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광장동 Aug 02. 2020

[단편] 원래부터 아이히만 - 1

인간, 심성, 윤리에 대한 탐구

1. 초급 과정     

 회사 근처 유명한 생태탕 전문집은 오늘도 점심식사 시간에 사람들로 북적인다.

 대로변은커녕 좁고도 허름한 골목길에서 또 한 차례 우측으로 꺾이어 들어가면, 먼지가 잔뜩 낀 흐릿한 문틀 사이 유리창 위에 생태탕 전문이라는 붉은색 글씨가 간판을 대신해 써져 있다.

 식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면 신발장조차 없다. 아무리 바닥에 반듯하게 구두를 놓고 방에서 식사를 하더라도 연이어 들어오는 손님들 신발과 뒤엉켜 수십 여 구두 켤레가 얼기설기 섞이게 된다.

 혹시나, 새로 구입한 구두라도 신고 온 경우라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렇듯, 손님들이 불편을 무릅쓰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 한 가지. 바로 ‘손맛’ 때문이다.      

 한 자리에서만 이십 년을 넘게 장사를 해 오신 주인 할머니의 독특한 그 손맛.

 설설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생태에서 풍기는 냄새가 처음부터 입맛을 돋게 한다. 숟가락으로 국물 한 입 떠먹고, 고기 한 점이 입안에 스윽 들어가는 순간, 지금까지의 불편함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느끼게 해 준다.

 이렇듯, 복잡하긴 하지만 그래도 든든하게 점심 한 끼를 제대로 먹었다는 만족감으로 식사를 마치고 신발을 신으려 할 때면, 또다시 구두 더미의 정글 사이에서 자기 것을 ‘발견’해야만 했다. 이 정도면 신발 위치 추적기라도 달아야 할 판이다.

 태혁 대리는 D본부장, H팀장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난마처럼 얽혀 있는 신발들 틈에서 본부장 구두를 한눈에 찾아내는 신기神技를 발휘한다. 그리고 외친다.     

 본부장님본부장님 구두여기 있습니다!”     


 
함께 신발더미를 이리저리 바라보던 본부장은 흠칫한다. 

 ‘참, 나도 못 찾을 정도로 혼잡한 이 아수라판에서 내 구두를 한눈에 찾다니 정말 대단하군!’    
  

 감동하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태혁 대리는 최근 불미스런 사건으로 회사에 찍혀 지방 영업점으로 쫓겨날 예정인 직속 상사 H팀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D본부장 뒤를 따라 황급히 밖으로 나선다.

 홀로 남겨진 팀장은 그 둘의 뒤를 따라 터벅터벅 걷는다.

 그는 회사 측의 부당한 조치로부터 자기를 지켜주지 못하는 본부장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의 ‘갓 끈’이 끊어졌다고 판단하여 자기를 대놓고 무시하는 부하직원 태혁 대리 행태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특히, 지난해 인사고과 시즌을 앞두고 저 인간이 보인 태도를 비교해 보면 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그 당시 둘이 점심식사를 한 후 회사에 들어가려 할 때였다.

 갑자기 소나기가 세차게 쏟아졌다.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이, 대리는 어디서 구했는지 용케도 헌 우산을 빌려와 자기에게 건네주고는,

 “팀장님! 이 우산은 너무 작아서 둘이 쓰면 둘 다 비에 젖을 것 같습니다. 저는 그냥 알아서 가겠습니다.”

 하고는 말릴 틈도 없이 후다닥 회사를 향해 비를 흠뻑 맞으며 뛰어갔던 그의 뒷모습이 되살아났다. 상사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받아 최고 등급 인사고과를 주었던 자신의 순진한 모습과 함께.  



 태혁! 클 태(太), 빛날 혁(赫)! 

 
이름만 놓고 보면, 남자다운 포스를 풀풀 풍긴다. 어딘지 한 덩치는 할 것 같고, 심지가 곧을 듯하고, 타고난 리더십이 강하거나 최소한 그 비스무레한 기운이 그의 주위를 차고 넘칠 것 같아 좋아 보인다.

 하지만 누군지는 모르나 작명하신 분이 조금만 더 사려 깊었다면, 아마도 그의 이름은 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좋은 이름에 성性인 ‘변’을 더하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르기 때문이다.

 즉 그의 이름은 변태혁이다.

 단지 이름 하나로, 초등학교 시절은 그야말로 수난의 연속. 철없는 어린아이들이 장난삼아 “변태야! 변태야!”라는 말을 마치 동요 읊듯이 떠들고 다니며 그를 괴롭혔다.

 그럴 때마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의 이름 석 자 중에서 마지막 자인 ‘혁’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저 ‘변태’만 살아남았다.

 그러한 현상은 중고교 시절에도 바뀌지 않았다. 친구들은 물론 이번에는 담임선생님까지 가세하여 그를 일컬어 “야! 변태, 너 이 자식!” 하면서 마치 그의 이름이 진짜 ‘변태’인 양 함부로 다루기를 당연시했다.

 드디어 반발을 체념한 그는 “변태!” 하고 누군가 부르면 “왜?” 하고 뒤를 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름과 연계된 그의 수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입학한 그는 미팅이나 소개팅에서도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는 일부러 자기소개를 할 때 이름을 “변(한 박자 쉬고) 태혁입니다.” 라며, 굳이 변과 태혁을 구분 지어 소개하는 잔기술을 개발하여 펼쳐 보인다.

 하지만, 어차피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변태혁’으로 들리기 때문에 결과는 매일반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 석 자가 공기 중에서 파장을 일으키는 순간,

 상대편 여성 또는 여성들은 어김없이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면서 자기들끼리 눈짓을 교환하며 슬며시 눈웃음을 짓거나,

 각자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억지로 참는 모습을 연출하고는 했다.

 심지어 학과 교수님조차도 출석을 부르실 때, 그의 이름 앞에서는 잠시 우물쭈물하시더니 ‘변태(잠시 후에) 혀~억’이라고 하시면서 스스로 어색해 어쩔 줄 모르곤 하셨다.   
   

 하지만, 그의 특이한 이름은 역설적이게도 그와 타인 간 차별성에 도움이 되기도 하였다.

 1학년 과 MT를 갔을 때 일이다. 동기생 오십여 명이 넘게 참가하였는데 자기소개 시간이 돌아왔다. 각자 돌아가면서 고향이 어디고, 이름이 누구이며, 자기 특징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자리가 지루하게 이어졌다.

 모두 남의 소개를 다 기억할 수는 없는지라, 각자 소중한 이름은 아쉽게도 한쪽 귀로 들어와 즉시 다른 쪽 귀로 흘러 나가는 시간이 계속되었다.

 드디어 그의 차례가 돌아왔다.

 그는 자기 이름을 친구들 골수에 깊게 ‘팍’ 꽂히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제 이름은 변태혁입니다외우기 힘드시죠그냥 끝자리 혁을 빼고 변태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변태!

(( 계속 ))

작가의 이전글 [단편] 선미의 생각 - 5 (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