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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26. 2020

[단편] 선미의 생각 - 4

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단상

 
 “전직轉職을 하시려는 이유는 뭐죠?”

 선미 앞에 면접관 4명이 질문서를 들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말하는 자세, 시선처리 등을 예의 주시하면서 질의를 하고 있다.

 회사를 옮기려는 이유, 현재 회사에서 하고 있는 업무, 그녀가 알고 있는 제휴업체 현황, 최근 업계 동향과 트렌드에 대한 집중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다행히, 그 모든 질문세례는 그녀의 전공과목 범위 안에 있었다.

 한 우물에서만 7년을 근무한 덕분에 답변은 질문자들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1차 실무 면접을 통과한 지, 일주일 후에 그녀는 2차 임원 면접을 치르고 있다.

 그들도 정규직은 아니지만, 업계 이해도나 네트워크에 강점을 가진 그녀를 주목했다.

 이윽고, 최종, 세 명이 경력직으로 채용되었다.

 그 명단에는 선미도 들어 있었다.

 대기업 정규직 입사가 최종 확정된 것이다.

 이제 그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던,

 검고 낯선 낙인과도 같았던,

 계약직 직원, 계약기간, 갱신 그리고 재갱신이라는 불편했던 단어들과 일별 하고, 새로운 삶의 현장으로 들어갔다. 

 선미 대리! 

 새로 이직한 회사에서 불리는 호칭이다. 

 막상 꿈에 그리던 정규직, 거기에 경력까지 인정받아 대리로 입사하게 되자, 

 수많은 단상이 그녀 뇌리 속으로 밀려들어 왔다. 

 문득, 전前 직장에서 대리까지 되기에 몇 년이 소요될지 가늠해 보았다. 

 아마도, 그녀가 나름 치열한 계약직 동료들과의 경쟁을 뚫고 정규직 계장을 거쳐, 대리까지 되기에는 10여 년 이상 세월이 소요될 것이다. 

 그것도 행운의 여신이 그녀 곁에서 항상 세심히 돌보아 준다는 가정 하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예전에는, 정규직 직원들을 보면, 같은 세대 젊은이임에도 마치 그들은 이를테면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 또는 다른 인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아니, 일부러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야, 그녀 삶의 일부라도 온전히 지켜 낼 수 있다고 생각되었으니까! 

 그토록 노력해도 좁힐 수 없었던 간극, 동료 계약직들도 온갖 노력을 다하며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았던 행운, 

 그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선미에게 손을 내밀고 그녀 손을 잡아 준 것이다. 

 마치 오래전부터 한참이나 그 자리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는 듯이.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부장님!”

  “어이, 선미 주임, 회사 옮기셨다고 들었어요. 정말입니까?”

  “벌써 소문 들으셨어요? 여기, 새로운 명함 드릴게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분은 우리 회사 팀장님이세요.”


 그녀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팀장을 제휴업체 부장에게 소개해 준다.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이 업체는 전 직장에서부터 그녀가 세심히 관리해 오며, 자주 식사도 하던 관계였기 때문에 영업을 시작하기에 수월했다.

 팀장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네트워크에 크게 기대하는 눈치였는데, 막상 현장에 나와 보니 그 진가를 확인한 듯해 몹시 기뻐했다.

 그녀 또한 움츠려 있던 자신감이 더해져, 그녀 속에 내재된 영업 능력이 한꺼번에 표출되고 있었다.

 업체 방문을 마치고,

 팀장과 함께 회사 1층 검색대에 출입증 카드를 터치하면서,

 그녀는 문득, 자신이 더 이상 출입증 어깨띠 컬러에 민감하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냥 쓴웃음을 지으며 사무실로 향했다.  

 조금 전에 다녀온 업체 방문 결과 보고서를 작성하여 팀장에게 메일로 전송한다.

 잠시 쉬는 동안, 회사 게시판에 들어가 서핑을 시작한다.

 그중, 동아리 회원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그녀 눈길을 끈다.

 클릭해서 들어간다.

