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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b n Wrestle Mar 18. 2023

골은 우연하게 터진다

이기는 길은 부분동작에 있다

지난 주말은 엄마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대전에 내려갔다. 도착하자마자 가족을 데리고 대전 시티즌 홈경기를 보러 갔는데, 8년 만에 K리그 1부 리그로 승격한 대전시티즌의 리그 2번째 홈경기였다. 날씨까지 좋아서 티켓을 준비한 동생에게 엄지 척 치켜세워줬다!


골이 터지든 말든 축구 경기 관람은 즐겁다. 골이 터지면 더 즐겁다. 그런데 골이란 건 우연하게 터진다.


박스 안에서 어떻게든 밀어 넣으려 해도 다 안 들어간다. 압도적인 볼 점유율을 가진다고 골이 쉽게 들어가지 않는다.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에서도 끝까지 긴장을 놓칠 수 없다. 반대로 머리에 살짝 스친 공이 골 안으로 흘러 들어가기도 하고, 몸에 맞아 굴절된 공이 골인되기도 한다. 공이 미끄러워 놓치는 확률이나 자책골은 누가 계산할 수 없다.


그래서 공은 둥글다고 표현하나 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은 90분 동안 계속 움직이며 여러 번의 우연한 상황을 연출한다. 사람이 만드려고 할 수 없는 그런 그림이다. 이런 의미에서 축구에서 골은 우연하게 터진다.


많은 스포츠 경기에서 볼 수 있는 이런 드라마틱한 승부는 우연적인 요소를 제외하고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스포츠 해설은 수학의 방정식 풀이만큼 지루한 것이 될 테니까. 드라마틱한 경기일수록 ? 에서 ! 로, … 에서 ..! 로 비선형적이고 산발적인 상황들이 연출된다.


그럼에도 선수들과 감독은 행운의 여신이 자신의 편에 서게 하기 위해 훈련을 한다. 공을 잡고 있을 때, 공을 잡지 않을 때 모두 팀의 승리에 기여하기 위해 개인 훈련과 팀 훈련에 매진한다. 90분 동안 내가 공을 잡을 고작 몇 번의 기회를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수십 배의 시간을 들여 연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거기에 승부를 가르는 것은 내가 이기고 싶다는 열망의 온도 차이.


경기 후반에는 모든 선수들이 힘들기 때문에, 스타 선수의 재능에 집중하거나 그동안 연습한 세트 피스를 얼마나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내냐에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렇게 골인이 되었다면 그것은 우연하게 터진 것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계속 골문을 두드리다 보면 우연을 가장한 노력의 결실이 나타는 것이다.


골은 우연하게 터진다. 요행을 바라지 않고 꾸준함 속에서 우연을 바란다. 요행은 인풋대비 지나친 아웃풋을 노리겠다는 것으로 스포츠맨십에 어긋날뿐더러 이 게임의 생리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한 경기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외부 변수를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내적 변수를 다스리는 일일 것이다. 습한 환경에서도 체력 안배하는 것, 다양한 잔디 상황에서도 안전하게 볼 터치하는 것 등.. 그리고 한 팀에서 천재적 재능을 가진 스타플레이어가 몇 명이나 될까? 이기는 팀은 몇 천부적 재능을 가진 선수 두 세 명과 꾸준한 노력량을 입증한 선수들로 만들어진다.




1989년의 논문 <Mundanity of Exellence> 은 올림픽 수영 선수들을 연구해서 수준별로 탁월함이 나뉘는지 찾아본 한 연구다. 저자의 글을 정리했다.


탁월하다는 뜻은 꾸준히 높은 퍼포먼스를 낸다는 것이다. 꾸준히 누구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건 운(chance)의 차이로 설명할 수 없다. 게다가 탁월한 선수들은 사회적으로 특이한 성격을 가진 것도 아니다(괴짜이거나 은둔형이거나). 또, 슈퍼 스타들은 특출 난 자신감(confidence)을 타고 났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것도 입증이 어렵다. 자기 자신감은 좋은 퍼포먼스를 얻고 나서 보통 생겨나지, 좋은 퍼포먼스의 원천은 아니다.


