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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다멜리 May 25. 2021

4년 전 그 여자 분께 죄송합니다

4년 전 나는 외국계 패션 회사의 마케팅팀에 경력직으로 입사하며 '대리'를 달았다. 사실 말이 경력직이지 그 때 나는 신입이나 다름 없었다. 패션 업계에서 근무한 적도, 소비재 회사의 마케팅 직무를 경험한 적도 없었기 때문에 업계 사정은 물론, 직무에 대해서도 지식이 전무했던 것이다. 반면에 당시 나와 함께 면접을 치렀던 다른 여자 후보 하나는 7년간 패션 마케팅직을 수행한 베테랑이었다. 당시 사장님도 당연히 그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팀장님께 말씀하셨단다. A부터 Z까지, 그리고 팀장님이 할 일까지 다 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데 내가 뽑혔다.


왜지? 나도 궁금했다. 혹시...예뻐서?

회사에 입사하고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문득, 스치듯 팀장님께 여쭤봤다. 그렇게 완벽한 커리어를 갖고 있던 그 여자분을 왜 안 뽑고 저를 뽑으신 거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팀장님이 아주 쿨하게 대답하셨다.


"아, 그 사람? 그 사람 애 엄마였어"  


당시 나는 '애 없는 미혼여성'이라는 이유로 '애 있는 능력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대답을 들었을 당시에도 여전히 나는 미혼여성이었고, 나는 '아, 그랬구나'라며 아주 쉽고 자연스럽게 납득했다. '애 엄마'라는 그 세 글자가 모든 걸 설명해 줄 수 있었다. 팀장님의 선택이 당연하고, 지당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애가 있다는 건 일종의 핸디캡이고, 그런 핸디캡을 가지고는 이 일을 할 수 없지. 하더라도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러 사람을 피곤하게 할거야.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그 회사를 나오게 됐고 임신과 출산을 겪었다. 그리고 4년 전 그 여자처럼 엄청난 핸디캡을 가지고 취업시장에 다시 뛰어들게 됐다.  

가족사항이나 결혼 여부가 쓰여있지 않은 이력서를 들이밀어 서류를 통과, 면접에 가서는 결국 "아, 결혼하셨어요?" "애가 아직 돌도 안됐네요?" "애는 어떻게 하시려고요?"라는 질문을 일련의 레파토리처럼 한 번도 빠짐없이 받았다. 그래서 이제 아예 이력서에도, 메일에도 "출산과 육아로 휴직했습니다"라고 명시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남자 면접관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이를 낳고 회사 생활을 하고 있는 면접관도, 지금 배가 부른 채 임신 중인 면접관조차도 내 사정을 봐 주지는 않는 듯 했다. 아니 오히려 남자 면접관들은 질문 자체를 조심스러워 하는 반면, 여자 면접관들은 마치 다 안다는 듯이 "어쩌면 그냥 집에서 애 잘 키우는 게 남는 거 일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해 보세요"라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겠지만 계속해서 고배를 마시게 되자, 4년 전 나와 함께 면접을 봤던 그 여자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화장을 하면 할 수록 더 어색해 지고, 애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를 지은 것처럼 움츠려 드는 내가 그 때 그 여자와 너무도 닮아 있어서. 지금 그 여자는 아이와 함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일하고 있을까?  

 

나 또한 그 처지가 되리라 전혀 예상치 못하고, 평생 자유로운 직장여성일 줄 알았던 4년 전의 교만함에 고개를 숙여 반성한다. 4년이라는 시차를 가지고 있을 뿐 결국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였는데 그 때 나는 그녀를 너무 쉽게 타자화했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엄마여서 더욱 열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그 때는 절대 알지 못했다. 애엄마의 스테레오타입을 쉽게 정의 내리고, 속사정은 쉽게 간과했던 내 얄팍한 통찰력이 부끄럽다.


두 달간 7개월 된 아기를 키우며 재택근무로 프리랜서 일을 맡아 했다. '애엄마가 일하기는 이래서 힘들다는 거구나'를 뼈 저리게 절감하는 한편, '애엄마는 역시 강하구나, 처녀 때는 왜 이렇게 일하지 못했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 이 일은 패션회사에 입사하기 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도 해 본 바 있는 방송 관련 홍보 일이다. 보도자료를 작성해서 릴리즈 하는 것인데 처녀 때 이 일을 할 때엔 '내가 왜 이런 일까지 처리해야 하는 거야'라는 오만함이 있었다면 지금은 일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며 기뻐 일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단촐하게 내 한 몸만 건사했던 처녀 때와는 달리 아이를 데리고 일한다는 건 몇 배로 고된 일이었다. 한 시간 여만에 아이를 안고 달래서 재우고 나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었고, 밤새 자다깨다를 반복하는 아이를 달래며 글을 쓰느라 새벽 3~4시가 돼서야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갑자기 요청이 들어오면 아이가 낮잠 자는 틈틈이 글을 써서 넘기느라 마음이 긴장되고 촉박됐고 10kg에 육박하는 아이를 한 손으로 안고 서서 전화를 받고, 카톡을 하거나 노트북으로 자료를 수정해야 했다. 칭얼대는 아기를 달래며 담당 PD와 통화를 하느라 애 울음 소리에 상대방이 당황해하기도 했고, 애를 잠깐 봐 주시는 친정엄마에게 "엄마, 애기 지금 우유 먹여야 돼요"라고 말하며 문자를 쓰느라 '2시까지 자료 보내겠습니다'를 '2시까지 자료 먹이겠습니다'라고 쓴 적도 있다.


그래도 아기와 단둘이 옹알이만 하다가 가끔이나마 사회인들과 커뮤니케이션 한다는 것이 즐거웠다. "안녕하세요, 고객님"으로 시작하는 스팸 전화만 받다가 "팀장님, 통화 괜찮으세요?"라고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니 내 이름을, 내 자리를 찾은 듯 해서 기분이 좋았다. 결국 두 달의 업무를 마치고 담당자로부터 '완벽하다', '좋은 분과 일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말까지 전해 들을 수 있었고, '애 낳느라 수고했다', '애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니' 라는 말을 들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프로근성을 발견했고, 내가 만들어낸 결과물들을 확인하며 더 잘하고 싶었고, 내가 맡은 방송이나 소속된 조직, 협업하는 다른 사회인들과 연결이 되어 있는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문득 4년 전 면접을 함께 봤던 그 여자와 유대감을 느낀다. 그 때는 타인이라 생각했던 그 여자. 지금은 내가 너무나 닮아버린 그 여자. 면접을 치를 때마다 그 때 그 여자처럼 '애 엄마'라는 이유로 외면 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초라한 생각이 밀려온다. 어찌보면 자격지심, 피해의식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돌고 도는 게 인생인 거겠지. 우리는 결국 모두 애엄마가 된다.



2015년 4월 18일 첫째 아이 9개월 '자유의 여신상은 애가 있을까' 블로그에 기재했던 글 입니다.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보니 '미혼여성이었을 때 내가 워킹맘이나 경단녀에 대해 너무도 무지했구나. 그리고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바로 한 치 앞의 내 인생이 될 줄도 모르고, 그게 바로 나의 어머니가 나를 키우며 겪었던 삶인 줄도 모르고 말이죠. 요즘 시대는 특히 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들이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도 듭니다. 우리 모두가 타인에 대해 좀 더 따뜻한 시선을 갖고 함께 독려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hoto ©️ charlesdeluvio,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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