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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elancerKorea Jan 02. 2020

'네이버, 서울시장 비서관' 출신 '프리랜서'

[라라 프리랜서] 신영웅 마케터 인터뷰

‘가장 세속적인 글을 쓰는 애정결핍人’

신영웅 브랜드 디렉터 인터뷰






네이버 홍보실과 스타트업을 거쳐박원순 서울시장 비서관까지 섭렵했던 프리랜서 마케터가 있다여기저기 종횡무진하는 모습이 홍길동과 다름없는데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때마침 율도국 건설이란다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다.


본인을 대한민국 1호 인디워커라고 불러 달라는 신영웅 마케터를 만나, 그의 코믹활극 인생스토리’를 듣고 왔다.





브런치에 본인을 ‘가장 세속적인 글을 쓰는 애정결핍 중증’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렇게 본인을 브랜딩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가... '애정결핍 중증'으로 보이는가?


나를 마케터로서 소개할 때 남들이 하는 것처럼 그럴 싸한 말들로만 바르면’ 누가 관심을 보이겠나.(웃음발랄하고 재밌는 표현으로 나를 알리고 소개하기 위해 고안하게 됐다.


세속적이라는 단어는 흔히 네거티브한 의미로 쓰이지만오랜 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기에 영속성과 대중성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영속성과 대중성은 마케터에게 중요한 키워드이지 않은가또 애정결핍을 가진 이들은 필연적으로 타인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다따라서 애정결핍 중증일수록 제품이나 브랜드를 알리는 업무에 보다 특화돼 있을 수 있다.

마케터는 소비자에게 사랑받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다결국 다수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기에 이보다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다.



대학 졸업 후 네이버에 들어갔다.
주로 어떤 경력을 쌓았고 사회생활을 통해 무엇을 배웠나?


네이버 재직 당시의 신영웅 마케터 사원증 :) 젊음과 패기가 느껴진다.


네이버 홍보실에서 1년 반 정도 근무했다대학원 졸업하고 입사했으니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았는데이를 극복하고자 일도 두 배로 했고 덕분에 승진도 빨랐다나는 네이버 섹션 중 산지직송(현 프레시윈도)’과 스포츠’ 홍보를 맡았고막내다 보니 언론 모니터링을 많이 했다당시 외부로부터 잡음이 많을 때라 선배들의 이슈 매니징을 어깨너머 배웠다진짜 대단한 선배들이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라면 2014년 네이버가 시가총액 ‘TOP10’에 진입하더니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 적이 있다홍보실에서 이 업적에 준하는 야마(기사의 핵심을 뜻하는 언론계 은어)’를 뽑아야 했는데채선주 이사님(現 네이버 부사장)이 내게 질문을 던지시더라. “영웅아우리나라 기업 중 재벌이나 공기업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이 만든 기업이 시총 10위 안에 들어간 적이 있을까...?” 그 한 마디로 미션은 시작됐다.


역대 시총 자료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었다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간신히 해당 엑셀 자료를 찾았다나흘 밤을 새며 10GB 엑셀을 눈이 빠지도록 보고 또 봤다그리고 마침내 다음 한 문장을 보도자료에 넣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상 재벌 계열사공기업금융업이 아닌 개인이 창업한 기업이 시가총액 10위 안에 든 것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네이버를 다니던 당시,
곽백수 작가의 ‘띵언’을 듣고 돌아가는 택시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들었다.
어떤 명언이었고, 어떤 울림을 주었나?



