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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정 Oct 29. 2019

시작 글 - Préface

사회적 예술(art social)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연구자의 글

이십 대 후반과 서른을 모두를 파리에서 보내고 서울로 돌아온 지 일주일. 아직 그 시월의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바람이 공존하는 순간들, 공기 온도, 테라스의 사람들의 대화 소리, 낙엽이 지는 색감까지 기억하고 있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학업에 치여 땅만 보고 걷던 순간에는 할 수 없었던 순간순간 스쳤던 생각 혹은 경험들을 글로 남겨놓고자 한다. 


나의 글들을 관심 있게 읽어줄 누군가를 내가 상상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산책하며 만나는 건축물을 실용성이 있는 하나의 조각 작품처럼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 조각적인 건축물들이 놓여 있는 동네를 여러 관점에서 궁금해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의 글들이 조금이나마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파리에서 미술사로 학사, 방대한 미술사의 세계에서 석사 세부 전공으로는 건축사(histoire de l'Architecture)를 택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벨 에포크(Belle Epoque)라 불리는 시대 건축의 전공자로서 한 세기 동안의 어느 공간이 쌓아온 축척된 시간들을 사랑한다. 나는 건축을 시간이 축적된 결과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여기서 시간은 역사라고 크게 말할 수 도 있지만, 그 속에는 한 개인의 방문했던 경험, 한 가정의 추억 혹은 한 세대의 목적 등이 촘촘하게 결집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다. 건물의 설립목적부터 생사를 결정하는 철거 등의 문제도 사회적 합의를 기반으로 한, 시대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훗날 어떤 평가를 받는다 한들 말이다. 이 플랫폼에서는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가 가진 다양한 모습들 중, 사회적 예술로서 가치가 잘 드러나는 건축물들, 혹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가 잘 이루어진 건축물들이나 그때의 사건들을 종종 글로 올려보려 한다. 


전 세계적으로 - 한국도 - 건축을 가지고 하는 일들, 분야들이 점점 커지고 있다. 건축가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공간을 만들어 낸다면, 만들어진 공간을 가지고 사회와 엮어내는 일은 누가 할 것인가. 만들어진 공간을 크기와 가격에 따라서, 일터까지의 위치나 역세권에 따라서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게 사용자의 최선일까? 한 예로 건축을 미술의 범주에서 해석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31년 미국의 MoMA(Museum of Modern Art de New York)가 건축 큐레이팅 부서를 만들며 건축과 공간을 미술관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이 결과, 건축을 잘 모르는 이도 이름은 들어봤을 스타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 (Le Corbusier)와 그의 동료들의 건축양식인 Mouvement Moderne (현대건축 운동, 모더니즘 양식이라고도 불린다)은 프랑스보다 먼저 MoMA에서 주목하기 시작했다 - 건축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의 기획으로 1932년에 열린 "Modern Architecture : International Exhibition"전. 이 전시 이후로 현대건축 운동은 그 이름을 국제주의 양식 (Style International)으로 바꿔 불리 기도하며 1960년대까지 건축의 세계무대는 다른 미술과 마찬가지로 미국으로 패권이 넘어갔다. 미국 모마의 경우 지금까지 건축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해석을 가져올 수 있는 전시를 기획한다 :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공동주택 등의 내용들 혹은 재난 피난민들 혹은 무주택자들을 위한 강 위에 살아보기 체험 프로젝트 등. 그 중요성을 파악하고 프랑스도 늦었지만 1976년 퐁피두센터의 개관과 함께 건축&디자인 큐레이팅 팀을 미술관 안에 창설하고, 1986년 오르셰 미술관이 개관하면서 미술관이 다루는 시대에 맞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1848-1914)까지의 건축 미술, 건축 데생 등을 미술관에서 연구, 전시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국공립미술관 내에서의 건축에 대한 중요성은 건축역사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그 맥락을 함께 한다. 1970년대부터 건축의 역사 (건축사로 부르려 한다)는 재연구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되며 건축사를 미술사학과 내 정규 커리큘럼으로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특유의 "아카이빙 병" 혹은 "기록병" 덕분에 풍부한 1차 자료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는 근현대 건축을 연구하기에 너무나 좋은 나라다. 또 특유의 치밀함 덕분에 그 연구를 바탕으로 - 미국에 비해 늦었지만 - 에듀케이터, 전시기획자, 국공립미술관 혹은 건축사무소 내 전문 연구자 등 건축과 대중 사이의 매개 분야들이 발달했다. 


내용이 길어졌다. 사회적 합의 위에 놓인 들어가 살 수 있는 커다랗고 실용적인 예술로서 건축을 어떻게 다양한 방면으로 뜯어볼 수 있을까가 지금 내가 하는 공부이자 앞으로 프로페셔널의 세계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 관점에서 파리의 건축물들을 먼저 뜯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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