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08
열 시쯤 일어나 겨울이 와 산책을 하고 돌아와 여름이와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마당 이것 저곳에 널브러진 배변을 치우고 교수님 댁에서 주신 장미꽃에 물을 주고 나니 점심이 되었다. 잡곡밥을 톡톡 터뜨리며 구수한 청국장을 한껏 떠먹었다. 천천히 그리고 충분하게 꼭꼭 씹어먹었다. 예전에는 먹는 양에 따라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건강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해서 위를 늘려가며 섭취했는데 되려 몸이 축 늘어지고 무거워지는 걸 경험한 터라 몸이 가뿐해질 만한 양을 찾아가고 있다.
적막한 점심시간, 영상을 보며 먹을까 책 읽으며 먹을까 고민하다가 예수님을 맞은편 자리에 초청하기로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와 점심을 한다니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지만 꿋꿋이 이어갔다. 차마 육성으로 이야기를 내뱉는 일은 할 수 없었지만 속마음으로 미주알고주알 마음을 터놓았다. 처음 시도한 거라 꽤나 어색했지만 종종 예수님과 점심시간을 누리기로 했다.
하고 싶은 집안일 목록이 많아서 뭘 해야 가장 만족스러울지 고민하다 첫 출근을 앞둔 기념으로 내 방 가구 재배치를 하기로 했다. 큰 가구로는 원목 침대와 책상 그리 리고 책장이 있고, 전자기는 공기청정기, 프린터, 아이맥, 핸드형 청소기가 있다. 마지막으로 미술용품을 담은 트롤리와 소중한 사이클이 있다.
이전의 가구 위치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창문 쪽 벽을 바라보게 책상을 놨었는데 컴퓨터 할 때마다 묘한 답답함을 느꼈다. 블라인드를 올리지 않아서 답답한가 싶어 블라인드를 거두어봤지만 내내 불편했다. 방 불을 켜도 어두워서 책상 옆 스탠드를 켜야 했는데 그마저도 어딘가 음침했다. 그래서 책상을 위한 가구 재배치를 시작했다.
직사각형 모양의 방이고 왼쪽 벽에는 옷장이 들어서 있다. 오른쪽 벽면과 양 위아래 벽을 놓고 고민하다가 상대적으로 빛이 잘 드는 앞쪽 창문가에 책상을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이전과 다를 게 있다면 창문 앞이 아닌 옆에 책상을 두어 고개를 돌려야 창밖이 보이도록 했다. 오후가 되면 싱그러운 햇살이 책상에 슬금슬금 모습을 드러내는데 기분이 참 좋다. 단, 책상을 벽에 붙인 게 아니라 방이 좁아졌다. 사이클을 사용할 때마다 따로 좁은 공간에서 꺼내야 한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그럼에도 책상은 마침내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되었다. 어디 그뿐일까? 아늑함이 부족했던 침대가 이전에 책상이 있던 자리에 가니 아늑함이란 게 생겨버렸다! 아, 그동안 왜 미처 생각지 못했을까? 해가 잘 드는 곳에 책상이 있으니, 책상에 앉아 열린 방문을 바라보게 되니, 고개를 돌리면 산이 보이게 되니 정말 좋았다. 뭐랄까, 성공한 사람의 작업실 같이 느껴졌달까. 아무튼 멋진 게 최고다.
가구 재배치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지만 물건 정리는 시작도 못했다. 방이 여간 심란한 게 아니지만 내일 첫 출근을 할 생각을 하니 무척 기대가 된다. 고작 4시간 일하는 재택근무이지만 얼마나 근사한지 모르겠다. 재택근무라니!! 부디 내일도 겨울여름 산책을 무사히 시키고 첫 출근을 완료하면 좋겠다. 아, 내일은 어떤 집안일을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