직장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웹툰 <가우스 전자>의 곽백수 작가 인터뷰에 선배 대신 나가게 됐었다작가의 요청으로 특이하게 아파트 평상 위에서 진행됐었는데인터뷰가 끝난 뒤 곽 작가가 지금 들어가면 퇴근 시간도 애매할 테니 맥주나 한 잔 하자며 자리를 청했다그때만 해도 이 자리가 퇴사의 물꼬가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자들은 결혼과 육아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토로하며 쉽사리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현실을 이야기했고이 이야기를 들은 곽 작가는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똑똑해서 너무 멀리 있는 것까지 내다보고 걱정한다그런데 막상 지금 자기 발 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그걸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당시 나는 관찰자처럼 그저 대화를 듣고만 있었는데도 곽 작가의 그 말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멍해지더니 결국 회사로 돌아가는 택시에 오르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회사 생활이 견디기 힘들어서가 아니라분명 내가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고 싶었지만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대기업에 입사했고 맡은 바 업무도 나름 잘해내고 있었다그런데 안정된 직장과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승진이런 모든 것들이 겉치장 같았다선배들은 “야 이 놈아나도 너 때는 그랬어라며 조금 더 버티라고 했지만 결국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사랑하는 회사를 뒤로 하고 퇴사를 감행했다.



미워하는 회사를 떠나기도 힘든데, ‘사랑하는 회사’여서 더 힘들었겠다.


회사에 입사한 지 1년쯤 됐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추석 이틀 전이라 차표도 구하기 힘들었을텐데이사님 이하 팀원 모두가 비행기와 기차를 타고 지방까지 조문을 와 주셨다아버지 장례식에서 자식된 도리를 하게 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했다.


아버지 돌아가신 뒤 어머니의 건강이 안 좋아지셨을 때도 회사 역사상 유례없는 휴직을 받았다덕분에 외아들로서 어머니 케어를 해드릴 수 있었다이렇듯 항상 회사는 나를 사랑받는 막내로 아껴주셨다.

요즘도 1년에 두어 번 회사에 놀러 간다얼마 전에는 내 책이 나와서 이사님께 책을 드리러 갔다괜히 이사님과 둘이 뭉클해져서 글썽해지기도 했다네이버는 내게 좋은 기억이 참 많은 회사다네이버에서 했던 일이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그런 진한 아쉬움이 항상 있다.



이후 스타트업을 거쳐 박원순 시장을 보좌하는 ‘미디어 비서관’ 업무를 수행했다.
갑자기 공무원이라니, 그 계기가 궁금하다.


박원순 시장과 함께했던 일상. (처음엔 부자 사진으로 착각할 뻔!)


네이버를 그만둔 뒤디자인 유학 비용 마련을 위해 친구가 창업한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스타트업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이내 직접 창업을 하고 마케팅 외주를 뛰어다녔다그렇게 열심히 살다 보니 나에 대한 이야기가 박원순 시장의 귀에 들어갔고식사 한 번 하자는 연락이 왔다.


미디어로 접했던 박시장은 마냥 순둥순둥한 느낌이었는데실제로 보니 달랐다무엇보다 굉장히 스마트했다사실 연배가 높은 이들께 퍼포먼스 마케팅을 설명하면 이해를 잘 못하고몰라도 짐짓 아는 체하며 넘어간다그런데 박시장은 그 부분은 잘 모르겠는데 더 쉽게 설명해 줄 수 있어요?”라며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줬다모르는 건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그에 대한 호감이 샘 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어머니와 헬스장에서 PT를 받고 있었는데스마트폰에 박원순이라는 이름이 떴다.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었다하지만 당시에 친구들과 회사를 꾸리고 있던 입장이라 그의 제안에 쉽게 응할 수 없었다이후로 두 번의 제안이 더 있었고결국 세 번째의 제안만에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됐다.



공무원 보직과 더불어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영역이 생소했을 것 같다.
어떻게 적응해 나갔나?


