게 200일이 흘렀다. 업무 외적인 문제로 나의 업무수행을 방해받는 일은 첫 번째 복직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이것마저도 경험이 쌓여 그럭저럭 넘어갔다.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고 어머니가 한차례 쓰러지셨다. 데자뷔와도 같이 두 번째 휴직을 결정할 때와 유사한 상황이 발생했지만 다시 휴직할 형편이 아니었던 나는 그 힘겨운 시간을 버티어 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조직이 불편하다. 조직은 언제나 나 없이도 거뜬하게 돌아간다. 당연했다. 조직은 구성원에 구속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조직 내에 숨을 수도 있다. 그렇게 숨어 사는게 편한 면도 있다. 하지만 숨어서라도 살아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면, 경제적 자유가 허용된다면 언제든 떠나고 싶은 곳이 나에겐 조직이다. 그래서 나에게 선택의 기회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할만큼 나는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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