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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다멜리 Aug 12. 2023

접을 수 있는 마음

하루키가 던진 질문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다. 하루키 본인이 걸어온 역사와 생각들 마치 라디오를 통해 듣듯이  한구절한구절 와닿았다. 그 중에서도 하루키가 음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새삼 더 느낄 수 있었고 그 음악을 접을 정도로 글쓰기에 진심으로 몰입하는 것을 보며 나 자신을 처절하게 반성하게 됐다.

출처: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문학동네, 2016), 72쪽


#1. 좋아하는 것에 온전히 몰두하는 하루키

하루키는 하루 종일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기쁨 때문에 명문 와세다 대학교 재학 시절 재즈바를 열게 된다. 학창시절에도 듣고 싶은 음악, 보고 싶은 소설을 위해 돈을 모으고 발품을 팔며 원서 페이퍼백을 구해다 읽고 음반을 사서 듣는다.

나는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그 젊은 날에 어디에 몰두했던 가를 돌아보게 되는 대목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있는지, 그렇다면 충분히 그것에 시간과 열정을 투자할 수 있도록 그 부분을 서포트 해 줘야 하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지금 아홉살 우리 첫째 아이가 몰두하는 것은 '슬라임'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것도 서포트 해 줘야 하는 건가 의문이...)


#2. 하루키와 나얼: 좋아하는 데에는 마음 뿐 아니라 물질적인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

하루키는 클래식음반, 티셔츠 등 본인이 수집한 물건들을 가지고 에세이(<낡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 <내가 사랑한 티셔츠>)를 낼 정도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손에 넣는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우리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예전에 가수 나얼에게 노래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묻는 인터뷰가 있었는데 나얼의 대답 중 하나가 "음반을 사라"는 것이었다. 단순히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쉽게 검색하여 듣는 게 아니라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음반을 사서 그 아티스트의 노력과 메시지를 제대로된 매개체를 통해 전수 받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음반을 사기까지 본인이 노력을 들였던 것, 음반이라는 실질적인 물질을 끝내 손에 쥔 경험, 오디오로 듣는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각인되어 디지털 경험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와 감각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나의 경우도 어릴 적 워크맨으로 주파수를 맞춰가며 라디오를 들었던 기억,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노래가 나올 때 녹음버튼을 가까스로 눌러 나만의 테입을 만들었던 것, 보디가드 OST를 도서관 시청각자료실에서 매주 빌려 들었던 기억, 자습시간에 듣던 조수미의 <Love> 앨범 등이 그 어느 음악보다 더 소중하게 기억되고 말그대로 뼈저리게 남아있다.


#3. 좋아하는 것을 위해 접을 줄도 알아야 한다

시간, 공간, 돈, 노력 이런 것들을 투자하기 위해서는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루키는 본인의 모든 걸 걸어 운영하던 재즈바를 과감히 접는다. 고생 끝에 재즈바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다른 사람에게 운영을 맡기는 식으로 연명할 수도 있었지만 글쓰는 데에 더 진지하게 몰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재즈바를 단번에 접어버린다. 그의 정리의 기술에 탄복하였고,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을 목록으로만 만들 줄 알지 그것을 위해 삶을 정돈하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들이기 위해서는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삶의 원칙을 잊고, 사고 싶은 것을 마구 사들이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한없이 마음에 품고 산다. 하지만 우리가 가진 에너지와 공간은 유한하다. 하루키의 책을 읽고 당장 책장을 정리했다.


하루키는 사실 그 어떤 질문도 던지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본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늘어놓았을 뿐. 하지만 나는 그의 삶과 생각을 통해 하루키라는 그 인격체를 총체적으로 느낌으로서 '닮고 싶다', '나는 무엇인가' 하는 깊은 물음에 빠지게 되었고 이 기분이 오래토록 내 안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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