박원순 시장의 파란색 셔츠와 신영웅 당시 비서관의 파란색 가방이 썩 조화로워 보인다 :)


박원순 시장의 'PI(President Identity)'이라는 것도 어찌됐든 브랜딩의 영역이다. 지금까지 브랜딩을 업으로 했기에 크게 생소하지는 않았다.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네이버 홍보실에 있을 때는 대부분 ‘수비’를 했다면 스타트업에서는 마케터로 일하면서는 주로 ‘공격’을 했다. 수비와 공격에 대한 경험을 두루 쌓다 보니 오히려 업무에 힘이 붙더라. 우선 사람도 제품처럼 브랜딩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기업의 제품은 한 번 컬러를 입히면 큰 이슈가 없는 한 잘 변하지 않지만,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을 제한하는 것도 어렵고 무엇보다 계속해서 변화하는 존재 아닌가. 사람은 마케터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브랜딩해서는 안되는 영역이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매력 안에서 대중이 좋아할 요소를 뽑아내는 것이 중요했고, 관찰과 고민도 더 많이 필요했다.

박원순 시장의 ‘PI’를 만들어 가면서 결과적으로 좋은 인사이트를 얻은 셈이다. 지금도 브랜딩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사람이든 제품이든 플랫폼이든 지속적인 관찰을 통해, 내제된 다양한 모습 중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미지를 발굴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박 시장으로부터 발굴해낸 이미지는 무엇이었는가?


'몰라서 물어본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진행됐던, 박원순 시장과 가수 '지코'와의 인터뷰 장면


그에게서 감동했던 것 중 하나가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할 줄 아는 어른의 모습이었다보통 대중 앞에서 카리스마 있게 연설을 잘하는 정치인이 인기가 많은데그는 되려 들을 때’ 감동을 주는 스타일이었다아무리 작은 자리라도 진심을 다해 경청하는 모습은 언제나 봐도 감동적이었다.


그래서 기획하게 된 프로젝트가 몰라서 물어본다였다청년의 삶을 문서로 배우는 게 아니라그들을 직접 찾아 인터뷰를 진행했다항상 인터뷰를 당하던’ 박시장이 되려 인터뷰어가 되어 청년의 삶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가수 지코’, 웹툰작가 무적핑크’, DJ ‘소울스케이프’ 등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거나 청년의 삶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셀럽을 섭외해 진행해갔다.


처음엔 박시장이 해야 될 질문을 스케치북에 준비해 줬지만이내 답답하다며 내가 진짜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겠다고 직접 (막장)진행을 했다아마 이런 마음 덕분에 사람들에게 그의 진정성이 잘 전달됐던 것 같다그렇게 몇 개월간 인터뷰를 진행했고나는 당시 인터뷰 내용을 브런치에 연재했다브런치 뷰가 200만 정도 터졌고, ‘몰라서 물어본다’ 인터뷰집도 책으로 출판됐다.



얼마 전 본인이 쓴 책, <그놈의 마케팅>도 나오지 않았나?



당시 브런치에 <보수 비서의 진보 시장 관찰기>라는 컨셉의 연재 글을 썼다그 관찰기도 많은 독자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한 언론사에서 내 글을 싣고 싶다고 했다이후 브런치로부터 상도 받고책까지 내게 됐다그렇게 탄생된 책이 바로 <그놈의 마케팅>이다.


<그놈의 마케팅>에는 백수 찌질이 시절부터 네이버와 스타트업을 거쳐서울시청까지 내 마케터 인생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녹아 있다잘 나가는 마케터의 특별한 비법이나 기술적 이야기가 아닌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케터 10년의 삶을 담고 싶었다그렇기에 내 진솔한 자소서이자 이력서로 이해해주면 고마울 것 같다대단한 인사이트는 없지만 깨알 재미는 보장하는 책이다.



보통 프로젝트는 어떤 경로를 통해 수주하는가?


대부분의 프리랜서가 그러하듯 나도 알음알음이다대학원에서 알게 된 분들부터 네이버에서 PR하면서 알게 된 기자분들대행사분들서울시청에서 만났던 다양한 분들 통해서 프로젝트를 소개받는다지금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도 서울시 정책박람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가 제안해줘서 시작됐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또 생기고결국 이러한 것들의 반복으로 또다른 프로젝트를 수주한다이런 의미에서 내가 프리랜서로서 갖는 가장 큰 경쟁력은 인적 네트워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프리랜서로 맡게 된 프로젝트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혹은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무엇인가?



