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 버팀을 선언한 이후 자잘한 선택에 대한 이야기
선택은 참 어렵다. 누군가 떠 먹여주는 선택에도 yes 하기 어려운데 내 순수 의지로 무언가를 결정한다는 게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왜일까. 내가 내린 결정이 최하위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그 순간이 올까 봐 두려워서? 그 선택이 앞으로 어떤 미래를 펼쳐지게 할지 불확실해서? 그 선택으로 인해 잃게 될 것들이 크게 느껴져서? 혹은 내가 무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겁이 나고 자신이 없어서?
청년들이 중장년층을 존경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많은 선택들을 했기 때문이다. 그 선택들에는 정답은 없다. 그 선택을 사는(live) 사람들과 그 사람만의 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더더욱 어른들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미화된 영웅담이나 멜랑꼴리한 주절거림이 아닌 사실성에 기반한 그 선택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매우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누구에게 있었을법한 선택의 기로 말이다.
선택의 관점에서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의 일대기를 읽어본다. 복리의 마법사라고 불릴 만큼 시간을 자기편으로 만든 위인들이다. 버크셔의 투자 전략은 buy-and-hold 로, 다른 투자 기법에 비해 심플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경제 사이클에 속에서 매년 약 20% 수익률을 내고 있다.
소위 말하는 존버 기법이다. 존나 버티는 전략에 대해 생각해봤을 때, “존나 버티겠다.” 보다, “존나 버텼다.” 와 같이 회고적인 측면에서 존버의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남자들이 어떻게 스스로에게 존버를 선언했고, 어떻게 존버하고 있는지 알고 싶다, 듣고 싶다, 참고하고 싶다, 자극을 얻고 싶다. 왜냐하면 세상은 존버하기로 스스로 마음먹은 남자들에게 수많은 선택을 하도록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남자들의 고독함은 이와 연관되어 있는데, 선택에 따른 자기 강박과 두려움을 스스로 삭이고 스스로 해결점을 찾고자 방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남자들은 그리 강하지 않다.
찰리 멍거가 말하길, 살면서 생기는 대부분의 잘못과 실수들은 내가 진정 성취하고자 하는 것을 잊어버렸을 때 생긴다고 했다. 선택의 기로에 서서 깊이 빠져들었다가 내가 해야 하는 일의 책임감과 방향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선택은 우리를 산만하게 만들고 쓸데없이 걱정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선택은 내가 내리는 것은 누구나 안다. 다만 선택 앞에서 외로워진다.
나보다 오래 살았거나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간에서 그 이야기를 직접 청취함으로써 도움을 얻을 수 있다. 더 나아가면 정서적인 유대감과 연결고리도 찾을 수 있다. 선택 앞에서 약해지는 것은 우리들의 공통점이고, 공동체가 같은 약점을 공유할 수 있다면 공공의 적이 생겼을 뿐 아니라 선택이 주는 강박증에 내성을 기를 수 있게 할 것이다.
또, 찰리 멍거는 세상의 기본 알고리즘은 ‘되는 일의 반복’이라는 말도 했다. 내가 내린 선택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가져왔다면 그 선택은 반복되어야 함이 이치다. 이는 남자가 군대에서 군인으로서 새로운 규범들을 반복하여 습득하는 과정과 같다. 반복할수록 강한 군인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복리 효과다. 반대로 좋지 않은 피드백을 부르는 선택들은 줄여가는 것이다.
깨어나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자신과의 대결이고, 나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것이고, 선언하고 각오하는 것이다. 선택 앞에서 작아지고 자기 의심에 빠지는 남자들을 서로가 도와야 한다. 자기 연민과 자기부정의 수렁에서 건져내는 것도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지극히 나의 고민이라 하더라도 크게 보면 우리 세대, 비슷한 군상의 고민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대는 기술의 축복과 저주를 함께 받은 매우 이상한 세상을 살고 있다. 맹목적인 정보 습득은 오히려 선택을 망설이게 한다. 인터넷에 있는 것들이 내가 진정 성취하고자 하는 그림 사이에서 혼란을 준다. 그래서 존버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들이 꿈꾸는 삶이고, 독립적인 주체로서 자유로움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치유가 될 수 있다. 어쩌면 내 삶 속 주체적 선택의 과정은 생각보다 쉬울 수 있다.
essay by 이준우
photo by Max Ovcha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