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그냥 그곳에 밴을 버리고 집에 가고 싶었다. 도대체 내가 뭣때문에 여기에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나 억울했다. 허름한 내 차림새도 꼴보기 싫었고 돈이 없어서 허덕거리는 것도 지쳐있었다. 민박집이고 자시고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밴을 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유는 몇 주 뒤에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스냅사진이 몇 건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약금으로 받은 돈은 이미 다 써버린 상태라 환불을 해줄 수도 없었기에 난 반드시 크로아티아에 들어가야만 했다.
그나마 이런 상황에 혜아가 없다는게 다행이었지만 큰 위로는 되지 않았다. 난 당장 다음 날 밴의 앞바퀴를 갈아야 하고 초과 체류에 대한 벌금까지 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 돈이 없었다. 크로아티아로 넘어가서 스냅촬영을 하기 전까지 버틸 생각으로 남겨둔 10만원이 전부였다. 벌금은 250유로라고 확실하게 알려줬지만 타이어를 바꾸는 비용은 얼마나 들지 알 수가 없었다. 결국 난 도움을 요청해야만 했다. 그리고 내 동생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외국계 대기업을 다니며 착실히 돈을 모아 안정된 가정을 꾸리고 사는 동생은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는 내가 밴라이프를 하는 동안 정말 힘들 때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 있었다. 가족이 있으니 엄청난 금액을 지원해줄 순 없었지만 그래도 동생이 보내주는 1~20 만원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었다.
결국 동생에게 50만원을 빌렸다. 적지 않은 돈이었기에 나중에 갚는 조건이었다. 벌금 250유로를 제외하고 최대한 저렴하게 타이어를 교체하기로 마음먹고 다음 날 그 친절한 국경 검문소 경찰 아저씨를 기다렸지만 9시 즈음에 퇴근한다고 했던 그 아저씨는 10시가 넘어도 오지 않았고 난 스스로 헤쳐나가기로 했다.
어차피 큰 기대는 안했고 이보다 더한 일도 겪었는데 타이어 교환하고 돈 송금하는 것 쯤이야 일도 아니라고 자신감으로 날 세뇌시켰다. 그리고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국경 근처 도로에서
국경 근처의 마을은 정말 작은 곳이었다. 우리나라로 따지자면 시골 읍내 정도 크기의 소도시였고 사람이 많지 않아서 인지 타이어 가게는 커녕 자동차 수리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멀리 가고 싶지 않아서 어떻게 해서든 그 마을에서 해결하고 싶었지만 변변한 은행도 없는 도심에서 말도 안통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 난 어쩔 수 없이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랴나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간간히 자동차 수리점이 보일 때 마다 밴을 세우고 앞바퀴를 보여주며 교체할 수 있냐고 물어봤지만 일반 자동차에 비해 훨씬 큰 타이어를 구비하고 있는 곳은 없었다. 대부분 영세해 보이는 동네 수리점이었기 때문이고 차 두대가 겨우 스쳐지나갈 정도의 좁은 국도 모퉁이까지 커다란 밴 타이어를 교체하러 올 사람은 없을거 같았다.
눈에 보이는 자동차 수리점들을 일일이 들르며 가다보니 류블랴나에 도착했을 땐 정오가 지나있었다. 은행이 언제 문을 닫을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벌금을 납부해야하는지도 모르니 그것부터 해결하기로 하고 구글맵으로 근처 은행들을 몇 개 찾아서 하나씩 무작정 들어갔다. 대화가 안되서 못하거나 내가 보여준 벌금 고지서가 뭔지 몰라서 안된다고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류블랴나도 크지 않은 도시어서 커다란 밴을 주차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기저기 자꾸 몰고 다니려니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다행히도 혼자 밴에 남아 있는 것이 아직은 어떤것이지 잘 모르는 사랑이가 조용히 기다려준 덕분에 난 그나마 마음 놓고 밴을 한쪽 구석에 세워놓고 여러 은행들을 오갈 수 있었다.
은행을 세 네 군데 정도 돌아나오고 난 뒤 들어간 은행은 역시나 작고 아담했고 직원 한 명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이런 조용한 은행이 있는 이 마을이 마음에 든다며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전날 국경에서 부터 모든 신경이 곤두서있었기에 내 눈에는 유리벽 너머에 앉아 있는 직원 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벌금고지서가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최대한 거지같이 보이지 않기 위해서 사랑이가 물어 뜯지 않은 그나마 멀쩡한 자켓과 블랙진을 입은 나에게 그녀는 내가 슬로베니아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은행에서는 납부를 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우체국으로 가면 외국인도 외국 카드로 납부를 할 수 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그 길로 바로 찾아간 우체국에서 정말 손쉽고 빠르게 벌금을 납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만에 첫번 째 임무를 완료하고 나서 타이어를 교체할 곳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글의 검색능력은 슬로베니아에서 매우 약한 듯 했다. 겨우겨우 찾아내서 가보면 수리점이 없거나 문을 닫은 경우가 허다했고 검색 결과도 영 시원찮았다.
