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76일 차 육아 초보
사랑스러운 아기를 만난 지 76일이 되었다. 약 3년간 참여하는 글모임(내글빛)이 있는데 출산 때문에 몇 달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만 쉬고 싶었지만 육아를 하면서 시간을 내기란 참으로 힘들었다. 시간이 생겨도 집안일을 하거나 자기 바빴다.
지난주부터 조금씩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다시 내글빛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 글을 써서 인증하고, 멤버들과 댓글을 통해 소통하는 모임이다. 여유가 생겼다고는 하나 진득하게 앉아 글 쓸 시간을 매주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건이 허락하는 한에서 편하게 참여할 생각이다. 그렇지 않으면 부담스러워서 시작하지도 못할 테니 말이다.
출산 이후 나의 모든 관심사는 육아다. 아기의 신호를 이해해서 불편함을 해결해 주고, 아기와 친해지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몇 권의 육아 서적을 조금씩 읽고 있다. 육아는 사람마다 주장하는 바가 달라서 내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아기를 기르는 데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와 '인내심'이다. 아기의 기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기가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아기에게 필요한 시간'과 '아기가 필요한 시간'은 다르다. 아기가 분유 먹는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당황했다. 40~50ML를 먹는데도 10분 이상이 걸렸다. 잠이 들 때까지 곁에서 토닥여주는 것도 최소 30분이 걸린다. 잠이 들었겠지 싶어서 자리를 뜨면 금세 깨서 운다. 인내심을 가지고 아기의 시간과 맞춰가며,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고 여유를 가져야겠다고 다짐한다.
다음은 출산 63일 차에 <베이비 위스퍼 골드>를 읽고 쓴 글이다.
나는 산모가 아기를 병원에서 집으로 데리고 오면 곧바로 E.A.S.Y.라고 부르는 규칙적인 일과를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이것은 '먹고 Eat, 활동하고 Activity, 자고 Sleep, 엄마를 위한 시간 time for You'으로 이뤄진, 주기는 짧지만 어른들의 생활처럼 예측 가능한 일과를 반복하는 생활을 의미한다. 하지만 시간표는 아니다. 아기를 시간에 맞출 수는 없다. 그보다는 체계적인 생활을 통해 가정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아이든 어른이든 우리 모두는 예측이 가능해야 잘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과를 지키면 아기는 다음에 무엇을 하게 될지 안다. 그리고 엄마에게는 다른 자녀에게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시간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베이비 위스퍼 골드> p.42
규칙적인 일과가 안정을 준다는 것에 동의한다. 몇 년 전, 일을 그만두고 24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꾸려야 했을 때 너무 막막했다. 아무 때나 일어나고 먹고 자다가 무기력이 심해져서 규칙적인 활동을 하나씩 시작했다. 정기적으로 독서모임에 참여했고, 기상 시간을 비롯한 하루 루틴을 만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점차 삶이 안정되기 시작했다. 아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규칙적인 생활을 통해 다음 활동이 예측 가능해지면 이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지 않을까.
아기에게 규칙적인 루틴을 안내해야겠다고 다짐한 건 50여 일이 되었을 때다. 그전까지 아기는 '먹고 자고'가 반복되었기 때문에 루틴이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기가 커갈수록 깨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노는 시간이 생기면서 규칙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잠을 재우기 위해서는 수면의식도 필요했다.
63일 현재 아기는 아침 8시~9시경에 하루를 시작하고 밤 8~9시 사이에 밤잠을 자는 것이 큰 테두리다. 지금까지 기록해 온 아기의 패턴을 바탕으로 정했다.
* 아침 루틴 : 8~9시경 분유 - 마사지 - 모빌 보며 놀기 - 잠
매일 시간은 달라지지만 순서는 비슷하게 진행된다. 사실 아침 루틴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다. 아기를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아기가 좋아하는 패턴을 찾았을 뿐이다.
아침 루틴은 제법 잘 진행되고 있다. 아침 8시~9시 사이에 일어나서 분유를 먹는다. 트림을 시킨 후 2~3분 정도 마사지를 한다. '아침 마사지~ 아침 마사지~'라는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며 몸을 주물러준다. 그러고는 모빌을 틀어주고 혼자 놀게 둔다.
