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Freeze⟫ vol.2를 위한 글
이 글은 2023년 10월에 쓰였다.
* 매거진 ⟪Anti-Freeze⟫는 경기북부박물관에서 열리는 동명의 전시 ⟪Anti-Freeze⟫를 위해 기획됐다.
이 글은 총 4개의 시리즈로 이어진다.
vol.1은 [나]라는 생태계에서 시작한다. 본 매거진의 기획자는 모든 생태계의 시작이 '나'라고 말한다.
vol.2는 300만 여종의 생물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리얼 자연) 생태계]를 다룬다.
vol.3은 [디지털 생태계]를 조명한다. 디지털화된 세상에도 누군가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vol.4는 나를 너머 '우리'로 회귀하는, [사회 생태계]를 다룬다.
이 글은 vol.2을 위한 글이며, 자연의 생태계를 복제하고자 한 인간의 도전과 실패를 담았다. 자연을 복제하려던 시도가 생태를 연구하고 보존하는 장소가 된 역설을 통해 희망을 엿본다.
생태계와 생물권의 관계는 집단과 그들이 사는 공간과 유사하다. 생태계(ecosystem)는 지구에 살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종까지 포함한 약 300만 종의 생물이 주위 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하는 현상이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움직인다. 한편, 생물권(biosphere)은 모든 종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대류권, 수권, 암권의 표면을 포함한 생태계를 총괄하는 개념이다. 즉,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는 총체며 구조화가 된다.
생태계와 생물권의 관계를 인간(들)과 건축의 관계로 치환해 본다. 생태계의 기본 원자가 되는 인간의 형성은 지하층에 해당한다. 이곳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따라 상위층의 골조나 형태에 영향을 준다. 1층에는 생물권이 있다. 지하층에 웅크린 인간은 지구의 모든 종과 관계 맺기를 한다. 같이 사는 법을 깨달은 누군가는 1층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더 상위층은 이어지는 지면에서 얘기하고자 한다.
지구상의 모든 종에 대해 이야기하기에는 나는 부족함이 많다. 그래서 결국 사람에 얘기한다. 멸종을 앞둔 ‘질문하는 영장류’가 자연을 복제하는 이야기를, 그러나 아주 기상천외하고, 쾌활하고, 극적이며, 대차게 실패하는 이야기를. 그 낙담 속에서 어떤 것을 찾느냐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다.
2001년 애리조나주 오라
찰칵, 에어락 문이 소리를 내며 닫힌다. 연구원이 외부 세계를 봉쇄하기 위해 빨간색 금속 손잡이를 아래로 밀어 넣을 때, Biosphere 2 내부의 첫 느낌은 압도적이었다. 두껍고 무겁고 습한 공기 속 녹음들. 갈라지고 이끼 낀 시멘트로 만들어진 작은 입구조차 초목과 진흙의 냄새, 삶과 죽음의 냄새가 짙게 뒤덮인다. [...]
이 열대 낙원 아래에는 기계가 웅-하는 큰 소리와 함께 돌아간다. 이들은 생물권을 지탱한다. 황무지 아래에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지하실 통로가 얽혀 있고, 흰색 플라스틱과 금속관 재질의 구불구불한 배관은 물과 전기를 공급한다. 이들은 생물권을 흐르게 한다. 각 배관은 적절한 지점에서 비나 바람이 된다. 어느 지하 복도에 있는 펌프는 바다에 파도를 일으킨다. [1]
축하하자. 우리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이례로 약 380만 년간 이루지 못한 일을 해냈다. 지구 온도를 뜨겁게 올려놓은 우리는 역사의 한 장면에 남을 예정이다(인류가 멸망하지 않는다면). 위기는 긍정의 시그널을 만들기도 한다. 끊임없는 소비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게 역할인 자본주의 하에서도, 지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와 포부를 갖춘 이들이 나타난다. 비영리 기관이나 공공기관,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기업, 브랜드, 건축 등 자본의 영역에서도 유의미한 활동이 돋보인다. 이제 모든 이들이 환경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모객 할 수 없다. 돈을 위해 환경을 지키는 역설의 시대다.
33년 전, 욕망으로 자연을 지키고자 한 사례가 있다. 폐쇄와 제한, 욕망과 투지 그리고 광기로 생태계를 복제한 프로젝트는 인간의 질문과 상상력이 어디까지 날아가서, 무엇을 형성하는지 잘 드러낸다.
“만약 우리가 사는 생태계를 복제할 수 있다면?”
SF 소설에 나올법한 가정으로 시작된 ‘Biosphere 2’ 프로젝트는 햇빛을 제외한 모든 에너지와 물질의 상호작용을 차단한 인공 생태계다. 지구의 생태계를 ‘Biosphere 1’로 정의하고, 정확히 모든 것을 복제하여 장기간 독립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자급자족 생태계'를 만드는 장대한 프로젝트다. 총면적 3,842평에 3800종의 종이 사는 이곳의 건축물은 웅장하다. 1851년, 영국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선보인 새로운 건축인 수정궁(Crystal Palace)을 떠오르게 하는 피라미드형 철골유리구조물과 여러 개의 돔에 열대우림, 초원, 사막, 습지, 바다 등 여러 층위의 생물 군계가 재현된다. 건축물들은 밑바닥까지 접시 모양의 강철로 막혀있기 때문에 완벽한 밀폐형 구조체다. 공기나 땅에서 유입되는 유기체, 미생물, 토양, 수분, 공기와 이산화탄소의 비율, 농사 등의 모든 변수를 완벽하게 통제하는 실험실은 1991년 애리조나 사막 위에 건설되었다.
