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가 가진 책임감에 대한 이야기
운동을 하다가 힘에 부칠 때 누군가가 나를 다그쳐주는 것에 마음이 편하다. 다그치는 방식에 따라 생각했던 효과는 다르게 나타나겠지만, 누군가가 스스로를 한계에 밀어붙이고 있는 타인을 돕고자 하는 목적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힘을 보태주는 것이고, 외부에서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는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큰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라면 이것을 지속하는 것에 대해 전체적인 회의감과 의문이 들고, 힘에 부쳐도 진행하는 것이었다면 내가 다시 한번 더 할 힘이 있을까 하는 자기 불신이 고개를 든다. 이런 내적 위기가 생길 때마다 타인이 자극을 주기를 바라거나 외부의 도움으로 용기 받기를 바랄 수가 없다.
‘할 수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행동을 이끄는 것은 ‘해야 한다’이다. 해야 한다는 말은 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 실재하는 문제/목표에 책임감을 갖겠다는 마음 가짐이다. 내가 들고 온 아령에 책임감을 갖겠다는 마음은 실제로 그것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들도록 만든다.
군대가 좋은 예이다. 막 입대한 남자들이 적응해야 하는 것은 군율이다. 군율은 군인 하나하나를 납득시키지 않는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적응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을 몸으로 알려주는 곳이고, 입대 전 나의 모습 중에 군율에 반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을 잠시라도 포기하는 것이 책임감의 일종이다.
반복되는 일과는 하루하루 내가 군인이라는 점을 상기시키고, 수행하는 내 과업에 대해 질문을 만들어 스스로를 정신적으로 피곤치 않게 하며, 내가 가진 구체적인 책임 외엔 모든 것이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강하고 위협적인 군인은 자신의 현재 신분을 알고, 그 신분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이해하고, 반복적인 훈련을 견디는 군인이다. 군대에서 낙오되는 사람들은 군대의 규율에 책임감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다.
남자들이 단체 활동에 익숙하고 룰을 잘 따르는 이유는 생리/심리학적인 이유도 분명 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그러한 조건에 노출되어 학습해왔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자기가 지원하거나 지정받은 역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을 직 간접적으로 배워왔다. 학교 운동회에서 반 대표로 축구 경기를 한다면 내가 맡은 포지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러하다. 어릴 때 그런 책임감은 내가 아침 눈 뜨는 목적이 되기도 어린 나를 정의하기도 할 정도다. 공식적인 직책뿐 아니라 우유 담당, 내일 점심 급식 메뉴 알아오기 담당 등, 무슨 일이 내게 주어졌을 때 기대감에 부응하고자 하는 책임과 성취를 느껴왔다.
유년기 시절부터 군대, 회사 생활, 더 나아가 결혼 생활까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름의 의무와 권리가 함께 주어진다. 전역 이후부터는 온전히 나의 규율에 따라 살아야 한다. 규율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무엇을 위한 규율인지 스스로 선언해야 한다. 규율은 나 자신을 살리는 것이어야 하며, 내 주변에 피해를 주지 않는 개인적인 철학에 기반해야 한다.
많은 남자들이 외로움과 우울감을 느끼고 있다. 적절한 책임감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이 없다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내가 오늘 해야 할 일, 지금 해야 할 일을 행동하지 않으면 우울감이 찾아온다. 그리고 남자가 갖는 책임감에 관심을 주고 선의의 지적을 해줄 상대가 없으면 외로워진다. 땀 냄새와 눈물 자국 가득한 각자의 책임감에 대해 대화를 시작하자.
대다수의 우리 남자들은 시킨 일들은 잘한다. 하지만 스스로 책임감을 갖는 일을 찾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목적이 이끄는 삶 가운데엔 규율이 있고, 규율을 떠받치는 책임감은 우리에게 지금 할 일을 지금 하라고 말할 뿐이다.
무의식은 일상적인 사고방식의 틀이 된다. 무의식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의식적인 행동을 반복해서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수행함에 있어 무의식이 관여할수록 책임감과 의무감에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남자들이 서로를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각자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면서 느끼는 책임감과 그에 대한 우울감, 외로움의 원천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까이에서 보면 서로 다르겠지만, 삶의 비슷한 궤적과 시기에서는 비슷한 마찰을 이겨내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우린 각자의 책임감을 일깨워주고 독려해줄 서로가 필요하다. 무거운 어깨로 살아갈 때, 누군가의 다그침이 내 마음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essay by 이준우
photo by Thao 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