1. 탁월성은 양적 차이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탁월함은 연습의 양적 변화(quantitative changes in behavior)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거리를 5K에서 8K로 늘리거나, 연습량을 2시간에서 4시간을 넘기는 것은 양적인 증가일뿐이다. 연습 퀄리티(테크닉)를 바꾸는게 질적인 차별을 만든다(nature of the thing itself). 러닝을 예를 들면, 무릎을 더 높이 들고 바닥을 차는 형식으로 바꿔본다거나, 발꿈치가 땅이 닿지 않게 의식하면서 앞쪽으로 연습하는 것. 식단 구성을 바꿔보는 것. 또는 솔로런에서 크루런으로, 캐주얼 동네 러닝에서 공식 시합 출전 러닝으로 연습 자체의 성격을 바꿔보는 것이다. 투자하는 시간이나 연습량보다 예전과 다른 새로운 습관을 갖는 노력이 더 큰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차이를 만드는 것은,

테크닉(Technique) : 스트로크 할 때 팔이 뻗는 길이, 각도, 턴 하는 방식 등

훈련(Discipline) : 훈련 시간 준수, 훈련 규칙 준수, 충분한 웜업, 훈련 집중력

태도(Attitude): 반복 훈련에서 재미를 느끼냐, 즐거움을 느낄 줄 아냐의 차이. 힘든 훈련을 완수하고 더 높은 강도의 훈련과 경쟁을 기대하는 태도


우리의 상식은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다. 성공의 기준과 수준은 사람마다 정의하기 나름이지만, 그리고 열심히 하면 그만큼 이점은 있는게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성공은 ‘그 수준에서의 성공’ 일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탁월함의 격차를 단순 노력의 양으로 줄일 수 없다. 그것은 계단과 같이 질적인 점프가 있어야 가능하다.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일의 방식을 바꾸란 말이다. 나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의 ‘행동 패턴을 수용하고 따라 하는 것’도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2. 탁월함은 특별한 재능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능은 측정할 수 없는 쓸데없는 설명 방법이다. 재능(talent, gift)이란 단어는 좋은 성적이 나온 이유를 단순 천부적인 신체 능력 때문이라고 게으르게 설명할 뿐이다. 일상에서 실제로 투입되는 연습 과정을 쉽게 미화해 버려서, 그 결과는 각자의 책임인데, 그것을 너무 쉽게 생략해버리게 만든다, 재미 없으니까. 그래서 재능이 탁월함에 기여하는 수준은 엄청 작고, 실제 그 결과를 만들 수 있던 결정적인 행동이 분석되어야 한다.


3. 탁월함은 일상적이고 지루한 것들 속에 있다.

Small win, everyday success와 같이 아주 작은 스킬, 활동, 성취의 결합이 큰 차이를 만드는 탁월한 무언가가 된다. 무엇을 먹는지,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어떤 연습을 하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등 작은 성공적인 선택들이 진짜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시간 약속, 연습 시간을 꼭 지켜내는 것도 포함된다. 사소한 일들을 진심을 다해, 집중해서, 작은 단위로 계속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패턴이 만들어지는데, 조력자를 끌어들이고, 방해자들을 떨어트리면서 전진할 때의 저항력을 줄일 수 있다.


동기부여 또한 일상 속에 녹아들어 있어야 한다. 선수들은 훈련장에 나가면 거기서 동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고, 코치가 흡족해하는 것도 보고, 자기도 더 나아지는 것을 느끼고 돌아온다. 일상적인 루틴에서 얻는 정서적 동기부여와 긍정적인 감정은 필수다. 특히 장기적인 목표를 가진 경우엔 더욱.




이기는 방법은 부분 동작에 있다. 모든 성취의 기초는 측정할 수 있고, 내가 통제하여 다스릴 수 있는, 내적 훈련이어야 한다. 그래서 골은 우연하게 터진다. 긴 긴 시간 동안 작은 성공들의 맛을 아는 사람이 큰 성공의 맛도 느낄 줄 아는 법이니까.


누군가가 나를 이쁘게 보고 성공의 빠른 길(Fast Track)을 손으로 짚어준다면, 그건 내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또 내 열망이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 길을 걷는 방법을 알려줄 수는 없다. 그건 걸으려는 사람의 몫이자 책임이다. 그 길을 꾸준히 갈 테크닉과 훈련, 그리고 태도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지는 내가 다스려야야 할 것들이다.



출처: https://academics.hamilton.edu/documents/themundanityofexcellence.pdf

essay by 준우

photo by VietNam Beauti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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