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선선해지니 각종 축제와 행사가 열린다. 10월의 어느 날, 동네 공원에서 와인 축제를 했다. 너른 잔디밭에 앉아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공연도 즐겼다.
"엄마 저 사람이 누구야? 어떻게 생겼는지 잘 안 보여."
잔디밭 한편 대형화면에 비추는 아이돌 가수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딸아이의 말에, 남편은 네 엄마 닮아서 눈이 나쁜 거란다. 남편은 나보다 먼저 시력 교정을 했지만 똑같이 근시를 가지고 살았으면서 나를 닮아 눈이 나쁘단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부모의 모습이 보일 때마다 좋은 건 나를 닮았다 하고 나쁜 건 상대 배우자를 닮았다고 한다. 남편의 평소 언행이 그가 생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이라면, 남편은 나의 단점만 꼭 짚어주는 경향이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남편이 보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랜 시간 함께 있었던 만큼 편한 사람, 힘들면 짜증 내는 사람, 밤늦게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 까탈스러운 사람,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독불장군. 남편은 상대적으로 고맙다는 표현도 잘 못하고 칭찬도 잘하지 못하는데 언제나 부정적인 부분만 꼬집어 이야기한다. 남편을 대하는 내 모습 역시 비슷할 것이다. 관계란 나 혼자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것을 깨달은 이후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 '그럼 이렇게 해볼까?'와 같은 존중하는 대화를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지만 그 노력에 그에게 닿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는 대화가 많지 않은 부부니까.
지금의 남편과 다르게 나를 예쁘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다. 주로 나이 많으신 분들에게 그런 것 같다. 그분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지만 표면적인 나의 역사를 보고 예뻐해 주신다. 내가 그 세대가 원하는 인생을 차곡차곡 살아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시대의 어르신이 좋아라 하실만한, 학생 때 공부 열심히 하고 적당한 나이에 취직해서 적당한 나이가 되어 결혼하고 아이 낳고 그런데 거기에 직장 생활하면서 애 키우고 살고 있으니 그런 면을 예쁘게 봐주시는 것 같다. 조부모님 밑에서 커서 그런지 어르신들과 살갑게 대화도 잘한다. 가끔 그분들의 휘황찬란한 칭찬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가 그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남편에게 들은 말과는 반대의 감정이다.
처음의 남편도 나를 그렇게 봐주었겠지. 나 역시 남편의 좋은 모습만 바라보고 이상화하며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단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하고 마음속에 미움이 싹트면서 내가 설레던 그 장점조차 단점으로 변했다. 아무래도 같이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내가 만들고자 했던 나의 이상적인 모습보다 나의 본성적인 실제 모습을 더 많이 보게 되리라. 그 본성적인 실제 모습 중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도 있을 것이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면 사랑스러운 부분만 머릿속에 남는다. 나 역시 콩깍지가 쓰여있을 동안은 좋은 점만 기억하고 사랑했다. 콩깍지가 없어진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내 남편은 지금과 같았고 그전에도 현재의 단점에 대한 분명 동일한 신호가 있었다. 그것을 보지 않고 무시한 것은 나이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도 했지만, 콩깍지 덕분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만 부각되어 보였던 것 같다.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래서 사랑은 결국 변한다.
다시 콩깍지 삽입술이 시급하다. 콩깍지를 삽입하기 위해 칭찬일기나 감사일기라는 것이 필요한 걸까? 내가 보는 시각을 긍정적인 것으로 변화시키고, 말과 행동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어 결국 생각이 변하게 된다면 우리의 관계는 지금과 달라져있을까?
나와는 다른 성향의 아이를 보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나는 원하지 않는 상황에 언제나 처음에는 참다가 화가 차 오르면 짜증을 내며 말하는 경향이 있다. 분명 여러 번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화가 차올라 짜증을 내며 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마다 큰아이는,
"엄마, 아빠도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빠도 기분이 안 좋을 거야. 그냥 부탁해도 아빠는 엄마 말을 들어줬을 거야."
이렇게 설명을 해준다. 이 문장은 내가 큰아이에게 매번 했던 말이다. 부정적인 감정 조절이 어려워 소리 지르고 울던 아이에게 항상 내가 했던 말이었다. 그 문장 그대로 내가 돌려받으면서, 나는 아이가 정말 많이 성장했다는 감동과 내가 몰랐던 나의 행동에 대해 곱씹어 보게 된다. 다른 사람의 말보다, 아이의 말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것을 이해한다면 세상 나쁜 사람과 착한 사람을 구분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상대방의 모든 장점과 단점을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생활이든 사회생활이든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고고한 사람이 되는 게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사는게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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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트 권감각님 채널을 보면, 결혼한 자라면 콩깍지 삽입술을 해서라도 본인이 선택한 결혼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로 콩깍지 삽입술이란 게 있으면 좋겠다. 권감각님은 한번 선택한 결혼 사별까지 잘 지내기 위한 결혼 생활 콘텐츠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시는 분이다. 재밌는 주식이야기는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