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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미정 Mar 11. 2021

할 수 있음(pouvoir)을 원하는 여자들

여성의 날을 기념해 제작된 프랑스 문화부 인스타그램 콘텐츠에 대한 단상

03월 08일은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열악한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노동자들을 기리며 미국 노동자들이 궐기한 1908년 2월 28일을 시작으로 덴마크와 독일 등 유럽권 국가들에서 연이어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3월 8일이라는 날짜는 1975년 UN에서 공식 지정했다고 하네요.


일 년 365일 중 하루, 여성의 참정권, 임금격차 등 정치적・사회적 문제들과 각국에서 만연하게 일어나는 성차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올해 3월 8일에도 제 인스타그램의 각국의 팔로워들의 계정에서 “당연한 건 없다”, “남자들보다 30% 적은 임금을 받고 싶지 않다” 혹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젠더 문제에 더 불을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남/여, 편을 가르지 말고 생각하자” 등의 다양한 의견이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관심 있는 문화예술계는 어떨까요. 저의 동료가 모아 놓은 해외 미술관들의 여성의 날 SNS 콘텐츠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MET, MoMA, Guggenheim, 대영박물관 등 역시나 영미권의 활발한 여성운동에 대한 관심을 확인했습니다. 문득 제 삶에 흔적을 새긴 프랑스는 어떨까 궁금해졌습니다.


사실 프랑스란 국가에 투영되는 자유롭고 로맨틱한 이미지(혹은 클리셰) 이면에는 짙은 양면성이 존재합니다. ‘프랑스 대혁명’이란 사건이 이 양면성을 설명할 가장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전통적 지배체제(Ancien régime)의 해체와 부르주아라는 새로운 계급을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시킵니다. ‘자유’, ‘평등’, ‘박애’라는 신조를 외치며 신이 내려준 권력이라 여겨진 왕권을 ‘시민’에게 돌려준 거칠고 단단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나라가 프랑스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뒤집은 프랑스 대혁명에서도 여성의 세상은 따로 존재했나 봅니다. 그녀들의 세상은 뒤집히지 않았어요. 1789년 8월 선포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으로 유명한 테니스코트의 선서에서 여성은 인간과 시민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았으니까요. 모든 시민은 주권을 지닌 구성원인 만큼 선거권을 지니며 출생만으로 그 권리가 부여되나, 여성과 아이들은 공적인 일에 참여할 수 없는 존재, 즉 가장에 의해 대리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1944년에 이르러서야 프랑스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게 됩니다. 참 지난한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1793년 단두대에 이슬로 사라지면서까지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외치던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 1748-1793)가 태어난 나라에서 말이에요.

드 구즈의 죄목은 “자신의 성별에 적합한 덕성을 잃어버린 사람”.

글을 쓰는 여성, 즉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여성으로 표현된 Catel과 José-Louis Bocquet의 소설 『올랭프 드 구즈』의 표지, 출판사 Casterman, 2016


서구권 국가들에서 여성 참정권이 제정된 년도 :

1893 뉴질랜드

1902 호주

1906 핀란드

1913 노르웨이

1915 덴마크

1918 영국 - 단 30세 이상 여성에게만 제한적 부여.

