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마마 Aug 30. 2023

식당보다 Wolworth와 친해진 나

호주 여행에서 느낀 호주 이야기

2005년 나는 호주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사업단의 프로그램 중 하나로, 방학 기간을 이용해 잠시 호주나 캐나다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는 대부분 금액을 학교에서 지원해 주었고, 워낙 어리숙하고 돈이 없는 대학생 시절이라 생활비는 가장 싼 방향으로 해결하려 했다. 주로 헝그리잭과 같은 패스트푸드나 아주 저렴한 중국 식당들을 방문했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경험보다는 금전적 영향을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돈을 버는 성인이라 경제적 여유가 생겼고, 이제는 가장 싼 곳이 아니라 내가 가장 즐길 수 있는 곳을 선택하려 한다. 여행이 주는 경험의 에너지가 좋았기 때문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경험의 에너지를 맘껏 누릴 수 없었다.

호주가 이렇게 물가가 비싸다고?


4인 가족 기준으로 식당에 가면 기본 $100(약 10만 원)를 쓰고 온다. 코로나 이후 한국도 물가가 많이 오른 때라 지금은 크지 않다 느낄지 모르겠으나, 2~3만 원이면 외식을 했던 내 기준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물가다. 저녁을 즐기다 보면 맥주나 와인이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대략 한 잔에 $9~12 정도 된다. 가격을 생각하면 두 잔을 마실 수가 없다. 게다가 공휴일이나 일요일은 같은 식당에서 같은 메뉴를 먹어도 10~15% 추가 금액(Surcharge)이 붙는다. 계산을 할 때 보면, 카드 사용은 더 높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한국과 다르게 카드 수수료를 구입하는 사람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카드 수수료를 지불하기 때문에 현금 대신 카드를 사용하다고 했을 때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 못했지만, 호주는 카드로 결제 시 약 1%를 더 내야 한다.


음식보다 더 자주 찾게 되는 물, 물도 비싸다. 호주가 물 부족국가이기 때문에 물이 귀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첫 방문했던 2005년에 마트를 가더라고 물보다 콜라가 더 쌌고,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는데 몇몇 친구는 목욕하는 시간으로 집주인과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었다. TV에는 물을 가지고 장난을 하면 안 된다는 공익 광고가 흘러나온다. 비가 잘 오지 않고 사막화가 이루어진 호주에서는 물 공급이 제일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1L 생수가 $6 라니. 물론 마트에 가면 더 저렴하게 많은 양의 물을 살 수는 있지만, 여행객에게 대량의 상품은 짐이 된다. 결국 우리는 수돗물을 커피포트로 끓여 먹었다. 새로운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하는 일이 커피 포트로 물을 끓이고 냉장고에 식혀 두는 일이다. 다행히 여행 가방에 챙겨 온 텀블러가 도움이 되었다. 물을 끓이고 텀블러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 후 시원하게 먹곤 했다.


호주로 여행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일이 맛있는 커피를 먹는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포기한 나라가 이탈리아와 호주인 것 처럼 호주는 자체적 커피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하지만 커피 값 역시 만만찮다. 일반 Long black이나 Flat white 종류는 $5~6로 가격이 동일하지만, 조금 특이한 메뉴는 가격이 더 붙는다. 게다가 얼죽아라면 여기에 추가로 $3 이 더 붙는다. 즉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게 되면 약 $10의 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하루에 우리 부부가 커피값으로 약 2만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커피도 맘대로 못 먹겠네. 다행인 건 스트레스가 적어서 그런지,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하루에 한잔의 커피로 만족이 되었다. 뜨거운 태양아래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은 잊지 못하리라.


물가가 비싸다 보니, 우린 식당을 방문하는 것보다 Wolworth나 Coles 같은 대형 슈퍼마켓을 방문하는 일이 잦아졌다. 숙소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가까운 wolworth를 검색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주변에 woloworth가 있는지 찾아보고 들렀다가 오기도 했다. 숙소가 여러 군데 있다 보니 다양한 wolworth 지점을 방문하게 되었고, 매장마다 어떤 물건이 싼지 어떤 특징이 있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주변에 coles 매장이 같이 있다면 비교해 보고 괜찮은 곳을 방문하곤 했다. 인스턴트 라면/음식이나 과일, 시리얼, 치즈, 햄, 빵 등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대부분의 것들을 wolworth에서 구입하여 숙소에 보관하면서 아침 혹은 저녁을 해결했다. 내가 방문했던 브리즈번은 애플망고가 많이 보였는데, 매장마다 차이가 있지만 가장 싸게 샀던 매장은 개당 천 원이 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단연 제일 좋아하는 망고를 한국에서는 개당 만원이 넘어 못 사주었는데 호주에서는 정말 실컷 먹었다. 과도도 없어서 숟가락으로 껍질을 까주었다. 얼마나 좋아하던지 길거리에서도 과즙을 뚝뚝 흘리며 맛있게 먹는 아이들이다. 한국으로 수입되는 망고는 후숙 되어야 단맛이 나는데, 이곳 망고는 신선한 단단함을 가졌지만 새콤달콤한 게 정말 맛있었다. 역시 신선식품은 제철에 바로 먹는 것이 맛있구나. 지금도 가끔씩 이야기한다. 호주에서 망고를 실컷 먹었던게 너무 행복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텔 비용은 싼 편에 속했던 것 같다. 한국은 아직 코로나 위기 대응 중이고 다른 나라들은 엔데믹이 막 시작할 즈음이라 지금처럼 항공/숙박 인플레이션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호텔 기준으로 4인 가족(더블베드 2개) 1박에 15~20만 원 정도로 적정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에어 B&B보다 호텔을 우선 예약했던 것 같다. 그 둘의 금액 차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새해맞이 불꽃축제 날 시드니에서는 하루는 1박에 50만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지만 그날은 특별한 날이니까 제외하기로 한다. (시내도 아닌 공항 근처가 50만 원이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호주는 물가가 비쌀까? 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만 보니 호주도 인건비가 굉장히 비싼 나라였다. 휴일에 일을 했을 경우 사업주가 지불해야 하는 인건비는 평일보다 더 높았기 때문에 휴일에 문을 닫은 식당도 많고 문을 열더라도 따로 추가 금액이 붙었던 것이다. 호주에서는 취직 전 계약서가 중요한 문서이고, 계약서에 제시되어 있지 않은 업무는 강요할 수 없다. 노동권이 철저하게 지켜지다 보니 인건비는 올라가고, 그래서 사람이 하는 모든 일, 특히 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값이 비쌌던 거다. 이곳에서 옷가게 알바만 해도 시급이 3만 원이라는 인터넷 글을 보았다. 중국에서 온 이민 2세와 호주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한국 못지않은 경쟁 속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이곳에 오니 적은 스트레스와 적은 업무 시간에 충분한 임금까지 있어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한다. 특히나 전기 설비업이 돈벌이가 쏠쏠하단다. 남편이 한국에서 1년 정도 경험이 있다고 하자, 여기 오면 부자가 될 수 있다며 얼른 이민오라고 성화다. 적정한 업무시간에 적정한 월급이면 아이를 키우기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데 돈과 시간이 모두 있으니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호주의 놀이터, 그리고 출산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