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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May 27. 2020

[단편] 선미의 생각 - 5 (끝)

계약직과 정규직에 대한 단상


 강단 옆에는 흰색 바탕 스크린 롤에 서울시 지도가 그려져 있다. 

 외부 초청 강사는 부동산 투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사업이 아니고, 

 먹고 튀는, 소위 먹튀 사업은 더더욱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월세 수익 사업을 한 예로 들며, 

 일반인이 잘 모르지만, 알고 보면 꾸준히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종종 딱딱한 부동산 용어를 일반인 머릿속에 쏙쏙 새겨질 수 있도록 무진 애를 쓴다.  

 “여러분, 깔세라고 아시나요? 깔세?”

 
 “...........”

 모두 침묵한다. 

 “어감은 아주 후져 보이죠? 상스럽게 들리기도 하고. 그런데 요 녀석이 아주 효자입니다. 이런 효자가 없어요.”

 그는 1년 치 월세를 첫 달에 모두 받는 월세, 속칭 ‘깔세’라는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누군가 손을 들고 유망한 투자 지역을 몇 개 찍어 달라는 요청 한다. 

 그는 망설이더니, 전통적인 투자처와 최근 미군이 대규모로 이전한 한 지방도시를 예로 들어준다. 

 그리고는, 투자는 역시 본인 책임 하에, 절대로 부동산 중개소 말만 믿지 말고, 

 수도 없는 발품을 팔아야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자리를 마무리하였다.   

 친한 동료들끼리 그룹을 지어 간단한 맥주와 저녁이 곁들인 뒤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그곳에서도 오늘 주제인 ‘깔세’에 대한 토론은 계속 이어진다. 

 누군가 말이 나온 김에 이번 주말에 현지답사를 가자고 했고, 누군가 ‘콜’하며 응답한다. 

 외국 사례는 어떠냐고 누군가 물었다. 

 모두 C과장을 쳐다본다. 

 그는 잠시 당황한 얼굴빛을 보이더니, 

 자기는 미국에서도 시골 주에서 그것도 기숙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아무 영양가가 없을 것이라며 겸손해한다. 

 모임 뒤에, 같은 본부 직원인 C과장, 수영 대리, 선미. 이렇게 셋이서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갔다. 

 이야기 도중에, 선미가 물었다.  

 “수영아, 너는 목표를 얼마로 정했니?” 

 “우리 동아리 목표가 각자 100억 아닌가요?” 하며 웃는다. 

 “그래도 실현 가능한 목표는요?”

 C과장이 다시 묻는다.

  “저는 작년에 동아리에 가입할 때 목표를 정했어요. 7년 안에 10억.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10억을 모을 거예요. 

 돈이 모이면, 그 이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겁니다. 

 이제 1년 지났으니, 6년 남았네요.” 

 “그렇게 구체적인 목표를... 하고 싶은 일은?”

 선미는 다소 놀란 표정이다. 

 “하고 싶은 일? 다음에 시간 되면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그러면서, 

 “중요한 건 언니, 인생이 생각보다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잖아요. 인생 1막에서는 필요한 돈을 벌고, 

 2막에서는 벌어 놓은 돈으로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며 살고... 

 그렇게 목표를 세우니까, 사는 것도, 회사일도 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수영은 야무지게 대답하며 웃는다. 

 조금 있으려니, 휴대폰을 체크하던 그녀가 남친이 기다린다면서 자리를 먼저 떠났다. 

 약간의 시차를 두고, 

 남아 있던 둘도 자리를 털고 일어선다. 

 밖으로 나오자, C과장이 선미에게 묻는다.

 “저, 혹시 실례인지 모르겠지만, 남자 친구 있으세요?” 

 “네? 왜요?”

 “갑자기 제 친구가 생각나서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만난 친구 녀석이 하나 있는데 아주 괜찮아요. 생각 있으세요?”

 선미는 잠시 주저하다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로 대신하고 그와 헤어졌다. 

 지금 새로운 ‘남자’가 선미 안에 들어 올 공간이 있을까..........? 

 그녀는 이 순간, 

 ‘남친 우식은 닳고 닳은 사람도, 계산적인 인간도 아니다. 

 그런 그이도 내가 정규직이 된 후부터, 결혼하자며 적극적으로 나에게 달려 붙는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금 C과장이 소개시켜 주겠다는, 미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로 조건이 좋은, 

 남자와도 언젠가는 그 현실이라는  문제에 대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과 아울러, 

 ‘그럼, 도대체,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나?  

 계약직 시절에는 정규직이 목표였다. 정규직이 된 지금은? 

 고작, 정규직이 내 인생의 목표였나? 아니면, 남자 친구, 결혼.... 

 차라리 후배 수영처럼 커다란 목표를 세우고,  

 아주 작은 한 발짝이라도,  

 아주 적은 한 움큼일지라도 나만의 미래를 그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는 사이, 진동으로 세팅되어 있는 휴대폰은 계속 자지러지고 있다.

 남친 우식일 것이다.

 아마도 그새 카톡이나 문자도 잔뜩 쌓여 있겠지!

 오늘 밤에는 양가 상견례 날짜를 확정 짓자고 작정한 모양이다.

 선미는 잠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전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당분간도 받지 않을 작정이다.  

 늘 헝클어진 선으로 가득 찼던 인생,

 이제는 텅 빈 여백 위에 자신만의 색채로 조금씩 조금씩 메워가는 것을 꿈꿀 자유...

 그럴 권리... 뭐... 그런 따위도 `나`에게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며...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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