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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an Jul 15. 2020

밴라이프는 사실 전쟁이다

#40

파리를 떠난 우리는 물을 채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면서 무작정 서쪽을 향해 달렸다. 물이 거의 다 떨어졌기에 정말 예쁜 마을들을 그냥 지나치면서 캠핑 앱에 나와 있는 수돗가란 수돗가는 모두 가보았지만 하나 같이 물이 끊겨 있었다. 겨울이라 단수가 되었다는 안내문만 덩그러니 붙어 있을 뿐. 결국 스마트폰으로 프랑스의 서쪽 끝 '낭뜨'라는 마을에 사시사철 캠핑카들을 위한 수도시설이 되어 있다는 곳을 찾아냈지만 이미 지친 우리는 어느 조용한 프랑스 작은 마을 무료 캠핑장에 정박을 하고 내일 이동하기로 했다.

밴라이프에 대한 수많은 책들과 소셜미디어의 글들은 매일 이사할 수 있는 집은 문을 열면 드넓은 들판이 자신의 앞마당 이라며 낭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24시간 365일 밴에서 사는 것은 사실 전쟁이다. 물론 돈이 많다거나 며칠 정도 밴에서 산다거나 익숙한 장소나 나라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캠핑카에서 산다면 낭만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처럼 최소한의 비용으로 가본 적 없는 나라들을 옮겨 다니며 한정된 공간인 밴에서 살아간다면 낭만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먹고 마시고 씻는데 필요한 물은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아껴 써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물을 채울 수 있는지 절대 알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우리의 위치와 경제사정을 고려해가면서 주변의 수도시설을 검색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적당한 타이밍에 맞춰 물을 채우고 또 오수를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검색해 둔 수도시설이 정상적으로 작동 하리란 보장은 그곳에 가기 전까지 절대 할 수 없다. 가봐야만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힘들게 찾아서 간 수도시설이 작동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갈 수 있는 두 번째, 세 번째 수도시설도 검색해 두어야 한다.

물이 없어 씻을 수 없고 오수통이 당장이라도 넘칠 듯 넘실거리고 있어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할 수도 없고 이동식 변기가 가득 차 볼 일도 볼 수 없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지금 돌이켜 그 당시를 떠올려 보면 그 순간도 아련하고 낭만적인 추억이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 머릿속에는 다음 정박지로 가기 전 물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싱크대 밑의 오수통과 같이 가득 차 있다.


프랑스의 서쪽 해변 도시인 낭뜨에 도착해서야 우린 70리터짜리 물탱크를 채울 수 있었다. 다행히도 국도 옆 큰 주유소에는 캠핑카를 위한 수도시설이 365일 멈추지 않고 작동되고 있었다. 우리가 도착한 날 낮에는 문을 열고 있어도 될 만큼 선선했는데 아마도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서 그런 듯했다. 싱크대와 샤워실 오수 그리고 화장실을 모두 비우고 물탱크까지 가득 채우고 나면 백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 듯 시원한 기분이었다. 빨래방에서 몇 주는 밀린 듯한 빨래들 까지 모두 빨고 나서 우린 바닷가 바로 옆 한적한 주차장에 정박을 하고 나서야 우린 반나절의 낭만을 얻을 수 있었다.

프랑스의 바닷가는 우리나라만큼이나 생명이 풍부했다. 해변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자니 조개와 게를 어렵지 않게   있었고 그것들을 잡아 생계를 이어나가는 듯한 사람들도 보였다. 여전히 날씨는 구름이 잔뜩  채로 흐려서 일몰을  수는 없었지만 바닷가 쪽으로 차문을 활짝 열어 놓은  짧은  시간을 즐겼다. 이럴  와인까지   한다면 우리도 소셜미디어에서  왔던 낭만을 체험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마침 프랑스에 있고 유명한 와인 생산지   곳인 보르도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낭뜨의 주차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일찍 출발했다.

낭뜨 어느 바닷가 주차장

보르도는 그저 와인을 한 병 사볼 심산으로 간 것이었는데 예상외로 아름다운 도시였다. 와인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인지 도시의 길들은 널찍하게 정비가 잘 되어 있었고 강가도 산책하기 딱 좋게 꾸며져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어수선했다. 사랑이와 함께 보르도 시내에 들어섰을 때에는 '노란 조끼' 농성이 한창이었다. 시내 곳곳은 무장한 경찰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우리가 와인을 사기 위해 상점에 들어가자마자 시위대를 피해 문을 걸어 잠갔다. 프랑스 전역에서 농성이 폭력적으로 변한 일이 있었기 때문인 듯했다.

