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낙산우공 Nov 18. 2024

운수 좋은 날(?)

꿈자리가 사나운 날은 아무것도 해서는 안된다.

한 해동안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고 또 대부분의 일들이 천신만고 끝에 그럭저럭 수습되었다. 감사한 마음으로 연말을 맞고 있는 내게 이렇게 평안한 휴식을 취해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한가한 날이 찾아왔다. 그런데 마음 한 구석이 편치 않았던 것은 타고나길 두려움과 불안이 남보다 높은 탓이려니 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젯밤의 꿈은 가벼이 넘기기엔 너무나 뒤숭숭했다.


5년 이상 만나지 못했던 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 까마득한 30여년 전 여자친구에다가, 2년 넘게 찾아뵙지 못한 지도교수님에 이르기까지 나의 지인이라는 사실을 빼면 아무런 연관성 없는 사람들이 한 장면 속에 총출동하였다. 이루 셀 수 없을 만큼의 수였다. 그런데 그들이 모인 그곳에선 영문도 알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었고, 나는 딱히 잘못(?)이 없었지만 그 비극의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의 화살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어떻게 해석해도 불길하고 불편한 꿈이었다. 그렇게 잠에서 깬 시각은 월요일 새벽... 나만큼이나 잠자리가 불편했던 아이를 깨워 학교로 향했다. 아들이나 나나 이제 끔찍했던 한 해를 마무리할 시기인데, 큰 고비는 모두 넘긴 것 같은데 왜 이런 뜬금없는 꿈 속에서 헤매었을까? 내 불안의 뿌리는 무엇이었을까? 한 고비를 넘겼다고 인생 다 산 것이 아니 듯 나에게 앞으로 몇 번의 크고 작은 고비가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그 막연한 불안이 나를 험악한 꿈의 세계로 인도한 것이 아닐까? 불안할 때마다 찾아보는 오늘 나의 운세는 '유유자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 하루, 겨울방학 때 아들과의 여행계획을 세우는데 할애해 버렸다. 어차피 꿈자리가 뒤숭숭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 이런 날은 그냥 제쳐버리는 게 답이다.


그래서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 Image from Berlin Castle at 남해독일마을

매거진의 이전글 앰뷸런스 유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