햇빛을 제외한 모든 지구 생태계를 복제하는 이 광기 어린 프로젝트의 비전은 다음과 같다.
첫째, 폐쇄된 시스템에서 인간의 삶이 지속 가능한지를 실험하고,
둘째, 생태계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의 원인이나 변동 상태를 연구하고,
셋째,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것
8명의 연구원 집단은 스스로 바이오스피리언(Biospherians)이라 부르며, 복제된 생태계로 들어갔다. 점프슈트 유니폼을 입고 생활했으며, 우주선 내의 승무원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실제로 그들의 궁극적인 꿈은 달과 화성 테라포밍이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1차 실험이, 1994년부터 1995년까지 2차 실험이 진행됐다. 바이오스피리언들의 역할은 생태계 관리하기, 식량을 지배하거나,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시설을 유지하는 일들이다. 바이오스피어1에서 2분이면 주문할 피자를 일 년간 밀을 재배해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이 년간 고구마만 질리게 먹었다고 고백한 어느 연구원의 회고가 기억에 남는다.[2]
두 번의 실험은 모두 철저하게 실패했다. 첫 번째 실패 사유는 산소와 이산화탄소 사이의 비율을 맞추지 못해서다. 애리조나의 사막 날씨와 건축 구조물의 결함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원인은 열대 우림 지역에 조성된 흙에 함께 포함된 미생물이었다.[3] 산소를 이산화탄소로 만드는 미생물의 무한한 활동으로 인해 산소량이 14%까지 떨어지며 시스템이 완벽히 붕괴됐다. 과학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생물이라는 변수를 간과했다. 여덟 명의 연구원은 모두 탈출했다. 이 년 뒤, 단단히 준비하고 들어간 두 번째 시도에서 바이오스피리언들은 분열됐다. 처음은 처음이라 견딜 수 있지만, 두 번째로 맞이한 절대적 고립의 경험 속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결국 갈등으로 실패한다. 바이오스피어2의 창업자 및 공동 창업자는 대체되고, 결국 이 생태 실험실은 대학의 산하 연구시설로 재편됐다.
생태계를 통제하고 복제하고자 하는 꿈과 테라포밍의 희망은 사라졌다. 바이오스피어2의 실패를 보며, 과학자 Joel Cohen과 David Tilman은 “자연 생태계가 무료로 생산하는 생명 유지 서비스를 설계할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라고 한다.[4] 2억 달러, 즉 한화 약 27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8명의 인간이 2년간 먹을 수 있는 충분한 공기, 물, 적절한 식량을 생산했을 뿐이라고.
달리 생각해 보자. 우리는 지구를 제외한 생태계를 알지 못한다. 가끔 화성에 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뉴스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바이오스피어2는 (나름대로) 시도와 행동의 결과다. 신이 흙으로 주물러 만든 태초의 인간처럼 8명의 승무원은 현대 과학과 자본으로 만든 밀폐된 생태계를 살뜰하게 아꼈다. 즉,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인간의 생존 가능성을 증명했다. 33년 전에 이 년의 생존기간을 증명했으니, 이제는 기후과학의 연장선상에서 지구온난화 연구를 도울 것이다. 혹은 지구 생태계의 새로운 이주 공간을 위한 테스트 베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축하하자. 질문하는 영장류는 세상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구하려 들기도 한다. Biosphere1의 대안, 복제품, 레플리카는 지구 안팎에서 광기에 의지와 용기를 버무려 계속해서 탄생할 거다. 요즘은 이런 것들에 기후테크라는 이름으로 붙이기도 한다. 인간은 이렇듯 지극히 실패하고, 낙담에서 방법을 찾을 거다. 지구가 그때까지 버텨준다면 인간과 지구상의 종들은 멸종하지는 않겠다. 여기서 조건은 ‘지구가 우리를 기다려 준다면’이다.
[1] Rebecca Reider, Dreaming the Biosphere: The Theater of all possibilities, 2009, (n.p)
[2] TED, “Jane Poynter: Life in Biosphere 2”, June 15, 2009, Video, 15:53, https://youtu.be/a7B39MLVeIc?si=-aChHjs63QhQvSGX]
[3] 인간의 탄생에 미생물이 어떤 기여를 했는지, 가상 세계를 다루는 다음호에 이어 얘기할 예정
[4] Carl Zimmer, “The Lost History of One of the World’s Strangest Science Experiences”, New York Times, March 29, 2019, https://www.nytimes.com/2019/03/29/sunday-review/biosphere-2-climate-change.htm
Therese M. Shea, Biosphere 2: solving word problems, (NY: Powerkids press, 2004)
Mark Nelson, Pushing our limits: insights from Biosphere 2, (Arizona: University of Arizona Press, 2018)
Rebecca Reider, Dreaming the Biosphere: The Theater of all possibilities, (New Mexico: University of New Mexico Press, 2009)
사이트 및 기사
Biosphere2, https://biosphere2.org/
Carl Zimmer, “The Lost History of One of the World’s Strangest Science Experiences”, New York Times, March 29, 2019, https://www.nytimes.com/2019/03/29/sunday-review/biosphere-2-climate-change.html
TED, “Jane Poynter: Life in Biosphere 2”, June 15, 2009, Video, 15:53, https://youtu.be/a7B39MLVeIc?si=-aChHjs63QhQvSGX