1920 미국 - 괄목할만한 것은 1870년 흑인 노예에게 참정권 부여. 노예보다 늦게 참정권을 얻은 여성들

1944 프랑스

1948 대한민국


영국, 미국에 비해서도 늦었던 프랑스 여성의 참정권 획득의 역사는 평등한 현대 시민으로서의 도약을 꿈꾸는 동시에 남성 위주의 사회라는 프랑스의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약 150년의 여정 동안, 문화예술계에서 여성은 ‘뮤즈’ 혹은 ‘모델'의 역할 그 이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화폭 속에서 발그레한 볼이 돋보이는 도자기 피부를 지닌 여성, 풍만하고도 균형 잡힌 몸매를 지닌, 음모와 체모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여신의 모습으로 재현됐습니다. 또 한 일례로 문인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가 19세기 파리 시민을 지칭한 용어 ‘Flâneur’를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 단어를 ‘산책자’ 정도로 번역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보들레르가 지칭하는 산책자는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뒤집어지는 19세기 파리에서 새로운 것을, 새로운 건축을, 새로운 도시를 호기심에 찬 눈과 열정을 갖고 산책하며 들여다보는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하지만 산책자의 여성형 명사인 ‘Flâneuse’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시를 자유롭게 활보할 자격은 남성에게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목적지를 밝힌 뒤 남편 혹은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후에만 이동할 수 있었으며 혹은 남성과 동행을 해야 합니다. (—> 이 사회적 관습을 이용해 창업을 해 대박이 난 사람이 있습니다. 하하. 패션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아마 들어보았을, 패션계 MD들이 꼭 간다는 그곳, 바로 Le Bon Marché 백화점! 궁금하시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그럼 또 열심히 조사해서 글로 가지고 오겠습니다. 하하.)

Gustave Caillebotte, <Paris Street ; Rainy day>, 1877, ©Erich Lessing/Art Resource


그렇다면 2021년인 지금은 차별이 없을까요? 1944년 여성의 참정권 획득 이후 모든 것이 평화롭다는 해피앤딩인가요? 여전히 존재합니다. 계속해서 터지는 문화예술계 미투 사건뿐만 아니라 굵직굵직한 제도권 미술관의 소장품에서 마저도요.

미술사와 건축사를 전공하는 제가 피부로 느꼈던 20세기 미술사 내 성차별에 대한 기억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리 1대학 미술사학과 학사 3학년 시절, Sophie DELPEUX 교수님의 ‘제도권 내 여성주의 미술’ 수업에서 재미있는 리서치를 진행했어요. 각 팀별이 선정한 미술관에 방문해 미술계의 관습이나 제도 속에 남아있는 성차별을 수치로 가시화하는 과제였어요. 파리와 인근 île-de-France지역으로 한정했고, 19세기 말까지는 여성이 아카데미에 입학할 권리가 없었던 것을 고려해 20세기 초부터 21세기까지의 예술을 조명하는 미술관으로 한정했습니다. 저희 팀이 정한 곳은 ‘파리 시립미술관(Musée d’Art Moderne de Paris, MAM)’였습니다. 이곳은 소니아 들로네, 하울 뒤피, 카렐 아펠, 자오-우키 등 20-21세기 파리를 중심으로 펼쳐진 예술운동의 산물부터 근래에는 유럽지역의 시각예술장르까지 15,000여 개의 작품을 소장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두고 작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상설전 내 전시 중인 작품 중, 남성 작가와 여성작가의 작품 비율. (특별전은 타기관에서 대여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제외)  

192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남/여 아티스트 별 작품 매입 비율 (기부 제외/미술사 내에서 차지하는 유의미한 이유도 있겠지만 미술관에서 작품을 매입하는 경우 동시대인들의 인지도도 무시할 순 없죠)  

작품 설명란에 성과 이름을 표기하는 방법


리서치를 끝내고 느꼈습니다. 세상은 아직도 뒤집어지지 않았다고요.

파리 시립미술관 상설 컬렉션 중 여성 작가의 작품은 단 12%. 그리고 작가명 표기법은 로뎅 미술관을 조사한 팀이 큰 수확을 가져왔는데요. 주로 로뎅의 ‘연인’ 혹은 ‘뮤즈’로 알려진 Camille Claudel(카미유 클로델)의 경우 ‘Camille’로 표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 작품 캡션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에 릴리즈 된 기사들에서도 남성 작가는 철저하게 ‘성’을 사용하고, 여성작가는 그들의 ‘이름+성’으로 표기하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각가 로뎅과 그의 연인 캬미유 클로델’라는 표현, 어떻게 생각하세요? 동등한 ‘창작자’로서 바라본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예를 들면, "오귀스트 로뎅과 그의 아름다운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문장은 2017년 9월 29일 릴리즈 된 'Museum Art News'플랫폼의 기사 타이틀입니다.