사실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는 아직까지 돈을 받지 못한 프로젝트다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웃음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프로젝트라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공간 브랜딩 프로젝트가 향후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현재 합정역에 900세대의 청년주택을 건설 중이다그 곳에 입주할 청년들을 위한 오픈라운지 컨셉 기획과 프로그램 운영 기획 외주를 맡아 진행 중이다.


일단 공간 컨셉은 대형 서재를 생각하고 있다요즘 청년들의 개인 서재 로망을 실현해주고 싶었다전문 사서가 관리하는 장서고를 만들어서 장서도 볼 수 있고글 쓰는 등의 개인 작업도 할 수 있고입주민끼리 네트워킹도 가능한 공간을 기획 중이다더불어 독서토론이나 북토크 같은책을 메인으로 할 수 있는 여러 프로그램도 동시에 계획하고 있다.


네이버 근무 당시사내 1층 라이브러리에서 평소에 보고 싶었지만 비싸서 살 수 없었던 많은 책들을 읽곤 했었다이번 청년주택에 그런 커뮤니케이션 라운지를 만들고 싶었다마케터에게 20~30대의 청년 1,400명이라는 입주민은 굉장히 매력적인 타겟이다그들과 함께 의미 있는 실험들을 진행해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하고 있다.



결국 ‘좋은 마케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윌로비'에서 진행됐던 신영웅 마케터의 북토크 강연 모습!


책이 나온 뒤로 많은 강연을 다니고 있는데늘 강조하고 오는 것이 엉덩이의 힘이다단순히 책상 앞에 오래만 앉아있으라는 것이 아니다관찰과 고민을 많이 하고 끈기 있는 사람이 좋은 마케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예전 보스가 자주 들려주던 말이 있다. “땅을 삽으로 열심히 파서 이제 됐다 싶을 때한 번 더 파 봐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한 번 더 살펴보는 거지.” 나는 이러한 농업적 근면성을 바탕으로 한 마케터다처음부터 대단한 역량을 갖춘 사람이 아닌끈질기게 뺑이치는 사람스스로 만족할 때까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꼰대 같나?(맞다대신 이를 타인에게 강요하진 않는다어디까지나 자기 만족일 뿐!



프리랜서로서 느끼는 고충이 궁금하다.
프리랜서로서의 삶- 가장 큰 어려움은?


첫 번째는 일이 들어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다지금은 운 좋게 여기저기서 좋은 제안들을 받고 있지만작년에는 한 달 정도 집안일만 할 때도 있었다사실 지금 일이 포화상태라 더 이상 받으면 안 되는데도혹 일이 끊길까 불안하니 일단 다 받는다일주일이 ‘월화수목월화수’ 쉼이 없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다회사 다닐 때는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이를 공감해 줄 수 있는 동료가 옆에 있었다하지만 프리랜서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기 때문에 멘탈케어가 중요하다그래서 요즘 프리랜서끼리 외로울 때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작은 크루를 만들고 있다크루의 이름은 매뉴얼’. 세상에 다양한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일과 고민을 나누는 사조직이다



국내 프리랜서 채용 시장에는 문제점이 많다.
정책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나?


