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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Aug 03. 2020

[단편] 원래부터 아이히만 - 2

인간, 심성, 윤리에 대한 탐구

 변태혁이 4학년 졸업반이었을 때, 그는 안정되고 연봉이 높은 대기업이나 금융회사에 취업하고자 매달렸다.

 하지만,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 발 금융위기로 국가경제가 휘청하면서 취업시장이 엉망이 되었다.

 별다른 스펙 쌓기를 할 수 없었던 그는 여기저기 입사원서를 넣었으나 최종 귀착지는 구로디지털단지에 위치한 중소기업 정확히는 중견기업이었다.

 나름, 대기업 1차 협력업체로 연봉과 복리후생도 상당한 수준으로 갖추어진, 이직률도 낮고 직원 만족도도 높은 회사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회사에 만족할 수 없었다.

 다시 준비하고 도전하여 한 차례 또 다른 직장을 거쳐, 드디어 현재 직장에 안착한 후에야 비로소 긴 여정의 짐을 풀 수 있었다.

 원래 타고난 성품인지 아니면 굴곡진 삶의 과정이 그의 캐릭터를 변형시켰는지는 천지를 창조하신 분만이 아실 일이다.

 어찌 되었든, 돌고 돌아서 온 자리인 만큼 다시는 변두리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그의 다짐은 더욱 단단하고 집요해졌다.     
 


 
 그가 입사하고 3년 차가 되던 해. 동기들 수십여 명이 의기투합하여 양평에 있는 펜션에서 입사 기념 야유회를 개최하였다.

 가까운 서울 인근이었으므로 친한 동기끼리 짝이나 그룹을 지어 자가용을 타고 약속된 장소에 모였다. 모두 입사 시절을 회고하면서 저녁식사와 이어진 술자리에서 긴장을 풀고 각종 회사 뒷담화로 웃음꽃을 피울 무렵,

 변태혁은 화장실을 다녀오던 중, 주차장으로 클래스가 남다른 차 한 대가 뒤늦게 들어오는 걸 우연히 목격하였다.

 말로만 듣던 드림 카 ‘마세라티 기블리.’

 그리고 차주는 여자 동기 은주.    

  

 그녀는 현재 변태혁과 같은 본부에서 근무 중이다.

 같은 층에서 늘 보아오던 그녀였지만, 동기생을 넘어서는 ’저 여자다‘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외모를 중요시하는 그에게 은주는 한마디로 별로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비싼 외제차가 그녀를 색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전까지는 자기 스타일도 아니고 별다른 ’필‘을 느낀 적도 없는데 어느새 은주가 변태혁 안에 들어왔다.

 그는 사전 약속이 있어 늦었다는 그녀 옆에 착 달라붙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다른 동기들이 술에 취해 흥청망청, 해롱해롱, 무아지경을 헤매고 있을 때, 그는 은주와 마세라티와 자신을 연관시켜 보았다. 멋진 조합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다음 주 초, 변태혁은 부리나케 출근하자마자 인사파트 동기에게 부탁하여 그녀 주소를 알아냈다. 물론 이유는 다른 것으로 둘러댔다.

 그리고 인터넷 부동산 사이트에서 그녀가 사는 아파트 가격을 조회해 보고는, 자신의 머릿속에 올해 추진해야 할 최우선 과제top-priority로 “은주는 내 것”이라고 새겨 넣었다.

 은주는 현재 또 다른 동기 인창과 ‘썸’타는 사이다.

 하지만, 변태혁에게 그런 건 중요한 장애물이 아니다. 그는 인창이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여 둘이 자주 만나지 못하는 그 빈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갔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서양 속담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또한 은주 사수가 최근 퇴사하여 그녀 업무량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야근이 잦아진 것을 공격 포인트로 잡았다. 갑자기 자신도 야근을 자처하여 그녀와 둘이 저녁을 먹는 시간을 늘리고 횟수가 잦아지도록 유도했다.

 그러면서 늦은 밤 그녀를 집에 바래다준다거나, 가벼운 맥주를 한 잔씩 하면서, 그녀가 ’혹시!‘ 하고 박아 놓은 그에 대한 경계심을 하나씩 하나씩 무장해제시켜 버렸다.

 드디어 어느 날인가 그녀 스스로 동기 인창에게 이별을 통보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선망의 대상이던 ’마세라티‘를 은주와 함께 타고 다니게 되었다. 회사 생활도 같은 방식이었다. 그 방식이라는 것은 보통 직장인과는 아주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것은 선도 없고 악도 없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서, 자신의 이익을 찾아 질주하는 인간형이다.