©MuseumArtNews, https://www.museumtv.art/artnews/articles/auguste-rodin-et-sa-belle-camille-claudel/


파리의 경우에서 보이는 이 수치들은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아요. 1985년 창립해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Geurrilla Girls(게릴라 걸즈)는 예술계에 존재하는 성차별주의를 작품과 퍼포먼스를 통해 알리는 여성작가그룹입니다. 그들의 여러 작품 중, 1989년에 탄생한 포스터는 그때도 그리고 지금도 매우 유의미합니다. 프랑스 아카데미즘의 정수인 앵그르의 오달리스크를 패러디한 이 포스터에는 “메트로폴리탄에 들어가기 위해서 여성은 반드시 벗어야 하는가?”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죠. 포스터 하단에는 “Modern Art에서 작가로서 여성은 단 5% 이지만, 옷을 벗은 여성은 85%를 차지한다”라 적혀있어요 - 모던 아트는 클래식한 프랑스 아카데미즘의 교리가 깨지는 1860-70년대부터 팝아트가 탄생하기 직전인 1950년대에 탄생한 예술작품들을 일컬어 이야기합니다. 게릴라 걸즈는 여성은 붓과 끌을 쥘 수 없지만 남성 작가의 ‘뮤즈’는 될 수 있었던 당대의 상황을 꼬집었죠. 이 포스터와 구체적인 수치들은 뉴욕 화단에 커다란 스캔들이 되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2012년에 게릴라 걸즈는 다시 한번 메트로폴리탄을 습격합니다. “이제 4% 이하의 여성작가, 그리고 76%의 옷을 벗은 여성들”이 그곳에 전시됩니다. 어떤가요, 그 수가 좀 나아졌나요?

<Do Women Have To Be Naked To Get Into the Met. Museum?> 1989, © courtesy www.guerrillagirls.com


파리 시립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에 존재하는 여성들의 수. 2016년 저와 팀원들이 학사 3학년 수업에 진행했던 파리 시립미술관 상설전 통계조사의 12%, 2012년 Geurrilla Girls의 76%의 옷을 벗은 여성들의 수치. 우리는 나아진 세상에 살고 있나요?

아, 정말 가까운 곳에 하나의 수치가 있습니다. 미대를 졸업했다면, 80학번이든 90학번이든 21학번이든 관계없이 한 번 떠올려보세요. 제가 한국의 미대를 다녔던 2010년대 초반, 학과에 여성 정교수님은 ‘0명’이었습니다. 제가 입학한 해의 총 정원 30명 중 남학생이 단 한 명인 과에요. 이 점은 프랑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한국과 교수진의 구조는 다르지만 박사 논문을 지도할 수 있는 교수님을 우리나라의 정교수와 동일하다고 봤을 경우, 파리 1 대학 미술사학과 총 26명의 정교수 중 단 4명입니다. 제가 파리 1 대학 입학했을 때, 대략 400명의 학생들 중 약 5% 미만이 남학생이었습니다. 서울에서도 파리에서도 그 많던 미대/미술사학과 여성 선배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요. 네 맞아요. 교수님들이 공부했었던 7-80년대와 우리가 공부했던 시절이 다르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기이한 남녀 성비율의 변화는 지금 어디서든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리, 과장 이후 실무진에 여성 성비는?이라고 물었을 때 두 손에 꼽을 수 있나요. 그 많은 여성 큐레이터들이 근무하는 미술관의 관장을 비롯한 경영진은 왜 거진 남성일까요.  



다시 돌아와서 2021년 03월 08일 여성의 날이었어요.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외치는 프랑스에는 이렇듯 ‘곳곳에’ ‘여전히’ 차별이 존재합니다. 2021년에도 마찬가지고요. 다양한 장르에서 소외자들은 자신들의 대응방식을 갖고 투쟁하며 살아갑니다. 시위로 직접 보여주는 거친 방식도 잘 만들어진 미술관의 SNS 콘텐츠도 혹은 우아한 촌철살인의 글이나 발언으로도 이어집니다.


