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을 건너다

#6

by Dean

밴라이프에 조금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즈음 우리는 영국의 남쪽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었다. 프랑스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서였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가로지르는 '채널 해협'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페리를 타고 바다를 건너거나 유로스타를 타고 땅 속으로 가거나. 우리 밴 크기의 차를 타고 건너기엔 페리가 가장 저렴했기에 그중에서도 가장 싼 아침 첫 번째 페리를 타기 위해 밤새도록 도버 항구를 향해 달렸다. 새벽에 도착해서 표를 끊고 항구 맨 앞에서 기다리자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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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안 좋아졌으며 밴의 계기판에는 알 수 없는 경고등이 방금 막 하나 더 들어왔지만 드디어 내일이면 프랑스로 넘어간다는 생각에 기분은 마냥 들떴다. 핸드폰으로 한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모습을 신나게 찍으며 달리며 새벽 4시 무렵 도버항에 도착했을 때 현장에서 사는 티켓이 두 배 이상 비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미 출국장을 통과한 뒤라 차를 돌려 나갈 수도 없었다. 다행히도 친절히 항구 구석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우린 그곳에 차를 세우고 일단 페리 표를 온라인으로 구매했다. 가장 싸고 가장 이른 배는 이튿날 아침 배뿐이었기에 우린 오랜만에 여유롭게 쉬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우린 그동안 쌓아온 경험치 덕분에 우린 아무렇지 않게 깊은 잠을 잤으며, 해가 뜬 다음 날 아침, 근처 마을 중심가로 가서 커피도 마시고 공짜 와이파이를 즐기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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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버를 출발한 페리는 프랑스 칼레에 도착하는데 1시간 정도 걸렸다. 영국 번호판을 단 차를 타서인지 우린 아무런 검사를 받지 않고 페리에서 내렸고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어서 프랑스에 내리면 역주행을 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새로운 풍경에 매료되어 모두 잊어버렸다. 하지만 한편으론 영국을 벗어나 새로운 세상에 왔다는 생각을 하니 정말 밴라이프를 시작하는 긴장감이 몰려왔다. 10년 가까이 산 영국에서는 모든 게 익숙했으니 필요한 것이 있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았지만 프랑스는 심지어 식료품을 사러 어디로 가야 하는지 조차 몰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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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혜아는 배를 타기 직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몸의 컨디션이 떨어지더니 페리에서 내려 정박지를 찾기 시작할 무렵 즈음에는 앓아누워버렸다. 때문에 프랑스에 도착한 첫날은 어수선하고 우중충하게 지나갔다. 봄이 다가오면서 프랑스 북부 마을 이곳저곳에서 열리는 행사 등으로 애초에 정해놓은 정박지로 가는 길 여기저기가 막혀 있었고, 미처 영국 파운드에서 유로로 환전을 하지 못해서 가지고 있던 약간의 유로로 하루 겨우 먹을 정도의 식재료만 사서 잘 곳을 찾아 헤맸다. 거의 해가 질 무렵 즈음 안개가 자욱이 낀 바닷가 옆에 자리를 잡았고 전날 페리를 타기 전 항구에서 보쌈을 해 먹고 남은 육수에 어설프게 라멘을 끓여 먹으며 프랑스의 첫날밤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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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우리의 첫 정박지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하게 개었고, 혜아도 전혀 아픈 적이 없었던 사람처럼 쌩쌩해졌다. 아담하고 조용한 바닷가가 펼쳐진 프랑스 북부의 Le Portel에서의 둘째 날은 우리가 꿈꾸었던 대로 시작되었다. 푸른 들판과 자갈이 깔린 해변가를 걸으며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고 햇살을 쬐며 바닷가에 앉아 있다가 밴으로 돌아가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으며 앞으로 이런 꽃길만 펼쳐져 있을 것만 같았다.


실컷 사진을 찍고 디지털 노매드가 되어 보자며 유튜브 채널에 올릴 영상도 찍으며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뒤, 페리를 타기 위해 도버를 향해 달려갈 때부터 켜져 있던 알 수 없는 경고등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밴을 사고 나서 얼터네이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딱 한번 펼쳐봤던 매뉴얼에는 브레이크 패드를 교체해야 한다는 경고등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차에 비치되어 있던 공구로 차의 앞부분을 들어 올려 바퀴를 떼어내고 보니 상태가 가관이었다. 다 닳아 없어진 건지 아니면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 브레이크 패드가 있어야 할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그것도 모른 채 한참을 운행을 해서인지 브레이크 디스크는 불균형하게 닳고 부서져가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그냥 보기에도 이미 수리비는 우리가 가진 전재산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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