 동아리 이름은 “100억 클럽.”

 동아리 모토는 ‘퇴직할 때 백억 원을 모아서 나가자.’이다.

 100억?

 나에게 100억을 만들 종잣돈이나 있나?

 그녀는 무심코 넘어가려다가, 순간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돈이 없으면 없을수록 알아야지!

 그녀는 이 기회에 체계적으로 자산 투자에 접근해 보고도 싶었고,

 또 회사 동료들과 인적 네트워크도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입 신청서에 기재하고 회신 버튼을 눌렀다.  
 

 투자 동아리는 기존에 2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 중이었고,

 새로 가입한 신규 회원 10여 명이 이번에 추가되었다.

 조직과 활동은 선미가 예상했던 것보다 체계적이었다.

 정기 모임은 월 1회 개최된다.

 모임에서는 투자 전문가를 초빙하여 최근 투자 동향, 투자 포인트, 주식, 부동산, 기타 자산증식에 대해 세미나를 개최하고 토론한다.

 일부 회원들은 함께 몰려다니며 투자 전문 대학원에 다니기도 하고, 부동산 투자 관련 최고위 과정에 수강하거나, 펀드를 조성하여 투자처를 찾는 직원들도 있었다.

 그동안 선미가 모르던 세계가, 그것도 아주 넓고도 상상할 수 없던 세계가,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세미나 후에는, 친한 그룹끼리 모여 뒤풀이 모임을 하곤 했다.

 선미는 같은 본부에서 근무하는 C과장을 그곳에서 만났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였는데 막상 한 동아리에서 만나니 또 다른 의미로 동료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그와 옆자리에서 맥주를 함께 마시던 중,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건너편 누군가가 그를 언급하며 미국 MBA 출신으로 우리 회사에서 몇 안 되는 유학파라고 수군거렸다.

 술자리를 파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그녀는 자신이 어느덧 MBA 출신들도 모이는 그런 수준 높은 이너서클에서 같은 멤버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왔다.


 
선미가 회사를 옮긴 지 거의 1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남친 우식으로부터 왔다.

 요즘, 그와의 관계를 ‘밀당’이라고 해야 할까!

 한동안, 자신에게 무심하던 우식의 입에서 결혼 이야기가 슬슬 흘러나오기 시작하더니,

 최근 들어서 부모님 성화가 보통이 아니라며 더 이상 결혼을 미룰 수 없다는 식의 압박이 들어오기에 이르렀다.

 지난주에는 아예 양가 상견례 날짜를 잡자는 우식의 재촉이 더해졌다.

 저녁 무렵, 선미가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톡이 올라온다.

 “자기, 뭐해?”

  “지금? 지금은 쫌 바빠..”

  “그래? 우리 부모님이 이번 주말에 너를 좀 보자고 하시네..”

  “왜?” “왜긴 왜야? 상견례하고 우리 결혼식 때문에 그러시지..”

  선미는 잠시 주춤했다.

 어떻게 답을 주어야 할지 순간 망설여졌다.

 남친 쪽에서 결혼 논의를 서둘러 들고 나오는 것이 정말 둘 사이에 사랑이 무르익고 때가 되어서 인지,

  아니면 다른 동기에서 인지 확신이 서질 않는다.

 혹시라도 자신이 대기업으로 옮기고 정규직 대리가 된 점이 중요한 고려 사항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 머릿속에서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여자인 자기가 몇 번씩이나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냈음에도 무반응이었던, 우식이기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정말 자신이 힘들고 외로웠다.

 그래서 남친에게 더욱 기대고 싶었다.

 옆에 있는 그의 존재가 간절했던 시절,

 무엇보다도, 전 직장 팀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을 때,

 술에 취한 채 휴대폰조차 꺼버린 일은 두고두고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가슴에 새겨져 있다.

 그 이후로는, 서운함을 넘어 이 남자가 과연 맞는지 회의懷疑가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금은 바빠. 퇴근 후에 연락 줄게”

 답톡을 하고 그녀는 조금 후에 시작될 투자 동아리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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