프랑스의 여러 미술관, 박물관도 0308 세계 여성의 날 콘텐츠에 많이 합류했어요. 하지만 이 긴 긴 글을 적은 이유는 제 마음속 깊이 남은 콘텐츠를 설명하기 위해서! 바로 2020년 7월 6일에 새로 임명된 프랑스 문화부 장관 로즐린 바슐로-나르캥(Roselyne Bachelot-Narquin, 1959-)의 여성의 날 기념 Q&A영상입니다. 프랑스 문화부 인스타그램(@culture_gouv)에서 볼 수 있어요. 인스타그램 Q&A라는 게 생각보다 즉각적이거든요. 어떤 질문이 날아올지 모르고, 그 질문에 준비할 시간은 생각보다 없어요. 그래서 질문들이 거칠고 날카로워요 - 개인적으로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요. 59년생 프랑스 문화부를 이끄는 리더에게 젊은이들이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거칠고 날카로운 질문들을 할 수 있다? 그럼 그가 대답한다? 이 시스템 누가 기획한 걸까요.

질문들은 정말 다채로웠습니다.

프랑스 문화부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 (@culture_gouv)


Q. Votre modèle féminin? 당신의 여성 롤모델은?

 A. 7살 때 프랑스에 이민 와 22살 때 읽을 수 있었으며 군사장비 공장에서 일하며 여성의 권위에 대해 행동하며 주장했던 나의 할머니

혹은 '감명 깊게 읽었던 여성주의 책과 영화?' 등의 가벼운 질문들부터


Q. Madame LE ou LA Ministre? 관사에 성별이 정해져 있는 프랑스어의 특성상 문법적으로 ‘장관(Le Ministre)’이란 단어는 남성형 관사를 사용하는 명사입니다. 때문에 문화부 장관을 문법적으로 ‘Le’ ministre로 불러야 할지,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문화부 장관이기 때문에 ‘La’ ministre로 불러야 할지 물어보는 질문.

 A. 물론 LA Ministre입니다. 언어적으로,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남성 관사와 남성 타이틀을 ‘여성화(féminiser)’시키는 것을 잊지 마세요!


Q. Avez-vous été dans votre carrière victime de discrimination? 당신의 커리어에서 성차별의 피해자가 된 경험이 있나요?

 A. “Oh là là mes enfants…”(직역하면 ‘어머나 내 아이들…’이란 뜻인데 2021년에도 직업적인 부분에서 차별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에 대해 큰 언니가 안타까움에 탄식하는 것 같은 느낌! 전 이 리액션이 매우 좋았답니다.) 내 커리어는 매 순간, 매 단계 차별의 역사였어요. 엄청난 일화들이 있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한 지역 의회에서 근무할 때, 이론적으로는 저는 위원회의 장을 이었지만 시장님이 말하길 “위원회 의원들은 '여성위원장’을 결코 따르지 않을 거예요"라는 말을 들었죠. Grrrr (웃음).

등의 개인적인 질문들도 있고,


Q. Pourquoi fêter la jounée de la femme? 왜 세계 여성의 날을 기려야 하나요?

 A. 이 날은 364일 내내 우리가 쉽게 잊고 살아가는 몇몇의 수치를 상기시키는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개인의 삶에서 겪는 차별, 가정 내에서 여성들에게 쉽게 전속되는 가사노동과 같은 차별, 젠더별 임금격차,

물론 직업적인 부분에서 겪는 성차별, 그 외 사회적, 정치적인 측면에서 겪는 성차별 등.