참 재밌는 게 아기는 모빌을 보면서 똥을 싼다. 신생아 때는 이틀에 한번, 30일경부터 매일 변을 보기 시작했고, 시간은 불규칙했다. 어떤 날은 2~3번 똥기저귀를 갈았다. 그러다가 40일경부터는 대체로 아침 분유를 먹은 이후에 변을 본다. 그 시간에는 아기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나는 다른 활동을 한다.
기저귀를 갈고 잠깐 놀다가 재운다. 졸려하면 잠을 잘 수 있도록 모빌을 치우고 자장가를 틀고 조용한 환경을 만든다. 얼마 전부터 안아서 재우려고 하면 내려놓으라고 찡찡거려서 눕힌다. 하루 이틀은 잠을 자지 못하고 낑낑대다가 다음 수유 시간이 오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5~10분 내로 잠이 든다. 자다 깨다 할 때도 있고 1시간 이상 푹 잘 때도 있다. 예방접종을 한 날에는 하루 이틀 안아 달라고 하기도 한다.
* 먹고 놀고 자고
아침 루틴 이후에는 '먹고 놀고 자고'를 반복한다. 하지만 '먹고 자고 놀고'인 경우도 많다.
아기가 먹고 나면 곧바로 재우지 말고 노는 시간을 가지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래야만 아기가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연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베이비 위스퍼 골드> p.42
<베이비 위스퍼 골드> 뿐만 아니라 다른 책과 유튜브에서도 먹놀잠의 순서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먹고 잠이 들면 깨우려고 노력하는데 쉽지 않다. 먹고 나서 항상 자는 게 아니니까 좀 더 기다려 보려고 한다.
* 저녁 루틴 : 목욕 - 분유- 놀기 - 분유 - 잠
저녁 루틴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했다. 저녁 7시~8시에 목욕을 시키고 분유를 먹인 뒤 재울 계획이었는데 목욕 시간을 좀 더 당겨야 할 것 같다. 축복이는 목욕을 하고 나서 졸려하지 않고 오히려 말똥말똥 해진다. 그래서 5시~6시 사이에 목욕을 하고 분유를 먹이고 놀린 뒤, 8~9시경에 분유를 먹이고 재우는 방향으로 노력 중이다.
루틴을 만들어갈 때 중요한 것은 아기의 기질과 신호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가려고 하면 나도 스트레스받고 아기도 힘들어한다. 더불어 아기가 드러내는 성향이나 성격에 좋고 나쁨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저 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맞춰가고 싶다.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함이다. 하루아침에 아기의 패턴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나 자신을 인식할 때마다 어이가 없다. 나의 현재 하루 루틴이 만들어지고 익숙해지기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왜 아기는 몇 번의 시도만으로 루틴이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규칙적인 일과는 시간표와 다르다. 시간표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지만 E.A.S.Y. 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먹고 놀고 자는 것을 반복해 나가는 것이다. 아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내하는 것이다. 아기들은 반복을 통해서 배우기 때문에 규칙적인 일과가 도움이 된다. <베이비 위스퍼 골드> p.48
통제가 아니라 안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76일 현재 아침 루틴은 그대로 진행 중이고 저녁 루틴은 여전히 자리잡지 못했다. 혼자 목욕시키기가 어려워서 내편이 퇴근한 후 8시경에 같이 시킨다. 그러다 보니 8~9시에 밤잠을 재우겠다는 다짐은 지킬 수가 없다. 혼자 목욕을 시키기 전까지는 지금처럼 11시경에 재우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조급한 마음으로 빨리 패턴을 만들려고 하면 나도 아기도 괴로워진다. 저녁 8~9시에 재우고 싶지만 사정이 될 때까지 느긋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글을 쓰는 동안 아기가 깨서, 밥을 먹어야 해서 자주 글쓰기를 중단해야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마무리하게 되어 기쁘다. 이 글을 시작으로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여유'도 만들어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