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는 생각
여름이 시원하면 좋겠다.
아빠는 택배 배송을 한다. 처음 아빠가 택배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평생 사업만 하던 아빠가 택배를 한다고?' 내가 알던 아빠는 늘 사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택배를 한다고? 하던 사업은 잘 되질 않고, 가족은 부양해야 하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알아보던 중, 아빠의 어떤 결단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아빠가 내게 말했다. "아빠도 평생 사업만 하다가 이번에 누구 밑에서 일을 해보잖아."로 시작한 말이었는데, 뒷말은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아빠는 택배를 시작했고 올해로 10년이 조금 더 넘은 시간 동안 업을 유지했다.
이혼하는 과정에서 엄마, 아빠의 일상을 엿볼 시간이 많았다. 맞벌이인 부모님 중 엄마는 아빠보다 조금 더 일찍 퇴근했다. 그럼 엄마는 빠르게 밥을 만들고, 고기를 굽거나 삶는다. "왜 맨날 고기를 먹어?" 내가 물으니 엄마가 말했다. "아빠가 낮에 힘쓰는 일 하잖아. 택배 배송한다고 점심도 제대로 못 먹어. 그러니 저녁 한 끼라도 제대로 먹이려고." 그랬다.
내가 본 아빠는 늘 새벽 5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청소를 하며 집을 정돈한다. 그다음에는 새벽 6시에 일어난 엄마의 아침(요구르트, 사과)를 준비해 주고 본인은 7시에 일을 나선다. 그리고 엄마는 7시 반, 아빠는 8시 반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은 몸이 약해 사무실 다녀오는 것도 피곤해서 픽픽 쓰러지는데, 꽤 고된 하루를 보냈을 아빠는 내게 말했다. "아빠는 몸 쓰는 일은 잘할 수 있다"라고. 나는 썩 유쾌하게 듣지는 못했던 기억이다.
어느 늦은 밤. 아빠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택배를 못 받았다는 어떤 사람의 전화였다. 들어보니 하필 비싼 옷이었던 것 같았다. 아빠는 택배를 전달하고 사진까지 찍어서 전달했는데, 그 사람은 못 받았다고 마구잡이로 따졌다. 근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실수 한 것이었다. 택배는 제대로 배송되었었다. 다행이지만 내 마음은 힘들었다. 막 잠든 아빠가 일어나서 한동안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초조하게 아빠를 바라봤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다시 아빠를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30살이 넘은 나이에도...
엊그제였나. 너무 습하고, 더운 길을 걸으며 여자친구에게 말했다.
"너무 덥네. 난 이렇게 더우면 아빠 생각이 나고, 걱정이 돼."
"지금 마침 휴직 중이니까, 하루 찾아가서 아버지 도와드려. 그럼 얼마나 힘든 줄 알 수 있잖아."
"... 그런 생각은 못 했네. 그럼 당장 이번 달에 가야겠다."
늘 아빠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고민하고, 가끔 홍삼이나 텀블러 등을 보냈을 뿐, 직접 아빠가 일하는 현장을 가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여자친구 덕분에 또 다른 생각을 해보게 되고, 이번 달 중에 정말 아빠의 일터를 한번 가보려고 한다. 나의 아빠가 어떻게 일하는지 한 번은 보고 싶다.
내일도 습하고 더운 날씨일 텐데,
아빠의 하루는 어떨까.
여름이 시원하면 좋겠다.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그럼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