Q. Quel rapport entre la culture et les droits des femmes? 여성의 권리와 문화˙예술 사이의 어떤 연관점이 있나요?

 A. 매우 엄청난 것이 있죠. 예를 들어 음악 하는 여성들을 경우. 우리는 작곡가, 성악가 등의 직업적 존재를 알고 있어요. 하지만 종종 그들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역할을 부여하며 활동 범주를 제한하곤 합니다. 세계 여성의 날은 바로 여성들의 올바른 지위를 재인식하는 날입니다. 그녀들은 협업자가 아닙니다. 그녀들은 문화예술계에서 창조자, 예술가라는 자신만의 자리가 있습니다.


Q. Les chantiers lancés au ministère de la culture pour l’égalité entre les femmes et les hommes? 문화부에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을 위해 추진하는 일들은?

 A. 문화부 장관으로서 평등을 위한 투쟁에 대해 3가지 측면으로 접근합니다. 첫째, 임금의 평등. 둘째, 성폭행과 성추행의 타도. 셋째, 경영진 혹은 관리자 직군에서의 성균등(parité des postes de direction et d’encadrement). 따라서 저는 Direction Régionale des Affaires cultures (DRAC. 1968년 탄생한 문화부 산하의 기관으로 문화정책과 인프라의 중앙 집중화를 막기 위해 문화 균형발전과 분권주의를 실행하는 기관)에 탁월하게 일 잘하는 여성들을 등용시켰습니다. 현재 DRAC의 각 지역 위원장들 중 41%, 국공립 문화시설 중 43%가 여성 ‘장(長)’입니다.


등등의 신날한 질문들도 있었어요.

어떠세요. 한 나라의 국가기관장이 SNS로 자신의 생각을 그것도 예민해지면 얼마든지 예민할 수 있는 젠더 문제를 말한다는 것. 저는 한 여성의 30년 넘는 필드에서의 경험과 내공이 그대로 느껴지는 에티튜드와 신념을 공짜로 본 것 같아 데이터를 킬 뻔했어요.


문화부 장관의 짧은 영상 하나로 프랑스 뽕이 차기엔 이 나라는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위의 수치들을 떠올려요. 1944!) 동양인 여성으로 살기도 너무 힘들고요, 여전히 수치로 보이는 것처럼 많은 차별들이 존재하는 나라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이유인 '차별에 대응하는 각자의 자세'와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를 이 콘텐츠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랑스 문화부의 앞으로의 계획을 듣는 것도 유의미했지만, 그보다 정치인으로서 긁어 부스럼 될 수 있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젊은이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투쟁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장관의 자세가 인상 깊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동의를 얻지만, 누군가에게는 악플을 받을 만한 말을 하는 것은 어려워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그렇게 프로그래밍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 ‘잔다르크’가 되지 않더라도 각자의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말과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불어에서는 권력을 뜻하는 명사 Pouvoir와 할 수 있다는 동사 Pouvoir가 같습니다. 권력(Le pouvoir)도 있으면 좋겠죠. 바슐로-나르캥처럼 자신의 견해를 공고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전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것(Pouvoir)을 원합니다. (여성) 예술가로서 '유일한', '특별한'이라는 설명을 붙이지 않고 작업으로서 평가받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요.

이상  제가 꼽은 여성의 날 최고의 콘텐츠에 관한 단상이었습니다. 언젠간 우리나라 많은 국공립기관과 또는 문체부의 계정에서도 다채로운 여성의 날 관련 콘텐츠를 볼 수 있기를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오르세와 오랑주리 미술관 디렉터 로렌스 데 캬(Laurence des Cars) 역시 여성 미술관장입니다. 그녀의 인터뷰도 함께 올라왔는데, 그건 제가 오르셰 미술관에서 근무하면서 참여했던 < Femmes et Pouvoir (여성과 권력) >(2019) 전시를 얘기하면서 엮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먼저 링크 걸어 놓을게요.

https://www.culture.gouv.fr/Divers/8mars-Elles-font-la-culture/Laurence-des-Cars-presidente-des-musees-d-Orsay-et-de-l-Orangerie-Nous-nous-ne-sommes-pas-si-nombreuses-et-il-faut-encore-et-toujours-encou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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