결국 난 밴의 제조사인 시트로엥 직영 수리점으로 갔다. 직영점이라 조금 더 비싸겠지만 타이어를 가지고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어렵지 않게 구글 맵으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수리점을 찾아냈고 접수를 하고 나니 조금 지나서 여직원이 차를 보러 나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타이어를 교체해줄 수 있지만 자기들은 훨씬 비싸니 다른 곳을 가는게 나을거라고 나에게 솔직하게 얘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 그곳의 상호와 홈페이지 주소까지 친절하게 종이에 써서 건냈다. 이곳저곳 녹이 슨 밴과 나의 허름한 옷차림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유창하지 않은 영어임에도 열심히 설명해준 그녀가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엄청나게 으리으리한 타이어 전문 수리점이었다. 드넓은 주차장에 밴을 주차하고 들어가니 영어를 잘 하는 남자 직원이 이번에도 너무나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차종과 연식을 컴퓨터에 입력을 하더니 내가 고를 수 있는 타이어 리스트를 보여주면서 좋은 타이어들이 많지만 제일 저렴한 자체 브랜드의 타이어를 끼우는게 가장 나을것 같다고 추천을 해주었다. 앞바퀴 두짝을 모두 교체하는 125유로 밖에 하지 않았으니 나에게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곧 크로아티아에 가서 정착을 하고나면 더 이상 밴을 탈 일도 없을테니 굳이 좋을 타이어를 끼워서 뭐하랴.
타이어는 정말 순식간에 교체됐다. 직원이 밴을 끌고 들어가 작업장의 셔터를 닫고 난 뒤 사랑이를 데리고 그 드넓은 주차장 화단 한켠에 무릎 나온 츄리닝을 입은 채 쭈그리고 앉아 기다린지 5분이 채 되지 않아서 새 타이어를 달고 밴이 나왔다. 이제 국경을 다시 건널 준비가 다 된 것이었다.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머물렀던 크로아티아 정박지
사실 이 시기에 겪은 일 때문에 난 국경을 건너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밴라이프를 하면서 항상 옆에는 혜아가 있었고 나중엔 사랑이까지 타면서 우리 밴을 의심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혜아 없이 처음으로 건너는 국경에서 난 받을 수 있는 모든 의심은 다 받았기 때문이었다.
크로아티아 국경 경찰이 까다로운 것도 있겠고 그것이 국경을 지키는 이들의 임무일테니 그렇겠지만 그들은 날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을 했다. 자동차와 나에게 관련된 모든 서류를 다 요구했고 그러고 나서는 밴의 내부를 이 잡듯이 뒤졌다. 심지어 밴의 내부 벽까지 두들겨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숨겨서 들어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았다. 하긴 허름한 차림의 동양인 남자가 영국 번호판이 달린 고물 밴을 개조해서 먹고 살고 있으니 의심을 안한다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차를 타고 미국 동부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밥을 먹고 쉬고 있는 나에게 왠 허름한 차림의 청년이 말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로드 트립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여행 중이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어딜 가봤는지, 어디가 가장 좋았는지 등등을 물어보았고 난 잔뜩 경계를 한 채로 짧게 답을 했다. 무엇 때문에 이 허름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거는지, 왜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을 궁금해 하는지 온갖 의심이 다 들었기 때문이었다.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대화를 끝내고 난 자리를 피했고 한참 뒤 차로 돌아가는 길에 그 허름한 청년이 자신의 강아지와 캠퍼밴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고 의심을 했던게 괜시리 미안해지면서 좀 더 얘기를 해볼껄 하는 후회가 들었던 적이 있다.
어쨋든 나 조차도 그런 외모의 낯선 남자를 의심했었는데 나를 보고 있는 국경 경찰들은 오죽할까. 우여곡절 끝에 국경에서 삼십 분 가까이 붙잡혀 온갖 취조를 다 당한 난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이와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의 바닷가 앞에서 한 달 가까운 시간 동안 민박집을 하기에 가장 적당한 곳을 알아보며 밴에서 지냈고 다행히도 스냅사진 예약이 계속 들어와서 동생에게 빌린 50만원을 갚고도 돈을 조금씩 모을 수 있었다. 점점 밴 내부가 더워져가는 4월 중순이 되어서 혜아는 우리에게 돌아왔고 머지않아 아담한 아파트를 구해 민박집을 열었다.
빛이 너무나 따뜻하게 들어왔던 우리의 집
이렇게 우리는 크로아티아에 정착했다. 이제 밴을 탈 일이 없을거라고 생각했기에 밴 안에는 침대 프레임만 덜렁 남겨둔 채 모든 살림살이들은 집으로 옮겼다. 앞으로 열심히 민박집을 운영하고 스냅촬영도 하면서 재미있게 지내보자고 서로 다짐했다. 그리고 한창 더웠던 8월 어느 날 카메라 렌즈를 사러 크로아티아 북부 리예카에 1박 2일로 갔다오는 밴 안에서 우린 2019년 12월 31일에 다시 밴라이프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