 영혼은 당연히 결락된 채.      




 변태혁 과장이 근무하는 고객 서비스본부는 언제나 고객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원은 고객의 코흘리개 돈, 즉 잘잘한 소매금융으로 먹고사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핵심지표이기도 하다.

  따라서 각종 민원업무를 수행하는 콜센터 시스템이나 상담원은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자 경쟁력의 원천이다.

 다행히 현재까지는 경쟁회사에 비해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여러 굵직한 이슈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상담원 인원이 급증함에 따라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추가 공간 확보였다.

 현재 강남에 위치한 콜센터는 접근성은 좋으나, 운영비용이 과다하게 지급되고, 휴식 공간 협소 등 직원 복지 측면에서 단점이 계속 지적되어 왔다.

 그래서 전산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하기로 예정된 내년에, 차라리 장소를 옮겨 넓고 쾌적한 환경에서 상담원들이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행 장소를 유지하고 근처에 필요한 별도 건물을 추가로 확보하는 것이 좋다는 여론으로 갈려 있었다.  
    

 각각의 의견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다.

 회사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본부 의견을 우선하여 듣기로 했다.

 이에 따라, K 본부장은 본부 직원들 의견을 모아 합리적인 결정을 하겠다면서 ‘콜센터 경쟁력 강화를 위한 테스크 포스(T/F)’를 구성하고, 각 팀에서 과차장급을 선발하여 위원으로 참여시켰다.    
  

 변태혁 과장이 고객기획팀 대표로 첫 T/F 회의에 참석해 보니, 의견이 반반이었다.

 지루하고 끝없는 토론이 이어졌지만, 이견은 그다지 좁혀지지 않았다.

 결국, 이전을 주장하는 측은 이전 시 효과, 어느 지역으로 이전할 것인지, 비용은 얼마나 소요될 예정인지를 조사하고,

 현행 장소 유지를 주장하는 측은 현재 장소 협소에 따른 문제점을 어떻게 해소할지, 공간이 부족하면 근처 어느 빌딩을 임대할 것이며, 그에 따른 소요비용 예측 자료를 만들기로 하였다.

 한 달여 기간 시장조사와 자료 작성, 수정 작업을 거쳐 다음과 같은 결론이 도출되었다.

 ①안 : 현행 건물 유지 + 부족한 공간은 회사 근처 건물 추가 임대 

 ②안 : 콜센터 전체를 성수동으로 이전   
    

 한편, 본부장 브리핑을 담당할 직원으로는 서비스운영팀 김 차장과 고객기획팀 변 과장이 선정되었다.

 둘은 두 가지 방안을 꼼꼼히 정리한 후에 본부장 보고 전에 다시 만나 의견을 조율했다. 협의 결과, 최근 T/F 직원들 의견이 ①안으로 기울었다는데 견해를 같이 했다.

 그리고 최종 보고인 본부장 사무실 앞에서 다시 한번 의견을 확인했다.  ‘역시 ①안이 답이다.’      

 그 둘은 본부장 방으로 들어갔다.

 제출된 보고서를 한참이나 들여다본 K 본부장은, 먼저 둘 중 선임인 김 차장에게 의견을 묻는다. 김 차장은 변 과장과 협의된 대로 ①안이 최선의 안으로 사료된다는 점을 자세히 설명한다.

 본부장은 브리핑을 듣고 혼자 깊이 생각하더니,

 “좋은 의견이야. 충분히 논리적이고 이전 비용을 고려해 보면, 역시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보여” 하며 칭찬을 한 후에,

 “그런데 말이야. ①안은 한계가 있지 않을까?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데 사무 공간이 둘로 나누어지면, 효율성은 분명히 떨어질 것 같은데...

 그런 측면으로 보면 ②안인 성수동으로 이전하면 한 건물을 넓게 쓰면서 비용도 절감되고, 동일한 공간에서 근무하면 업무 효율성도 높아질 테고...”     

 “참. 내 의견은 그렇고... 변 과장 생각은 어때?” 하며 그의 의견을 묻는다.

처음부터 ①안을 주장했던 변태혁은 이때 본부장 의중을 정확히 읽는다. 그리고 조금도 주저함 없이 망설임 없이 확신에 찬 눈빛으로 무장한 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도 안이 아주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저는 처음부터 안 성수동 이전으로 정하는 것이 회사를 위해 좋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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