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두리 May 17. 2023

지는 법 배우기

 "이대리는 지는 법을 좀 배워야겠어요."  나의 30대 초반에 회사 동료로부터 들은 충고입니다. 나는 유난히 지는 것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나의 모습이 동료들 눈에는 안쓰럽게 보였나 봅니다. 이상하게도 이 말은 내 가슴에 꽂혔고 그날 이후로 오랜 세월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지는 법을 배워라!"


나는 어려서부터 무엇을 배우면 곶 잘하는 편이었습니다. 탁구도 스케이트도 그리고 바둑도.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나보다 잘하는 친구가 나타나면 곧 그것에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나는 오늘날 못하는 것이 없긴 하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어정쩡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기겠다는 것'과 '지지 않겠다는 것'은 비슷한 것 같지만 실은 상반된 태도입니다. 이기겠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전진의 자세이고, 지지 않겠다는 것은 현재의 것을 지키겠다는 유지의 자세입니다. 전자가 욕망에 기초한다면, 후자는 두려움이 기반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몇 번의 실패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실패의 과정에서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고, 이길 수 있는 기술과 힘을 갖게 됩니다. 많이 져본 사람이 이길 수 있는 확률이 높습니다. 그런 면에서 실패의 경험은 큰 자산이며, 져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 대체로 성숙한 사람입니다.


지는 것을 배운다는 것을 나는 '책임지는 법'을 배운다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려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자신의 책임이라고 인정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책임지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내가 책임을 지겠노라고 선언하면 그 순간부터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잠재력이 활성화되어 나는 더욱더 발전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지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책임에 따르는 두려움과 맞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에 딸의 시댁에 행사가 있어 많은 가족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서로를 반가워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딸의 시동생 부부가 그들의 조카인 영진(딸의 아들) 이를 많이 예뻐해 주며 함께 놀아도 주었습니다. 영진이도 작은 아빠를 무척 좋아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독 두 형제는 서로 눈도 안 마주치고 서로를 피하는 눈치였습니다. 나중에야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형제간에 큰 다툼이 있었고 몇 개월째 서로 말도 안 한다는 것을.


"형이 먼저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건 어떨까?" 딸에게 나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자기도 한번 제안해 보았지만 남편의 태도가 너무 완강하답니다. 아마도 동생이 형에게 한 행동 중 형으로서 절대로 용납이 안 되는 것이 있었나 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먼저 사과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딸도 지금으로서는 자기 남편의 입장에 호응하기로 했답니다.


나는 한번 생각해 봅니다. 형이 동생의 불손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묻기 전에 형에게 그리 행동하게 만든 것은 형인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나는 형에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동생과 화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면(평생 안 보고 살 것 아니라면)  자신의 책임을 당당하게 인정할 수 있는 기회를 동생에게 빼앗기지 말라고. 그리고 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삶의 길을 가다 보면

커다란 구렁을 보게 될 것이다.


뛰어넘으라.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넓진 않으리라."

[조셉캠블의 신화와 인생에서]

작가의 이전글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