"저는 대한민국 1호 인디워커 신영웅입니다"


저성장 시대가 고착화됐기 때문에 세금을 쏟아 일자리를 만들기보다는 일거리에 대한 고민을 해야 된다현재 미국이나 유럽의 노동인구 중 약 50%가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orkers, 독립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다이러한 점에 착안해우리나라 정치권에서도 프리랜서에 집중해야 된다프리랜서라는 아이덴티티 집단이 주요 유권자가 될 것이기에그들을 위한 정책과 임파워먼트(Empowerment)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프리랜서에게 손을 내밀 거면 ‘알고 내밀었으면’ 한다우리나라는 여전히 정규직/비정규직이슈에만 매몰돼 있고그 밖에 머무는 프리랜서들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부재하다사실 제대로 된 정책 출범은 정확한 실태파악에서 시작하는데여러 유형의 프리랜서를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 생각하다 보니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요즘 스스로를 소개할 때 프리랜서란 표현 대신 인디워커란 표현을 쓰고 있다인디뮤지션이나 인디무비 등의 인디(Indie)’라는 단어 안에는 대자본에 의한 방해에서 벗어나보다 자유롭게 자신만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뜻이 녹아 있다그리고 무엇보다 이러한 자유와 개성의을 실현하기 위해해당 프로젝트의 실무자가 전문성과 자신감을 갖춰야 한다는 점에서 인디를 강조한다결국 내가 가진 전문성과 자신감을 표현하는 발칙한 외침이라고 봐주면 감사하겠다

요즘 많이 오그라들지만나를 소개할 때 저는 대한민국 1호 인디워커 신영웅입니다라고 말하고 다닌다인디워커라는 단어를 여기저기 검색해봤지만 사용하는 곳이 없었다그러니 내가 1호 맞다.(웃음앞서 언급한 서로 의지할 수 있는 크루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이들과 함께 하고 있고앞으로 더 넓혀갈 생각이다.



프리랜서코리아에 바라는 점이 있는가?


프리랜서들에게 끊임없이 좋은 일거리를 소개해주는 플랫폼이 되길 기대한다프리랜서에게 실질적으로 가장 도움이 되는 플랫폼은 좋은 프로젝트가 계속 올라오는 곳이다프리랜서코리아에 최대한 많은 프로젝트가 올라와서 프리랜서와 프로젝트를 연결해주고부당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모니터링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앞으로의 최종 꿈은 무엇인가?



조금 허황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율도국을 만들고 싶다그렇다고 아나키스트는 절대 아니다나는 국가 시스템을 지지하는 모범납세시민이다.(웃음다만 변화된 노동환경에 따라 출범한 새로운 형태의 노동자가 경제적으로 궁핍하지 않고나아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싶다.


그렇다고 회사와 같은 강한 유대(strong tie) 조직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밀레니얼의 욕망에 부합하는 약한 유대(weak tie)를 바탕으로, ‘따로 또 같이’ 할 수 있는 형태의 크루를 만들고자 한다이를 위해 내가 쌓아온 모든 경험이 분명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안다.


좀 더 현실적으로 접근하면더 많은 인디워커들의 퍼스널 브랜드를 구축해 보고 싶다본인을 브랜딩하고 싶다는 욕구는 점점 높아지는 시대지만그 방법을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다내게 있어 최대 관심사는 여전히 사람이기에 퍼스널 브랜딩을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와 밥벌이를 해 나갈 예정이다.



신영웅 마케터의 애장품 공개!

-브롬톤 M2L 로우라커 자전거: 두 번째 퇴직금을 몽땅 부었다. 대중교통과 연계하기엔 이만한 게 없고, 무엇보다 아름답다.

-The best of Norman Rockwell: 미국의 일러스트레이터 노먼 록웰의 아트집.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무심하게 이 책을 펴놓고 생각을 한다. 

-리디북스 페이퍼 프로: 종이책을 여전히 열심히 모으지만 어디까지나 디스플레이용. 실제로 책은 거의 전자책으로 읽고 있다.

-묵주반지: 아버지의 유품. 초등학생일 때부터 아버지가 낀 묵주반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 없었다. 

-세컨무브 베이스볼캡: 나의 아이덴티티를 상징하는 아이템은 야구모자(시청 재직 때도 모자를 쓰고 다녔을 정도로...!)로, 특히 이 모자는 이제는 낡아서 쓰진 못하지만 지난 10년동안 가장 애용했던 아이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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