사실 우리가 프랑스에 들어가기 전에 '노란 조끼' 농성이 많이 진정되어다는 뉴스를 보긴 했지만 조금은 긴장을 하고 있던 터였다. 프랑스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서 노란 조끼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란 조끼는 공장이나 건설현장 같은 작업장에서 안전을 위해 입는 것인데 전혀 연관성 없는 장소에서 그것을 보게 되니 마치 나치 깃발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노란 조끼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도로를 막고 지나가는 차들을 공격한다는 기사들을 본 게 그 이유였다.


집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보금자리이자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공간이다. 때문에 침입자가 있거나 주변이 어수선하고 시끄러우면 경찰을 부르거나 최악의 경우 공격을 한다. 자신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한 본능일 것이다. 첨단 기술이 들어간 보안 장치를 설치하고 담을 쌓고 아파트에 경비를 세우는 것은 자신들의 집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밴에서 사는 우리는 누군가 침입하거나 주변이 어수선 해도 경찰을 부를 수 없다. 주소지도 없거니와 지정된 캠핑장이 아닌 곳에서 정박을 하고 있는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인 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찰을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첨단 기술이 들어간 보안 장치는 커녕 담 조차도 쌓을 수 없는 캠퍼밴에서의 생활은 끊임없는 안전문제에 대한 걱정으로 신경이 곤두서 있다.


어느 이름 모를 장소에 정박을 하고 곤히 잠들어 있는 새벽에 누군가 차 문을 두드린다거나 술이나 약에 취한 듯한 사람들이 어슬렁 거린다거나 또는 심지어 누군가 친절하게 다가와 선의를 베풀어도 우린 경계를 하고 주변을 계속 살핀다. 그 상황이 계속되면 우린 정박했던 장소마저 마음에 들지 않게 되어버려 그곳을 떠난다. 우리의 집을 지킬 수도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을 내가 지킬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좋은 말로 한다면 감정이 섬세해진다고 할 수 있겠지만 밴라이프는 그저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질 뿐이었다. 캠핑장이나 정박지에서 다른 캠핑카나 캠퍼들과 함께 지낸다면 조금이나마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어딜 가든 대부분 우리만 덩그러니 있었기에 초원 위의 미어캣 마냥 경계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보르도 광장

그래서 우린 와인만 사들고 밴으로 돌아와 보르도를 떠났다. '노란 조끼'들은 우리가 있던 시내 광장을 지나 저 멀리로 행진하며 사라졌지만 안심할 순 없었다. 주차장은 너무 넓었고 너무 도심 한복판에 있었으며 사람들 눈에 너무 잘 띄었기 때문이다. 너무 아름다운 도시를 둘러보지 못해 아쉬웠지만 다음에 다시 오리라 기약을 하며 얼른 더 따뜻한 나라로 출발했다.

며칠 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스냅 촬영이 예약되어 있었기에 보르도를 출발해 툴루즈를 거쳐 지중해 쪽으로 이동해 스페인 국경을 넘었다. 스페인에 가까워질 때 즈음부터 하늘은 화창해졌다. 보르도에 있을 때까지도 하늘은 구름이 잔뜩 낀 채 우중충 했지만 1월 말인 스페인은 초여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화사했다.


따뜻한 스페인에 들어오자마자 우린 신이 났지만 일단 국도 근처 맥도날드 앞에 차를 세웠다. 우린 아침도 거른 채 툴루즈에서 3시간 가까이 이동을 한 터였기에 끼니를 먼저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다. 보르도에서부터 급하게 넘어오느라 장을 보지도 못해 식재료는 다 떨어져 있었고 맥도날드는 가장 싼 외식이었으며 혜아는 햄버거를 제일 좋아했다.

우린 밥을 그리 잘 챙겨 먹는 편이 아니다. 보통 하루에 두 끼를 먹었으며 아침은 주로 전날 저녁 먹고 남은 밥에 물을 말아 끓여 양파 김치를 곁들여 먹거나 계란과 소세지로 해결했다. 이번처럼 목적지를 향해 일찍 이동할 때에는 거르기 일쑤였지만 우리 둘 다 괜찮았다. 정말 먹을게 아무것도 없을 때에도 밥에 고추장만 비벼 먹어도 행복했다. 하지만 이번엔 스냅 촬영 예약금으로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둘이서 각각 셋트 메뉴를 시키면 한국 돈으로 거의 2만 원 남짓이었지만 무사히 화창한 스페인에 도착한 오늘은 과소비를 하고 싶었다.


보통은 24시간이거나 아침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닫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시골 국도 한 켠에 있어서 인지 아니면 스페인이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전 11시 50분 즈음에 들어간 맥도날드는 아직 영업 전이었다. 단 두 명의 직원이 여유롭게 영업준비를 마치고 12시가 되자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주문을 하기 위해 사람들 뒤에 서서 메뉴를 들여다보고는 난 스페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빅맥 셋트가 무려 반값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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