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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장동 Sep 06. 2020

[단편] 그녀의 봄 나들이 - 4

결혼, 권태 그리고 다시 두근거림에 대하여...

 오후 4시, A기업체 재무담당 부사장실.

 진아 팀장은 윤식 계장과 함께 준비된 금융상품을 선보이며,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커리어 우먼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단정한 정장 차림으로 다소곳한 자세를 유지한 채,

 장차 고객이 될 분들과 눈을 맞춰 가며, 가끔은 환한 웃음을 적시에 터트려가며, 분위기를 잡고 영업에 몰두했다.

 그 옆에서 계장은 눈을 멀뚱하게 뜨면서 가끔 고개를 주억거리며 함께 보조를 맞추어 나갔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마지막까지  아무도 알 수 없는 법.

 부사장은 적극 검토해 보겠다는 다소 모호한 답변을 주었다.

 빌딩 밖으로 나온 두 사람. 계장이 그녀에게,

 “팀장님,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분위기는 좋았는데...”

 “그걸 누가 알겠냐? 도장을 찍기 전 까지는 아무도 몰라.”

 “저 정도 적극적으로 나와도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는 기대에 찬 눈빛이다.

 그녀는 아직도 순진하고 어리기만 한 계장을 그저 한심스러운 눈빛으로 흘겨본다.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체크한다.

 지점에 들어가기엔 애매한 시간이다.

 들어가 봐야 독사 같은 지점장 앞에서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잠시 망설인다.

 그러더니, 계장에게 “따라와” 하면서 택시를 잡아타고 청담동으로 가자면서 눈을 감았다. 




 카페는 고즈넉하다.

 손님들도 띄엄띄엄.

 아마도 직장인 퇴근이 시작되면 다시 분주해질 것이다.

 계장은 아이스 모카를 그리고 팀장은 프라푸치노 그란데를 주문했다.

 그녀가 그 칼로리 덩어리를 주문했다는 것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암시이다.

 계장은 갑자기 주눅이 든다.

 언젠가 팀장이 자기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일부러 칼로리 가득한 프라푸치노 그란데를 한껏 마시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적 부진 때문에 팀장이 직접 나서 함께 그 업체를 방문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죄송합니다. 팀장님. 제가 빨리 밥값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면서 그녀 눈치를 살핀다.  

 “윤식 계장, 네가 아직도 신입이냐? 툭하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왜 당신 잘못이야.”

 “그래도 제가...”

 “됐어, 그만하고. 그나저나 얘는 왜 아직도 안 들어 와!”

 둘이서 앞에 놓인 음료수를 마시며 지점장 뒷담화를 한창 늘어놓을 즈음, 친구 혜원이 들어온다.

 그녀는 피크타임 전에 근처 헬스클럽에서 수영을 하고 온다며, 늦었다고 미안해한다.

 그리고 진아 옆에 앉은 처음 보는 남자를 쳐다본다.

 진아가 소개를 시켜준다.  

 “참, 서로 처음 보지. 인사해. 내 친구, 내 후배” 둘은 어중간하게 주춤하며 인사를 나눈다.

 곧, 진아와 혜원은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참 후, 진아가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섰다.

 갑자기 어색해진 두 사람.

 혜원이 윤식 계장에게 말을 건넨다.

 “수영 좋아하세요?”

 “네, 버터플라이까지 그럭저럭 합니다. 지금도 주 2회 정도 다닙니다. 저한테 잘 맞는 운동 같아서... 여성분들도 다이어트에 좋다고 우리 클럽에 많이들 오세요.”

 “계장님, 어휴... 저 어깨 근육 좀 봐. 수영으로 다지신 거예요?”

 혜원은 군살 없이 차돌처럼 단단한 그의 어깨를 한참이나 훑는다.

 때마침 진아가 돌아와 다시 그녀들 사이에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윤식은 휴대폰을 검색하면서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잠시 후에, 전화를 받으러 양해를 구한 뒤 밖으로 나간다.

 그가 나가자 혜원은 진아를 쳐다보며 슬쩍 눈을 흘긴다.

 “진아야, 누구니?”

 “누구? 말했잖아! 내 조수라고.” 그녀는 무심히 답변한다.  

 “우후! 괜찮은데...”

 “괜찮아? 뭐가?”

 “뭐긴. 저 친구. 멀끔하잖아. 키도 적당하고, 눈은 선하게 생겼고, 짙은 눈썹, 인중선이 깊고 넓잖아. 그리고 아직 전혀 때 묻지 않은 영계 같고. 음... 끌리는데....”

 혜원은 말하고 나서 야릇한 미소를 짓는다.

 진아는 멍하니 눈을 깜박거린다.

 그러더니 상황을 파악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

 “너, 많이 외롭구나. 남자가 필요해? 그래도 안 돼! 쟤는 너무 어려. 애송이라고, 애_송_이. 아무리 연하남이 좋기로 서니, 그것도 어느 정도지.”

 그때, 계장이 다시 들어온다.

 그는 휴대폰 검색을 계속하고 있다.

 혜원은 커피를 한 모금씩 홀짝이면서 눈은 윤식에게서 떼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혜원 얼굴이 점차 희미하고 엷은 분홍빛으로 물들어 간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간다.

 그때, 둘을 한동안 번갈아 바라보던 진아는 갑자기 당황한다.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잔을 들어 커피를 마시는 척하며 얼굴을 가린다.

 그녀가 당황한 이유는 친구의 핑크빛이 물든 미소나 얼굴색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애송이‘에게 처음으로 묘한 감정을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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