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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리 May 26. 2023

<아는 것이 병>인 시대


"할아버지 안아 줘"

영진(손자) 이를 안고 나는 그의 요청에 따라 부엌의 캐비닛 문을 열고 그가 원하는 까까를 커내어 한 움큼(너덧개)을 주었습니다. 그의 환한 얼굴을 보며 나는 행복했습니다. 오후에 딸과 산책을 하면서 좀 전 행복했던 상황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빠, 그거 하루에 하나씩만 먹어야 하는 비타빈제인데 몇 개 주었어요?"

내가 한 움큼 먹인 것이 하루에 한 알만 먹어야 하는 약(비타민)이라는 말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솔직히 이야기해야 한다고 판단한 나는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서너 개(?) 쯤 준 것 같은데"

딸은 괜찮을 거예요라고 말은 하지만 살짝 걱정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딸은 잠시 후 어딘가에 전화를 하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딸이 영어로 통화하기에 그들의 자세한 통화내용은 몰랐습니다. 나중에야 자기 아들의 거미베어 과다복용(?)에 관한 상담전화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딸은 그제야 편안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아빠, 괜찮돼요, 네 알 정도 먹었으니 앞으로 3일 동안은 먹이지 말래요."

나도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솔직히 서너 개가 아니고 너덧개 먹였다고 이실직고할걸 그랬나.


지난 3개월 딸(사위, 손자)과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보내고 있던 중 갑자기 거미베어 생각이 나서 도대체 그것이 어떤 약인지 찾아보았습니다.

"구미베어(Gummy Bear)는 천연향과 천연색소를 사용한 건강식품으로 어린이용 멀티 비타민제이다. 설탕이 젤 속에 있기에 아이의 치아에 붙어 충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건강 관련이슈를 다 읽어 보았지만 한 번에 다량을 섭취하면 부작용이 있으니 하루에 한 알 이상은 주지 말라는 글귀는 어디에도 없었다. 사탕  많이 먹으면 이빨 썩는다는 말은 우리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말이다.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공부하고, 실리콘밸리에 있는 회사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다기에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었던 나의 딸이 자기 아들이 젤리 한 움큼(아기손) 먹었다고 걱정이 되어 상담사에게 전화를 하다니! 거기에 더해서 그 젤리(아직도 딸은 비타민이라고 주장)를 다량으로 먹게 했다는 책임감으로 얼마동안 자책감을 느꼈야 했던 나는 또 무엇이었단 말인가?


모르는 게 약이 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건강과 관련하여 아는 것이라곤 '밥이 보약이다', '시장(배고픔)이 반찬이다' '애들은 아프면서 크는거다' 라는 어른들로부터 전해 들은 이야기 정도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는 모를 수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정보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 정보들은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를 끊임없이 외쳐대며 우리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아는 것이 약이 되어야 하는데 아는 것이 너무 많아 혼란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에게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것에 더하여 '전문가'  '유명대학교수의 연구논문'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이유불문하고 꼼짝 못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선택하는 능력입니다. 쓸만한 것을 가려내는 능력도 필요하지만 불필요한 것을 멀리하는 능력이 더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이것은 어쩌면 능력이라기보다 용기입니다. 남들이 하는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한 번에 4개를 먹었으니 앞으로 3일은 주지 말라는 상담사의 말을 생각해 보면 웃음이 납니다. 정말로 멋지고 현명한 해결안입니다. 거미베어를 많이 먹은 아이에 대한 해결책이라기보다는 그것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를 걱정하며 준 해결안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영진이는 아침을 잘 먹었다는 대가로 얻은 거미베어 한알을 받아먹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지을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나도 손자의 그런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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